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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20. 2022

내비게이션

사물의 우연 : 네 번째 서랍-여행

항해자를 구한 나침반과 육분의

선원들이 근해에서 방향을 잡기 시작한 건, 대략 천 년 전쯤, 항해를 위한 나침반이 만들어진 이후부터다.

육분의가 만들어진 15세기 이후부턴 위도를 파악해 대양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됐다.


이전까지의 모든 여행은 아는 길과 아는 곳으로 이뤄졌고 미지의 세계를 가기 위해선 성과 성, 영토와 영토를 이어가야 했다. 바다 여행은 해안을 따라 움직이거나 섬과 섬의 연결이었다. 대륙에서 대륙으로 갈 때는 다음 지점까지 아는 안내자가 이곳에서 그곳까지, 그리고 다음 지점까지 아는 안내자가 다시, 그렇게 릴레이식으로 안내했다.


십자군도 그렇게 원정을 갔다. 목숨 걸고 성지 순례를 다녀왔거나 돈에 눈이 먼 모험심 강한 상인의 안내를 받았다. 바닷길은 동로마제국이나 이탈리아 해양 도시 국가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유럽 본토 제국의 잘 나가는 왕이라도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이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던 이유다.  


그래서 여행은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어의 고통, 진통, 고생, 노고 등을 나타내는 travail처럼 고생길이었다. 그 단어가 고생을 깊이 숨긴 채 영어로 넘어와 여행이 됐다.


길의 앎과 모름

이 넘어옴의 경계를 가르는 건, 관광 및 여행과 나그네의 방랑 및 순례를 구분 짓는 것은, 결국 길의 앎과 모름에 있다. 더 나아가, 가려고 하는 곳에 대한 앎과 모름의 차이에 있을지도. 관광산업의 발달은 여정의 불확실성, 낯선 곳에 대한 무지, 과정의 불편함,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그 최근의 결정판이 내비게이션이다. 필자의 20대 후반, 아니 30대 중반까지도 거의 모든 차에는 전국 도로지도가 실려 있었다. 국내의 낯선 도시로 떠나기 전 휴게소 등에서 지도책을 펴놓고 경로를 검토해 보는 건 당연하고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는 정말 열심히 지도 배우는 법을 배웠다. 축척을 이해하고 지도에 나타난 각종 기호들을 외워야 했다. 다리, 사찰, 강, 산. 등고선을 잃고 그 넓이에 따라 고도의 가파름을 가늠할 수 있어야 했고,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이라도 고속도로, 국도, 철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했다. 지금도 이런 지도책을 살 수는 있겠지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낯선 도시, 낯선 나라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으니까.     


물론 지금도 여행지마다 지도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지도는 지도 본연의 정확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최대한 많은 관광명소와 식당, 쇼핑센터 등을 소개할 뿐이다. 그것은 관광안내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광의 효율성과 효과를 위해 건네진 설명서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그 지도를 보고 가야 할 곳, 보아야 할 곳에 동그라미를 칠뿐 그곳에 가는 법과 여정을 고민하지 않는다. 종이 위에 그려진 길과 등고선을 더듬으며 노선을 구상하지 않는다.      


항해자VS탐험가

내비게이터는 항해자라는 뜻이다. 이 단어를 상호로 쓴 대표적인 상품이 넷스케이프의 웹브라우저인 내비게이터와 자동차 링컨 내비게이터다. 전자는 인터넷 항해자들을 위해, 후자는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품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경쟁자는 모두 익스플로러에게 정복당했고, 밀리고 있다. 링컨은 결국 비행사(에이비에이터)까지 불러와 싸우고 있다.


내비게이션은 항해자에게 탐험가의 위험성을 제거해준 도구다. 말 그대로 자동항법 장치니까. 바다처럼 길이 눈에 보이지 않고 앞날의 날씨가 예측 불가한 곳에서 이 장치는 여러 생명을 구했을 것이다. 덕분에 바다는 더 이상 미신의 영역이 아니게 됐는지도. 그런데 우린 왜 바다가 아닌, 흰 선과 노란 선이 확실한 길 위에서도 이것에 의지할까?     


내비게이션의 짧은 역사

애초에 초창기 내비게이션은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과속카메라와 규정 속도 정도를 알려주는 게 다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비게이션이 본격화된 건 불과 십몇 년 정도다. 최초의 상용화는 일본과 미국이었지만 작동 방법과 저장 용량 때문에 대중화는 한참 뒤였다. 우리나라에서 자체 개발된 것도 97년에 등장했고, 앞서 말했듯 대중화된 건 훨씬 뒤다. 물론 이것의 등장 이후 자동차 지도는 사라졌다. 운전석 문의 수납공간이나 조수석 앞 글러브 박스에 늘 박혀 있던 그 두툼한 월간지 같던 지도책이 사라진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훔쳐 간 것

이제는 낯선 여행지의 렌터 카에도 내비게이션은 기본 옵션이다. 그 내비게이션은 낯선 관광지의 주변 관광 스폿과 맛 집, 쇼핑센터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자동차에 항해자 대신 관광 가이드를 하나 싶어 놓은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자유 여행도 관광으로 만들 수 있다. 불과 십몇 년 전만 해도 제주도에서 렌트를 하면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야 했던 수많은 자유여행자들이 궤도 위에 올라탄 트램처럼 주어진 노선대로 움직이고 있다. 최대한 빠른 길로 가르쳐주는 내비게이션 때문에 제주도 해안도로를 타기 위해선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거역해야만 한다. 우연히, 실수처럼, 사건처럼 마주치는 해변의 풍경 또한 예약제가 되어 버렸다. 이제, 우연한 풍경이란 없다.     


낯선 곳에서 지도 한 장으로 원하던 곳을 찾는 쾌감도 사라졌다. 성취감도 당연히 없다. 낯선 곳에서의 운전자는 모험가도 항해자도 탐험가도 아니다. 조종사는 더욱더 아니다. 그저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관광객, 아바타일 뿐이다. 관광지의 내비게이션 때문에 모든 여행자는 내비게이션을 켜는 순간 단체 관광객이 된다. 내비게이션은 수많은 정보와 관광객의 패턴을 저장하여 여행자를 최적의 코스로, 유명한 장소로, 협찬/협력이 된 관광 맛집으로 당신을 안내한다.     


해외에 간다고 해서 이건 달라지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부터 바다 건너 미국까지 차를 렌트하면 내비게이션이 따라온다. 심지어 영어나 일본어를 몰라도 된다. 한국어로 된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자동차도 수두룩하니까. 이제 여행에서 낯선 것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할 때의 모험심을 소멸시키는 것이 관광 산업의 목표는 완성됐다. 궁극적으로 모든 여행객을 관광객으로 만드는 게 목표도.      


고통스러운 순례, 여행, 방랑은 사라졌다. 나그네와 방랑자는 전설이 됐다. 모두가 모두와 소통이 가능한, 낯선 것을 멸종시키는 첨단 기술로 인해 우린 낯선 경험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채 길 위로 나선다. 어디를 가든 똑같다. 우린 이제 어디를 가야 탐험가가 될 수 있을까?     

 

부산, 그것도 관광지가 많은 곳에 사는 필자는 낯선 장소로 가기 위해 스마트 폰 지도의 지시에 따라 길을 찾는 관광객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그 맵이 길을 잃으면 사람도 길을 잃고 맵이 방향을 잃으면 사람도 함께 방향을 잃지 않을까? 아마 그럴 때, 나 같은 로컬 사람에게 다가와 길을 묻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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