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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12. 2022

스마트폰/포켓 와이파이

사물의 우연 : 네 번째 서랍 - 여행

여행자의 와이파이

아내가 공항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휴대용 와이파이 단말기를 빌리는 것이다. 환전은 공항 출발 전에 끝내고 면세품 인도는 탑승수속 다음에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전에 하는 유일한, 가장 중요한 일은 이것뿐이다.     


여행 중이라서 연락을 못 받았다는 핑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불과 십몇 년 전만 해도 비싼 비용 때문에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또 해외여행을 간다면 연락이 안 되는 걸 당연시했다. 지금도 입국 신고서에는 머무는 숙소와 연락처 기입란이 있다. 그것은 그 시절의 유산이다.     


지금처럼 휴대용 와이파이가 일상인 한국 사람에게 이제 이런 공란은 불필요하다. 세계인들도 그 나라의 유심칩을 구하거나 그 나라의 포켓 와이파이를 사기 때문에 연락이 안 되어서 잠적하는 경우는 불법 밀입국자나 범죄자 외에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당신이 아마존이나 히말라야 어디에 있어도 전파는 따라간다. 어찌 됐든,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 중에 연락이 안 되어서 국제 미아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 전화로 안 되면 카카오톡 메신저로 화상통화를 하는 시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출장을 가면서 현지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다든지, 같이 간 동료와 바람을 피우는 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오히려 한 번의 영상 통화로 본국에 있는 배우자나 애인을 안심시킬 수 있기에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음모를 꾸밀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붙잡힌 여행자     

어찌 됐든 이런 이유로 스마트폰은 여행자를 현실과 일상에 더 붙잡아 놓는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이 분리되어 있을 때는 카메라는 여행을 위한 도구, 휴대폰은 긴급 상황을 위한 도구였다. 해외여행을 간 부하 직원에게, 아니 솔직히 휴가 중인 부하 직원과 통화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시대가 시작된 건 의외로 아주 최근의 일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기술이 그런 시대의 문을 달았고 우리가 그 시대의 문을 열었다.      


여행자가 붙잡고 있는 스마튼 폰은 일상에서부터 여행지까지 여행자를 따라간다. 일상에서의 유리됨(물론 그건 불가능하지만)을 만끽하려는 여행자는 존재할 수 없다. 몰디브 같은 곳에 있는 오버 워터 방갈로에서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투명한 물속을 들여다보며 야릇한 분위기를 잡는 순간에도 카톡 알림음은 울린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서도 울리는 알림음.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과 미군이 세운 통신탑과 남아 있는 전쟁의 유물을 볼 때도 주머니에선 진동이 울린다.      


잠시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주드 로가 연기한 스나이퍼 부대의 표적이 주로 누구이었는지를 떠올려 보자. 첫째는 장교, 두 번째는? 바로 통신선을 연결하는 병사들이었다. 통신은 생명줄이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스탈린그라드, 그 혼란스러운 곳에서도 이기기 위해서는 서로를 연결해야만 했다. 그만큼 통신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다. 모스 부호도 그렇고 등대의 불빛도 그렇다. 모두가 생존을 위한 연락을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통신의 기본 덕목은 결국 인간이 인간을 구하는 도구다. 그것도 더 빨리, 더 가깝게.      

잃어버린 고독할 권리

이제 통신은 소통의 도구가 됐고,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는 수단이 됐다. 이 지구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당신은 이메일을 받아 볼 수 있다. 비용의 차이만 있을 뿐, 시간의 차이는 없다. 그래서 당신은 격리될 수 없다. 유배될 수도 없고, 고독할 수도 없다. 바우만의 지적대로 우린 고독할 권리도 잃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고독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고독한 미식가>와 <와카코와 술>, <낮의 목욕탕과 술>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재미있어하고 위로받는지도 모른다. 이 인기 있는 일본 만화들은 모두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일본 사람에게 고독을 음미의 대상으로 전환시켰다. 죽음을 부르는 고독에 대해선 모른 척하면서 말이다.      


우리도 그럴까? 우린 정말 고독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나? 아니다 우도에서도 카 톡이 오는 시대에 무슨. 고독은 밥과 술집, 목욕탕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전화를 꺼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스마트 폰과 함께하는 여행은, 미안하지만 일상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마트에서 전화받는 것과 주말에 상사에게 전화나 카톡을 받는 것, 그리고 푸켓의 해변에서 카톡과 전화를 받는 것 사이엔 아무런 차이도 없다. 단지 당신이 비싼 돈을 들여서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마침 일을 할 수 없는 곳에서 전화와 카톡을 받을 뿐이다.     


여행의 생중계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 것이 불편함을 초래하고 여행과 일상을 분리하는 데 장애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행지에서도 스마트폰이 필요한 것은, 다시 말하지만, 생중계 때문이다. 마치 <트루만 쇼>처럼 우린 우리의 여행을 생중계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나를 말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그곳엔 현실의 나는 없고 내가 원하는 나,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내가 있다. 트루만에게 허락된 세상이 그렇듯 말이다. 그 가상의 나를 위해 우린 여행을 하고 그 여행지에서 만난 나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인터넷이 필요하고 와이파이가 필요하며 결정적 도구인 스마트폰이 필요한 것이다.     


Thumbs Day

미국 헬스클럽 슬랭 중에 “thumbs day”라는 말이 있다. 헬스를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부위별로 날을 정해 놓고 운동한다. 오늘은 어깨, 내일은 팔, 다음날은 다리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엄지의 날이라는 건 무슨 운동을 말할까? 간단하다. 바로 헬스클럽에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실제로 헬스클럽에서는 운동보다도 사이클 페달을 건성으로 돌리면서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기구 앞에 앉아 게임을 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린 자기 몸을 위해 운동하는 시간, 그것도 몇십만 원 넘는 돈을 쓰며 다니는 헬스클럽에서도 스마트폰을 떼어 놓질 못한다. 그뿐인가, 워터파크, 스파와 같은 물놀이 시설에서도 맘 편히 사진을 찍고 카톡을 확인하라고 방수 팩까지 나왔으니 우린 언제 어디서나 이걸 벗어날 수가 없다.     


결국 우리에게 고독이 주는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세상과의 단절, 고립, 유배, 홀로 있는 시간은 태평양 한가운데서도 허락되지 않는다. 당신이 공항에서 그 “도시락”을 제일 먼저 챙긴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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