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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08. 2022

호텔 VS게스트하우스 VS펜션

사물의 우연 : 네 번째 서랍 - 여행

넘을 수 없는 간극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사이엔 커다란 간극이 있다. 호텔은 숙박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사치스러움과 그 고유의 환상이다. 반면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자의 연대감과 젊음의 낭만, 효율성이라는 유무형적 가치를 사용자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재생산되는 곳이다. 도박장으로 비유하면 호텔이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라면 게스트하우스는 그야말로 하우스다. 모르는 사람은 검색해보길.      


호텔은 잠을 자는 곳이 아니다. 숙박은 기능적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호텔은 현관에서부터 로비, 그리고 꼭대기의 스카이라운지와 곳곳의 식당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토털 패키지다. 그러므로 객실료엔 숙박료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호텔이라는 유무형의 상품 가치가 포함된 것이다.     


그건 명품백이 뭔가 담는 사물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명품백의 내부 공간은 디자인 요소이지 화물 트럭의 짐칸이나 엘리베이터의 최대 탑승 인원처럼 최대 탑재량이나 부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명품백의 손잡이는 백 안에 담긴 무게를 견디기 위한 것이 아닌 디자인 요소다. 버스 손잡이가 오직 흔들림에서 버티기 위해서 디자인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호텔이 파는 것들

호텔도 이런 종류의 제품이다. 쓸모없는 것들로 가치를 만들고, 불필요한 것의 필요성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어린아이가 반짝이는 구슬이나 모조 플라스틱 목걸이 등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박스에 고이고이 모아두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본질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들의 향연이 호텔의 가치를 구성한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그것을 대놓고, 과잉을 해서 보여 주지만 대부분의 호텔들은 안 그런 척한다. 그 모든 것들이 꼭 있어도 될 것처럼 거기 있다. 벨보이와 도어맨의 근엄한 버건디색 제복과 과장된 모자, 금빛 테두리의 회전문, 대리석 바닥과 그 바닥에 새겨진 이름 모를 기하학적 무늬들, LED 조명 시대에 천장에서부터 바닥을 향해 거꾸로 피어 있는 오동나무 꽃 같은 등들이 잔뜩 있는 샹들리에, 현관에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프런트, 작가를 알 수 없는 몇 개의 그림들,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음료를 파는 라운지와 커피숍, 금빛이나 붉은색으로 칠해진 느리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이런 것들은 효율성의 잣대로 보면 0점에 가까운 것들이다. 그러나 원래 여행 자체가 효율적인 경제활동이 아니기에 여행자들은 호텔의 비효율성에 대해 무감하거나 눈감아주거나 당연시한다. 호텔도 여행자의 환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호텔의 소비

여행자는 객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호텔을 소비한다. 현관, 로비, 프런트, 체크인, 엘리베이터, 복도, 객실에 들어오기까지 여행자의 호텔 탐닉은 이어진다. 시선으로, 발걸음으로, 향기와 분위기로, 마주치는 낯선 여행자와 제복 입은 직원과의 마주침으로.     


그 소비의 절정이 객실이다. 지나치게 큰 욕조, 침실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욕실 벽, 또는 바로크 스타일의 손잡이가 있는 탁자와 서랍장, 지나치게 높은 침대, 머릿수보다 많은 베개, 복잡한 간접조명들.          


객실 창밖의 경치 또한 호텔 상품의 주 구성 요소다. 바다나 도시 야경이 보이는 방이 더 비싼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결국 투숙객은 집에서라면 안 했을 법한,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는 행위를 호텔에서는 해야 “만” 한다. 호텔의 완벽한 소비를 위해 꼭 필요한 행위이기에.     


게스트하우스의 전략 

호텔의 반대쪽 극단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로비도, 제복도, 프런트도, 벨보이와 도어맨도, 샹들리에가 달린 천장과 대리석 바닥도 없다. 객실엔 사생활이 없고, 침대는 군대와 다를 게 없다. 바다 경치나 도시 야경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오직 몇 명이 함께 자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뿐이다. 같이 자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객실의 가격은 올라간다. 숫자가 줄어든다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그저 공간의 여유와 일행이 한방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돈이 더 치러진다.     


게스트하우스의 부가 가치는 “청춘의 경험”의 몫이 된다. 게스트하우스가 가진 불편함과 낯선 이와의 어색한 동거는 젊은 시절의 경험,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이라는 말로 미화되어 번역된다. 이것이 오역임을 누구도 항의하지 않는다. 이런 오역을 통해 영화 <호스텔>에서 우리가 느꼈던 낯선 이와 낯선 곳의 공포는 은폐된다.      

게스트하우스 시설의 불편함과 호텔에서의 좋은 숙박 경험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호텔은 높은 가격을 품격, 세련됨, 트렌디함, 서비스, 편리함, 안락함 등을 상품 구성 요소에 밀어 넣어서 합리화시키고, 게스트하우스는 사생활 보장의 불가능함과 시설의 상대적 불편함을 경제성, 효율성, 여행지에서의 낭만 등과 같은 정서적 가치로 합리화시킨다. 결국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는 상대의 장점을 철저히 외면한 소비자에게 선택된다. 더 나아가 상대의 단점을 철저히 은폐하는 소비자를 통해 두 공간의 두 소비자 군집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격리한다.     


스토리 메이킹의 책임

호텔은 그 자체가 스토리 텔러이자 스토리이지만 게스트하우스는 소비자가 스스로 스토리 텔러이기에 각자의 스토리를 낯선 이와 함께 생산해야만 한다. 그 스토리는 게스트하우스가 제공하는 유일무이한 무형의 부가 가치이기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떤 이야기도 생산하지 못한 소비자는 게스트하우스의 경제성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고, 여행 스폿과의 접근성, 이동의 효율성 등을 강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론적으로 호텔 사용자의 여행은 고부가 가치적 산업이고, 게스트하우스 사용자의 여행은 저부가 가치적 산업이 된다. 그러므로 사용자들은 상반된 숙소 선택을 시작으로 여행에서의 일관된 스토리라인의 구축과 개연성 확보를 위해 다른 여행 경험도 동반되어 조율될 수밖에 없다.     


여행자의 태도와 선택

선택의 기로 앞에 선다.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맛집인지 끼니인지, 교통비 절감인지 이동 시간 단축인지 등을 말이다. 쇼핑 시간과 장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호텔과 격이 맞는 쇼핑 공간은 백화점, 아웃렛 등이고 여기에 간단한 술이나 안주를 사기 위해 마트나 편의점이 등장한다. 그러나 핵심 쇼핑 스폿은 당연히 백화점과 아웃렛이다. 이것은 외국 호텔에 갔을 때 관광 안내 책자를 모아 놓은 곳에 가보면 안다.      


반면 게스트하우스 소비자는 스스로 경제적 인간,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 여행에서의 낭만과 경험 획득을 중요시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포지셔닝시켰기에 그 이후의 의사결정도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안 그러면 인지부조화가 생긴다. 이 불편한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한 스스로의 결정을 설득시키는데 실패한다. 결국, 자신의 여행에 대한 태도가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SNS 등을 통해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면 여행지에서 모든 결정은 즉흥적으로 이뤄져도 되고 결정에 일관성이 없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미 출발할 때부터 SNS에 여행 중계하기 시작하면 의상에서 항공편, 숙소, 음식, 쇼핑, 관광 스폿까지 하나의 이미지와 콘셉트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실체가 형상화되는 SNS를 통해 여행자인 자신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여행자 이미지의 빌드업이다.     


서로 다른 인증숏

두 공간에서 찍은 여행자의 인증숏이 두 공간의 대립적 가치를 보여준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호텔 인증숏은 대부분 원샷이다. 즉 한 명만 나온다. 많아야 두세 명이다. 그나마도 배우자이거나 애인이다. 이들 인증숏은 정돈되어 있다. 로비에서 찍은 사진은 당연히 옷을 차려입은 채로 찍는다. 조식을 먹으러 내려온 김에 찍는 사진은 거의 없다. 그런 사진은 남자들뿐이고. 객실에서 찍은 사진도 침대는 잘 정리되어 있다. 호텔은 그 공간의 구조와 감각이 품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반면 게스트하우스 인증숏은 혼자서 찍은 건 거의 없다. 거의 둘 아니면 셋, 대부분은 단체샷이다. 그곳에 묵은 사람들과의 파티 장면, 술자리 장면이 대다수다. 게스트하우스의 가치가 객실과 로비, 그리고 건물의 외형에 있지 않음을 여행자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다. 결국 게스트하우스의 사용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성 좋은 사람,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표상, 여행의 낭만을 아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이러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다시 말하지만, 호텔은 그 자체가 스토리텔러이고 게스트하우스의 스토리는 손님이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결국 게스트하우스의 차별화는 그 스스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서비스는 대동소이하고 건물과 공간은 평이하기 때문이다. 추구할 수 있는 차별화는 물리적 차별화, 객관적 차별화인 입지뿐이다.  


입지와 찾는 수고

그러나 숙박업 중 가장 좋은 입지를 차지한 곳은 당연히 호텔이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다. 한적한 휴양지나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있다는 특급호텔을 제외하면 거의 그렇다. 호텔이 그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접근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 비싼 땅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치스러움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 사치스러운 자리에 서 있는 사치스러운 호텔. 이것이 바로 호텔의 가치 형성의 출발점이다.     

반면 게스트하우스는 찾는 수고를 들여야 할 정도로 주택가나 골목 안에 있다. 상식적으로 낯선 도시에 가면서 그 도시의 대로변이나 유명한 랜드마크 인근이 아닌 평범한 주택가나 이면도로, 심지어 골목 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는 것은 여행자에겐 엄청난 불편함을 초래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조차 게스트하우스의 조건이다. 그 낯섦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과시, 스마트폰 지도 앱을 통해 세련된 방법으로 미지의 공간에서 목적된 장소를 찾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의 과시, 이러한 과시가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여정에 담긴 고유한 가치다.      


다른 선수-펜션

펜션은 그 양자와 다른 환상을 갖고 있다. 펜션의 차별화된 요소는 별장의 대여다. 그렇다. 사치스러운 별장의 숙박업적 변환이 펜션이다. 그래서 펜션은 별장만큼 대중교통으로부터 유리되어 있고, 도심과 떨어져 있다. 또는 떨어져 있음을 흉내 낸다.      


펜션은 별장에서 하는 모든 것을 흉내 낸다. 야외에서의 바비큐, 캠핑, 캠프파이어 등. 커플 단위, 가족 단위, 대학생 MT 단위든 간에 펜션에서 하는 고객의 행위와 이를 위해 펜션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유사하다. 그 양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펜션의 외관은 그래서 다른 숙박업소와 차별화되어야 한다. 누가 봐도 별장 같아야 한다. 북유럽의 오두막을 흉내 내거나 시외의 보기 좋은 전원주택을 흉내 낸다. 그리고 산과 강, 바다를 인근에 두고 있다. 교통의 접근성 따위는 상관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펜션들은 대중교통 거점까지 고객을 모시러 온다.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자연환경이 좋다는 것, 일상에 하지 못했던 야외 요리와 활동,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 그것은 부유층이 별장을 짓고 그곳에서 하는 행위와 유사한 것이다.     


결국 펜션은 부유층의 상징 자본의 부스러기를 소비하는 행위다. 이런 유사한 소비행위 중 대표적인 것이 명품이다. 물론 일부 호텔의 인테리어도 소비자에게 그런 착각을 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펜션은 부유층의 별장의 외관과 입지만 흉내 낼뿐 내부의 도구들은 평범하거나 그 이하라는 것이다. 결국 고객은 그 외관과 한적한 자연경관의 누림으로 부스러기의 소비를 끝내야 한다. 과잉이 없는 실내와 도구들에 큰 비중을 두지 않으면서 말이다.      


경쟁자는 아니다.

상투적이지만 이들은 서로의 경쟁자가 아니다. 호텔조차 그 시장이 구분되어 있는 마당에 서로가 경쟁자일 수 없다. 물론 펜션도 이제는 세분화됐다. 풀빌라가 있는지, 전망은 어떤지, 내부 시설은 어떤지에 따라 어지간한 특급호텔과 그 가격이 비슷하다. 반면 게스트하우스는 고독하게 시장을 지키고 있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서 속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보여줬던 차서원의 퍼포먼스는 게스트하우스만이 생산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소비자에게 재차 각인시켰다.      


당신이 어디로, 무슨 이유로 떠나 어디에서 자든,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든 뒤 특급호텔을 선호하게 된다고 해도 너무 놀라지 말길. 사람이 늙으면, 태도도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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