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Sep 15. 2022

커플링/커플룩

사물의 우연 : 두 번째 서랍 - 데이트

커플링의 짧은 기원     

커플들을 위한 쌍쌍 제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솔직히 다 검색해볼 수도 없을 정도다. 어떤 제품이든 커플자만 갖다 붙이면 상품이 될 정도다. 그래도 이 커플 제품의 원조라면 커플링일 것이고 이 커플링의 원조는 쌍가락지다. 쌍가락지는 그러나 나눠 끼는 것이 아니라 여자 혼자, 그것도 유부녀 혼자 끼는 것이다. 그래서 반지는 처녀만 끼었는데 그것은 쌍가락지의 반이기 때문이다. 


즉 반지는 아직 짝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결혼반지라는 말은 어찌 보면 웃긴 말이다. 결국 쌍가락지가 아닌 반지의 선물은 유부녀가 아니라 애인이라는 의미가 된다. 서양에서는 이런 의미가 더 분명했고, 동양에서도 이런 의미는 비교적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예물로 며느리에게 해줬던 것이다. 예전엔 금으로 된 쌍가락지 한 벌, 형편에 따라 옥이나 은으로 된 쌍가락지면 됐다. 이것은 남자 측에서 여자에게 주던 것으로, 어찌 보면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여자가 종속 됐던 시대의 표상이었다.  

    

현대적 커플링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전부터 반지는 존재했으니, 누군가 비슷하게 맞춰서 나눠 끼었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이 단어를 우리말로 순화시킨 기록은 2002년 국어순화자료집에 나온다. 그러니까 그전부터 이 단어는 광범위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법은 현실보다 뒤에 오니까.     


커플룩의 짧은 역사

사실 커플링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아마 커플룩일 것이다.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미국의 60년대, 70년대 패션 카탈로그에는 크리스마스나 휴가철을 위한 다양한 커플룩이 소개되고 있다. 이런 패션 경향이 한국에 늦게 소개됐던 건 양장점과 양복점으로 양분된 패션 시장이었기 때문일 테고 이발소와 미장원으로 양분되던 남녀 구분의 패션 의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의식도 80년대 말에 등장한 스포츠 브랜드와 캐주얼 브랜드가 추구하던 성별 구분이 모호한 패션으로 인해 깨지기 시작했고, 우리 삼촌이나 엄마의 신혼여행 사진엔 종종 촌스러운 버튼다운 셔츠나 럭비 셔츠 커플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커플룩이 우리말로 순화된 건 커플링보다 훨씬 늦어서 2009년에나 우리말 다듬기 누리집에 실렸고 공식적인 고시가 된 것은 2013년이었다. 아마 커플링보다 우리말로 순화하기가 더 어려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커플링과 신세대의 등장

얘기가 샜다. 다시 커플링 이야기로 돌아간다. 금은방에 물어보면 커플링이 고대 로마 때부터 있었느니 할 거지만 솔직히 필자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커플링이라는 단어를 스무 살 이전에 들은 기억이 없다. 왜냐하면 80년대만 해도 총각이 반지를 끼고 다니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잘해야 장교로 제대한 분들의 반지이거나 나이 드신 분들의 그 엄청나게 큰 알반지만 기억나지 여자와 디자인을 공유할만한 반지를 끼고 다니는 삼촌이나 어른을 본 기억이 없다.     


실제로 네이버 아카이브를 검색해보면 94년이나 되어야 커플링이 인기라는 기사가 나온다.(1994년 3월 14일 경향신문) 사실 이 기사에서 주목해봐야 할 단어는 신세대다. 제목은 <우리는 영원... 남녀 커플링 인기 예물 반지>다. 기사 내용은 간단한다. 여자는 여성스러운 디자인, 남성은 전형적인 남성적인 디자인의 반지를 했었고, 다이아 등을 박았는데 이제는 일상에서도 낄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 남녀의 디자인이 같은 반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디자인을 선호하는 커플들을 신세대 커플이라고 부르고 있다.


신세대는 X세대라는 말과 함께 90년대 한국 마케팅의 전설적인 화두였다. 이 단어들은 여러 가지 장벽을 허물었다. 일단 남자도 꾸미는 것을 당연시했다. 여성스러운 남자, 아름다운 남자가 당연시되는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 아이콘인 가수이자 배우 김원준의 데뷔 연도가 93년인데 그다음 해인 94년에 김원준은 손지창, 김민종 등과 함께 신세대 이미지의 전형을 만든 <느낌>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또 긴 머리를 자랑하면서 등장한 원빈이 97년도에 데뷔했고, 장동건 등이 스타로 떠 오른 <우리들의 천국>이 90년부터 94년까지 방영했었다. 이 당시 광고계에선 정보전달의 광고에서 벗어나 신세대 감성에 맞는 광고를 하기에 바빴고, 필자도 대학에 들어가서 이런 광고들을 이해하느라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기성세대들도, 언론도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동아일보는 신세대라는 기획기사를 93년 4월 4일부터 12월 9일까지 무려 34번에 걸쳐 연재했다. 그러니까 신세대의 유니섹스적인 패션관과 남성성의 인식 전환 등이 맞물려 남성 반지의 디자인 변화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여성과 남성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반지 디자인 시장이 열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CC의 등장과 대학의 변화

커플링은 IMF를 거치면서 효율성, 경제성이라는 이슈까지 등에 업으면서 오히려 급속히 성장했다. 그래서 99년까지는 커플링은 경제 사정 때문에 결혼을 미룬 연인들의 약속의 상징이었다. (1998년 2월 18일, 동아일보) 당시 한 통신회사의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이 커플과 나누고 싶은 것 1위가 커플링, 2위가 커플 회원권이었고 이어서 커플룩, 커플 잠옷, 커플 언더웨어였다.(1999년 6월 7일 경향신문)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소개팅도 사실 1987년 기사에나 겨우 나온다(87년 4월 4일 경향신문). 이 기사를 보면 친구가 소개해주는 소개팅과 고학년끼리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 만나는 선팅도 있다고 전한다. 또 이들 대학생 커플은 동거도 해보고 친구들을 불러 언약식을 하는데 이때 반지를 교환하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때 캠퍼스 커플이라는 단어도 사용됐다. 일명 CC말이다. 92년의 기사(1992년 9월 3일 경향신문)에는 쌍둥이 패션이라고 해서 커플룩의 유행을 얘기하면서 반지, 신발, 티셔츠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80년대 말 민주화 운동 이후에 등장한 학번의 대학생들이 서서히 거시적 이슈에서 미시적/사적 이슈와 표현으로 그 화제의 중심을 옮겨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즉 학문, 민주화 운동, 대학 배지 등으로 드러내던 자신의 정체성을 서서히 패션으로 드러내는 시대로 옮겨가고, 신세대라고 지칭되는 90년대 학번부터 동아리와 커플끼리 옷과 신발, 반지 등을 맞춰하면서 정체성의 시각화를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벼워진 대학과 청춘

이런 흐름을 알 수 있는 현상 중 하나가 소위 서클이라는 단어 대신 등장한 동아리라는 표현의 쓰임새다. 동아리는 민중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국악이나 풍물을 배우던 무리를 지칭하기 위해 쓰였던 단어인데 이 단어가 광범위하게 모든 서클에도 쓰이면서 역설적으로 운동권 시대에 서클이 갖고 있던 폐쇄성과 권위 의식, 이념성을 허물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서클이 취미 위주로 재편성되게 된다.


그러니까 커플룩, 커플링은 20대 청춘들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 해결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 표현, 자유로운 연애에 관심을 갖게 됨과 동시에 그 시대에 등장한 다양한 캐주얼 브랜드, 권위적인 서클 문화의 변화, 여행 자율화 등이 맞물리며 생겨난 일종의 표현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이 현상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세단의 대형화와 컨버터블의 대중화, 그리고 자동차 극장과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의 등장이 맞물리는 현상과 비슷하다.     


뭐가 먼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련의 사건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인지도 말할 수 없다. 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을 거치면서 대학의 숫자는 두 배 이상 늘어났고, 대학 경쟁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졌다. 놀랍게도 83년에 교복 자율화가 됐는데 이 시기에 중학교에 진학한 세대가 대학에 진학할 때쯤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러니까 십 대 시절부터 자유로운 복장, 패스트푸드와 캐주얼 브랜드, 나이키 같은 스포츠 브랜드에 눈을 뜬 세대가 대학에 진입한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대학의 권위주의가 완전히 해체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신적 존재였던 운동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서클 문화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대학생은 새로운 소비 주체로 부름을 받았다. 그 후 언론이 이들을 신세대, X세대라 불렀고 이들을 타깃으로 한 수많은 음악과 대중문화가 양산되면서 새로운 청춘의 호명이 완성됐다고 봐야 한다.


커플링은 이렇게 복잡다단한 여러 시대적 배경과 요소를 거쳐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커플 문화로 정착되게 됐다. 그것은 처음엔 간소함과 사랑의 언약을 상징했고, 그 후엔 밸런타인데이의 선물과 커플 백일 선물로, 더 후엔 커플이면 당연히 해야 되는 것으로 변해가며 사라지지 않고 성장했다.     


약속, 혹은 과시

커플링은 80년대처럼 언약식이라는 세리모니와 병행되어야 더 극적이다. 커플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커플링은 그런 세리모니는 사라진 채 상호 만족과 계약의 상징이 돼 버렸다. 상징은 SNS를 타고 불특정 다수에게 나타나고, 그로 인해 커플이 아니라 그것을 낀 하나의 주체만 독보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니까 나도 연애를 하고 있다는 일종의 과시적 상징이랄까?     


이 과시에는 주체만 있고 연인은 없다. 커플링 자체가 연인이 전제된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커플링 자체를 자랑하게 됨으로써 고급 액세서리 브랜드에서도 커플링을 경쟁적으로 만들게 됐다. 그 결과, 이 브랜드들이 암묵적으로 서열화되면서 연인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누가 더 비싼 커플링을 끼게 되었는가에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 커플링 브랜드 전쟁에 국내 기업과 해외 유명 브랜드까지 가세하면서 이제 커플링 뒤에 커플이 가려지는 사태는 더 심해졌다. 결국 헤어져도 반지는 남기게 되는 해프닝이 이어진다.      


커플룩의 변화

생각할 것도 없이 커플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건 커플룩만 한 것이 없다. 커플룩이 대체적으로 상의로 제작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커플 바지, 양말, 속옷, 잠옷 같은 경우는 커플로 했는지 알 길이 없다. 바지는 그렇다 쳐도 양말과 속옷, 잠옷은 더욱 그렇다. 속옷이나 잠옷은 연인만의 만족을 위해 선택되는 커플 아이템이다. 결국 커플의 구속력과 대외적 홍보 및 과시에 가장 적합한 커플 아이템은 커플룩이다. 물론 대놓고 똑같은 커플룩도 있고 톤 앤 무드만 같은 것도 있지만 누가 봐도 커플룩은 커플룩으로 보인다.    

  

우린 이쯤에서 왜 이런 가시적 커플룩과 아이템이 성장하게 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80년대 말, 대학의 이데올로기적 엄숙주의는 사실상 해체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1988년까지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교련이 있었다. 대학에서 폐지된 것이 88년, 고등학교에서 사실상 사라진 시기는 93년인데, 이때부터 모형 총기를 사용한 수업은 없어졌다. 그 후,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던 이 과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1997년이다. 


결국, 민주화 이후의 대학 내의 이데올로기 운동이 사실상 방향성을 잃으면서 대학생들의 사적 표현이 가능해졌다고 봐야 한다. 즉 민주화 이전 같았으면 연애를 하거나 한가롭게 통기타를 치고 있으면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그러고 있냐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남자가 실반지를 끼고 여자 친구랑 커플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개념을 쌈 싸 먹은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민주화 이후 거대 담론이 사라진 자리에 자본주의적 브랜드와 패션의 유니섹스 화, 캠퍼스 커플의 당연시함이 등장했고 이어서 신세대, 엑스세대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이데올로기가 빠진 자리를 마케팅과 브랜드가 채웠고, 그걸 소비하는 사적 주체들이 채운 것이다. 결국 모두가 하나의 이념 아래 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급작스럽게 해체되면서 정치적 주체는 소비적 주체로 대체된 것이다. 그야말로 어떤 이데올로기도 대학 사회, 청춘들의 의식을 사로잡지 못하는 무정부적인 포스트모던한 시대가 열렸다고나 할까?


엑스 세대와 신자유주의

이 시대 광고는 제품을 이야기하지 않고 "너는 엑스세대"냐고 따져 묻기만 했고, 청춘들은 그 부름에 응답했다. CC는 당연시됐고, 연애도 능력이 됐으며, 자기표현도 개성과 능력으로 평가되는 시기가 열렸다. 우린 그 시기의 연장선상에서 살아왔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대학과 대학문화는 이 흐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 시기 이후 대학은 상업화됐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렸으며 청춘들은 IMF 이후 지금까지 취업과 스펙 쌓기에 내몰린 채 거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주인공이 될 자격을 뺏겨 버렸다. 


이들은 사적 주체로만 꾸준히 부름 받았고 이들 간의 연대는 교묘하게 방해되어 왔다. 청춘들은 시기별로 움직이는 유행과 트렌드에 따라 변화를 추구했으며 사랑도, 커플 아이템도, 그리고 커플의 행위도 세상의 흐름의 눈치를 보면서 이어져 왔다. 게다가 이 천 년대 이후 싸이월드와 블로그, 그 후 SNS의 등장으로 커플 아이템은 상호 간의 약속과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적나라하게 전시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눈썰미 좋은 네티즌들은 전혀 상관없을법한 연예인의 SNS에서 같은 아이템을 찾아내 디스패치보다 더 영리하게 커플 연예인을 찾아낼 정도가 됐다. 커플인 것을 숨기려고 한 건지, 드러내려고 한 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전시는 결국 커플 관계조차 타자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그 관계의 확실성과 성격, 커플이라는 성과 측정이 모호하고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붙잡을 이념, 기댈 신념, 인생을 지탱해줄 가치관이 사라진 시대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줄 뭔가를 청춘들은 끊임없이 찾고 있다. 추상적 이념, 윤리, 내세를 강조하는 종교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즉 90년대 이후의 청춘들은 아주 현세적, 현실적인 삶을, 지극히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조차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마음이 놓인다. 


모든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어 과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시대에 사랑은 취약한 개념이다.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여전히 알 수 없고 그 끝과 마무리는 무엇이며, 왜 끝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믿음처럼 사랑도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 가치가 더 있는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사랑을 이 시대에서 구원해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가 말한 것처럼 본고로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진짜 믿음이듯 말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것이 설 자리가 없는 요즘,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많은 커플들이 커플링을 비롯한 모든 커플템아 가진 유한한 수명에 기대어 오늘의 사랑을 지탱하고 있다.

이전 18화 승부 속옷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