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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10. 2022

여행자의 옷

사물의 우연 : 네 번째 서랍 - 여행

여행자의 옷에 대한 짧은 역사

과거의 여행자들에게도 옷은 중요했다. 20세기 초가 배경인 영화 <타이타닉>을 봐도 알겠지만, 계급과 부유함에 따라 여행자의 옷의 종류와 양은 달랐다. 부유층과 귀족들은 사냥, 파티, 점심과 저녁 식사, 티타임 등 여행지에서의 모든 상황에 따라 옷이 필요했다. 그러나 가난한 서민들은 여행의 기회도 드물었고, 여행하더라도 대부분 순례, 부역과 병역, 경조사 참여, 그리고 이민이 전부였다.      


사적 여행, 즉 여행의 상품화가 본격화된 건 20세기 들어와서부터다. 한국에서도 일제 강점기 즈음에 들어서야 여행사가 생겼고, 알다시피 여행 자유화가 되건 1980년대 말이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이나 되어서야 대학가에서 졸업 여행을 동남아 휴양지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여행지에서의 대중적 패션이란 것은 20세기적 발명품이고, 특히 우리나라에선 채 50년이 안 된 개념이다. 우리의 복장 문화와 여행 문화의 구조는 서양의 것을 따랐기에 여행지에서의 패션 또한 서양의 것을 따라야 하는데, 우린 이상하게 우리식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동남아나 태평양 휴양지나 피서지에서 래시가드를 입고 있으면 백 퍼센트 한국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뿐인가? 유럽 유명 관광지에서 등산복, 아웃 도어 패션을 입고 있으면 백 퍼센트 한국인이라는 말도 오래됐고, 몇몇 성당이나 박물관, 고급 레스토랑에선 이런 한국의 복장을 문제 삼아 출입을 제한했다는 말도 있다.      


우리는 왜 같은 여행복을 입었을까?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 걸까? 크게 두 가지 면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놀이 문화의 획일화, 다른 하나는 너무 늦게 찾아온 민주화와 여행 자율화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서 많은 부분을 없앴다. 양반들의 술 문화, 여행 문화와 같은 소위 풍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소멸시켰다. 강점기 이후 이런 소위 풍류와 한량 짓은 일부 엘리트와 부유층을 위한 요정 문화로 편입됐다. 이것이 다시 군사 독재로 이어지며 음성화 됐고 서민들은 이런 풍류로부터 배제됐다.


이런 배제와 함께 서민들은 급격한 산업화의 역군의 역할만 강요받았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밀집한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고향 문화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만 했고 대신 도시와 근로자들이 만들어낸 대중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영국 산업 혁명 시기에 대중문화와 프로 스포츠가 발돋움한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게다가 이 시기의 노동량과 시간은 엄청났기에 여가의 개념은 물론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 무지의 공백을 대중문화가 차지했다. 그 이후엔 도시 근교의 소위 말하는 계곡을 중심으로 탄생한 유원지가 차지했다.     


신혼여행 패션의 진화

잠시 신혼여행 패션에 대해서 알아보자. 9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신혼여행지는 강원도, 경주, 제주도로 이어졌고 이때의 패션은 남성은 정장, 여자는 한복을 입고 출발해서 여행지에서 편한 옷이나 일상복을 입고 여행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좀 젊은 부부들은 커플로 옷을 맞춰 입었다. 신혼부부의 커플 패션은 대부분 80년대 말에 탄생해서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이랜드 류의 캐주얼 브랜드의 옷이었는데 럭비 셔츠나 맨투맨 티셔츠, 버튼다운 셔츠 등이 주를 이뤘다.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떠오르고 90년대 들어오면서 대부분이 신혼여행 때 캐주얼 의상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박부진 교수의 논문엔 이러한 내용이 잘 담겨 있다.


갑자기 등장한 해외여행

신혼 여행자의 패션은 다른 부부를 모방하거나 학습될 수 있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유행된 해외여행에서의 패션은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었다. 누구나 처음 가는 여행이기에 어떻게 입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기껏해야 여자들은 패션 잡지를 통해 배우는 게 다였다.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잡지가 60년대 후반에 등장하지만 라이선스 패션 잡지는 90년대 중반-예를 들어, 보그 한국판은 96년에 발간됐다.- 이나 되어서야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패션 잡지와 신참 여행자와의 상호작용이 역설적이게도 여행지 패션의 획일화를 가져온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여행지가 유행을 타는 것처럼 그 여행지에 맞는 여행 패션도 그 유행의 궤적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그 시기 일상 패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했을 것이고.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흥으로서의 여행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과시적 행위라는 점이다. 그것은 어느 역사, 어느 대륙,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베블렌과 짐멜도 지적하는 것이다. 이 과시적 행위를 우리는 90년대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경제적 풍요로움을 일상적 수준 이상으로 과시해야만 했다. 또 이 무렵 패션 브랜드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브랜드들은 위계화되었고 그 위계상에 있는 브랜드 중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자부심, 자존심, 이미지 또한 형성된다고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기 주목해야 할 사건은 명품의 등장이다. 대표적 명품 브랜드인 루이뷔통 한국 법인이 1991년에 설립됐고, 그전에 처음 진출한 매장이 1984년엔 롯데면세점이었고, 이어서 1991년 호텔 신라였다. 즉 한국 명품 시장의 역사와 해외여행 자율화의 역사는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이전, 그러니까 1980년대 후반에 해외여행을 가는 부유층은 해외의 사치 상품, 즉 Luxury Goods를 면세점에서 살 수 있었고 그것의 일상적 과시는 자신의 특별한 여행 경험과 맞물려 부의 과시를 쉽게 했다. 이런 제품에 명품이란 말을 붙여 떠벌려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었고, 이것을 절묘하게 홍보로 사용한 것은 1995년 루이비통의 한국 홍보담당자였던 손주연 씨였다. 이 이후 명품과 해외여행, 면세점은 자기 과시의 트라이앵글을 이루면서 지금까지 공항의 면세점 인도장을 사람으로 메우고 있다.     


유행 타는 여행 패션

결국 지금 우리의 여행 패션은 여행 자율화와 함께 90년대 등장한 명품과 라이선스 잡지가 함께 만들어낸 해프닝이다. 그 해프닝은 루틴으로 정착해 우리의 일상과 사고 체계와는 아무 상관없이 여행지에서의 환상을 동반 생산하며 소비자들을 이 여행지에서 저 여행지로, 저 패션에서 이 패션으로 몰고 다니고 있다.     


여행자들도 이러한 삼각 편대가 에워싸 몰아 대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아웃도어를 입어 왔던 것이고 몰디브 같은 휴양지에서도 꾸역꾸역 래시가드를 입고 있는 것이다. 팔을 넘어 다리까지 꽁꽁 감싸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의 여자들이 수영장에서 했을 법한 옷차림을 패션이랍시고 비싸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 남자들은 이 패션의 흐름에서 한동안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90년대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 정장을 입고 있는 사진이 흔한 것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 급격히 성장한 아웃도어 시장과 맞물려 남자들의 여행 유니폼이 되어 버렸다.      


아웃도어의 공습과 획일화

놀랍게도 아웃도어가 일상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77년 산악인 고상돈 씨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면서 대학에 산악 동아리가 활성화됐고, 직장에서도 산악회가 생겼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등산복은 등산하는 사람만 입는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닌 필자가 폴라플리스 집업을 입고 학교 나타났을 때 산악 동아리 학생이 "넌 어디 산악회냐, 그건 어디서 샀느냐?"라고 물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편리함과 튼튼함, 글로벌 브랜드라는 매력에 끌려 2천 년 대 여행객은 아웃도어 브랜드를 선택했고, 그 유명한, 노스페이스 사장의 착각이 담긴, 한국 사람들은 등산을 사랑한다는 명언을 남기게 했다.     


이 특정 장소와 상황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는 대국민적 강박은 역설적이게도 상황에 맞는 옷을 입는 교육이 부재했음을 의미한다. 파티 문화나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복장 규제 문화가 사실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에서 상황에 맞는 옷차림이란 결국 직장과 가정으로 양분되고, 여기에 경조사 하나가 추가될 뿐이다. 젊은 층이 주도한 힙합 패션이나 클럽 패션 또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상황별 옷차림 교육으로 이어지기엔 너무 한정적이기에 여전히 우린 여행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전 국민적인 눈치 보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여행이 과시적 소비의 전범이 되면서부터 그 옷도 과시를 위한 도구가 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두가 과시를 위해 선택하면 과시는 평범해진다. 개성을 실현하기 위해 유행을 따르지만, 모두가 유행을 따라 모두가 평범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짐멜이 말한 것처럼 모두가 안심하기 위해서 하는 집단행동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이 안심 추구의 패션이 공항 패션을 한때 같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생각해야 할 건 그 어떤 명품도 3초 백 같은 신세가 되면 브랜드 이미지는 손상된다. 하물며 아웃도어 브랜드는 오죽할까?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랜드로 차별화 안 되니 북유럽 브랜드까지 들여왔지만 이미 아웃도어를 입음으로써 차별화되는 건 끝났다고 봐야 한다.     


끝없는 눈치보기

이제 공항의 패션은 다채로워졌다. 소위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 사진으로 미디어가 우리를 교육하기 때문이다. 이천십 년 대 들어 시작된 이 장구한 교육 과정과 제발 등산복 좀 그만 입으라는 다방면, 각계각층, 국제적인 항의 아닌 항의로 인해 단조롭던 여행 패션의 암울한 흐름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우린 캐리어 앞에서, 공항을 목전에 두고, 여행지의 날씨를 열심히 검색하며, 블로그를 뒤져가며 옷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서로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눈치작전을 한다. 차라리 등산복 입을 때가 편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우리의 눈치 보기는 끝이 없다. 예전에 한국 헬스장에선 욕을 먹지만 서양의 헬스클럽에선 괜찮은 행동이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게 뭘까? 바로 소리 내기다. 중량 스쿼트를 하면 잘하는 사람은 백 킬로그램까지 어깨에 짊어진다. 이 정도 무게를 지고 앉았다 일어나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내는 게 더 신기하지 않을까? 그러나 한국 헬스장에선 묵언 스쿼트가 의외로 많다. 잘해야 "윽~"하는 외마디 고함이나 터질 뿐이다. 한국에선 고급자로 갈수록 소리를 안 내는 게 미덕이다. 사실 필자가 다니는 헬스장에서도 기합 소리 듣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반면 서양의 헬스장에선 시작 전부터 기합이 터지고 주변에선 “컴온” 하는 격려의 소리가 터진다.      

두 번째는 뭘까? 데드리프트인데 사실상 이건 헬스장이 입점한 건물의 특성과도 관련도 있지만 이 역시 조용한 헬스를 지향하는 한국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회원복이다. 호주, 영국, 미국 등의 헬스장에선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럼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있을까? 바로 일본이다. 물론 이것도 위생에 관한 인식의 차이도 있고, 대량 세탁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영상 속 크리에이터는 서양에선 운동하는 곳, 즉 헬스장에서의 자기표현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단체복 입는 거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튀지 않으면서 독보이게

이야기가 산으로 간 거 같지만 결국 우리와 일본의 문화는 다른 듯 같은 점이 있다. 바로 타자의 인식이다. 서구에선 타자의 다름을 긍정으로 보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우리와 일본은 타자의 다름을 경계하고 "튄"다는 표현으로 그 다름을 같음이나 평균으로 수렴하려고 한다.


이러한 성향이 우리를 캐리어 앞에서 고민하게 한다. 다르면서도 같아야 하고 같으면서도 달라야 한다는 강박. 다르면 어디까지 달라도 되고, 같으면 어디까지 같아야 하는지 알 수 없기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강박. 이런 강박은 래시가드로 이어지면서 워터 파크와 스파, 해변, 계곡 강변할 것 없이 모두를 더위 속에서도 싸매게 했다. 그래서 오죽하면 해외 해변에서 래시가드를 입은 사람은 한국 사람과 서퍼밖에 없다고 하겠는가.


물론 누군가는 래시가드를 위한 변명을 하겠지만 래시가드를 입지 않고 비키니를 입은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한 그 변명은 부질없다. 해변에서 수영복 위에 카디건이나 티셔츠를 덧입는 유일한 나라라는 오명은 우리가 얼마나 타자의 시선을 경계하고 인식하며 사는 피곤한 사회적 존재인지 새삼 알게 했다. 그것이 이제 래시가드로 바뀌었을 뿐이다.     


봉인된 여행자의 자유로움

결국 캐리어 앞에서의 고민은 일상과 사회적 존재인 주체를 여행자로 탈바꿈시키지 못하게 한다. 여행자의 옷차림은 여행 자체가 공항에서부터 다시 공항에 돌아올 때까지 SNS로 생중계되기에 옷차림 또한 자신의 여행,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행을 품평하는 불특정 다수의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선택은 필요와 시선 앞에서 혼란스럽게 강요될 수밖에 없다.      


필요를 위해서만 캐리어를 채우면 군대에서 군장을 싸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남자의 캐리어는 그래서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다. 아니 빈말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것으로 말이다. 신혼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면 정말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다. 가족 여행이라면 캐리어의 대부분 공간은 아이와 엄마의 것이니 남자는 옷 몇 가지, 세면도구나 그 위에 던져 넣으면 된다.


결국, 캐리어는 시선을 위한 상상과 이미지로 채워진다. 여행지에서 이미 촬영 스팟은 정해졌고, 날씨는 체크됐다. 날씨와 여행지의 분위기, 그리고 어떤 색 옷이 사진이 잘 나오는지까지 고려해서 캐리어는 여행지라는 무대의상이 담긴다. 장면 1과 2를 위해, 사건 1과 2를 위해.  


 <꽃보다 할배>에 나온 노배우들의 짐 싸기를 떠올려 보라. 옷보다 소주 먼저 챙기시지 않던가. 무대를 떠나, 자연인으로 가는 여행, 뭐가 더 필요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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