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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Aug 31. 2022

이어폰/헤드폰

사물의 우연 : 세 번째 서랍-일상/하루

     

이것들은 단 하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단절시킨다. 스마트 폰 사용자가 안 보이는 세상 및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눈앞의 세상과 사람과의 소통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타자를 듣기 위한 물건

이어폰과 헤드폰, 에어팟은 소리를 듣는 도구 중에서 가장 폐쇄적이다. 이어폰과 헤드폰이 만들어지기 전에 음악은 공개적이었다. 애초에 헤드폰은 음악을 듣기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니었다. 헤드폰의 첫 번째 발주처는 미 해군이었다. 그들은 음성 전기 신호를 듣는 데만 헤드폰을 사용했다. 음악은 그들의 들음의 범주에 있지 않았다.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잠수함에서 헤드폰을 쓴 채 잠수함 외부의 소리를 듣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병사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야전의 상황실에서는 헤드폰으로 쉴 새 없이 모오스 부호를 들었고, 탱크 부대들은 서로 간의 통신을 위해 헤드폰을 머리에서 빼지 않았다.      


그렇다. 역설적이지만 헤드폰은 외부의 신호를 더 잘 듣기 위해 발명된 것이었다. 그러다 50년대부터 음악을 듣는 용도로 발전됐고, 50년대 후반부터 눈부신 발전을 한다. 그 발전의 정점을 이끈 것이 우리가 잘 아는 70년대 후반의 소니의 워크맨이었다. 이때부터 헤드폰과 이어폰은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음악을 잘 듣기 위해서, 더 나아가 외부의 소리를 더 잘 차단하기 위해서 발전됐다.      


외부와의 단절

청춘의 헤드폰과 이어폰은 고독의 상징이자 침묵의 상징이다. 자신만의 소리를 듣기 위해 타자와 외부의 소리를 나로부터 격리시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외딴섬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어쩌면 헤드폰과 이어폰의 본질적 기능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걸 낀 사람에게 말을 걸기 위해선 타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의 음악을 끊고, 그가 헤드폰, 이어폰을 기꺼이 벗도록 하는 용기. 그래서 당연히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만-길을 묻는다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하는 타자는 그것이 없는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어폰과 헤드폰은 음악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돌이켜보면 80년대만 해도 음악은 공개적이었다. 속칭 마이마이나 워크맨이 한국에 들어와서 대중화되기 전, 우린 <박하사탕>의 한 장면처럼 독수리표 카세트로 음악을 들어야 했다. 사적인 공간에서도 음악은 스피커를 통해 나왔으며 그 소리들은 공간을 울리고 내 몸을 울렸으며 귀를 울렸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 방이 곧 음악 감상실이었다. 이 공간의 다양한 성격 전환은 방의 숫자가 적었던 시절엔 당연한 것이었고,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이 공간의 전환 속에서 내리 교육이 행해졌다. 형이 듣는 음악을 동생이 들었고, 언니가 좋아하는 가수를 동생도 좋아했다. 형의 공부 시간에는 옆에 앉아 만화라도 읽어야 했고, 언니의 공부시간에는 옆에 앉아 연애편지라도 써야 했다. 소리와 침묵이 한 공간에서 엇갈리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 공간을 공유하는 가족들은 소리와 침묵의 시간에 대한 동의와 공감이 있어야 했다.    


말하지 않고 나누지 않는다.

이어폰과 헤드폰은 음악의 나눔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어폰의 한쪽을 내주어 나눠 들은 들, 이미 그건 불구가 된 음악이다. 결국 음악을 듣는 행위는 사적인 정체성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은 당연 한말이지만, 듣는 이의 정체성을 외부로 나타낼 수 없다. 그의 이어폰을 뺏어 듣거나 스마트 폰을 잃어버려 누군가 주어 듣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렇다. 공간을 울리던 음악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냈다면 이어폰은 그 기능을 좌절시킨다. 과거 붐박스를 들고 소풍을 들고 가던 세대나, 그걸로 음악을 들으면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던 흑인들은 음악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할 수 있었다. 자동차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도 자동차의 인테리어, 튜닝과 함께 운전자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어폰은 그 기능을 삭제시킨다. 결국 이어폰으로 나오는 음악은 자기 충족의 도구다. 내 취향을 외부로부터 은폐시킨다.     


소비자의 착각

소비자는 그러나 종종 이어폰으로 멋진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이 그 음악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착각한다. 힙하고 핫한 음악을 들으면 그런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고, 그런 음악을 듣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더 나아가 패션과 헤어스타일, 음악이 삼박자를 이루어 자신의 정체성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고 착각한다. 


이것이 착각인지 이해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이어폰이 거의 주인공급으로 나오는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를 보면 된다. 주인공 베이비- BABY 베이비다-는 영화 내내 이어폰을 꽂고 있다. 관객은 그가 듣는 음악을 함께 듣고, 그의 운전 실력을 보고, 그의 패션과 리드미컬한 걸음걸이를 보며 그가 얼마나 매력 있고 세련된 사람인지 “보”게 된다.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음악으로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보”게 된다. 


그러나 이건 영화적 장치다. 현실이라면 그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고막이 뚫어질 정도로 크게 음악을 듣는다면 또 모를까. 그렇게 크게 들어도 가까이 접근해야 알 수 있다. 결국 이 영화에서 관객이 주인공과 함께 듣는 음악은 감독의 속임수다. 영화의 화면을 장식하는 OST와 그가 듣는 음악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감독은 그의 캐릭터를 음악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불행히도 우리에겐 이런 감독이 없다. 우리가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을 세상에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말풍선처럼 우리의 플레이 리스트를 머리 위에 띄워줄 만화가도 없고 말이다. 결국 이어폰과 헤드폰으로 드는 음악은 플레이어를 도난당하기 전까지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제품, 헤드폰과 이어폰 광고는 음악의 시각화를 통해 소비자가 듣는 음악이 본인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한다. 당신이 입고 있는 패션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런 광고들은 그 정체성을 잘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음악을 담는 플레이어와 그 음악을 귀로 보내는 이어폰과 헤드폰을 잘 선택하라고 말한다. 우리의 착각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서진이 AC/DC의 티를 입는 이유

결국, 좋아하는 음악으로 내 정체성을 타자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나 이어폰, 헤드폰을 좋은 것, 고급으로 구비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음악에 맞는 이미지를 덧입어야 한다. 메탈리카를 듣는 터프한 내면을 타자에게 알리고 싶다면 징이 박힌 가죽 재킷이라도 입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 이상 당신이 귀로 듣는 음악은 당신에 대해 세상을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음악을 소재로 한 티셔츠 중에서 유독 록 밴드의 로고나 앨범 재킷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록에는 그 본연의 정신이 있고, 밴드마다 추구하는 장르적 성격과 고유 정신이 있으며, 팬들은 그 정신을 추종하는 무리다. 팬이 입는 패션-가죽점퍼, 록그룹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은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 뮤지션과 공유하는 가치관을 세상에 알리는  도구 역할을 한다.      


보석으로 장식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시각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이어폰과 헤드폰을 통해 듣는 음악은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 용도는 소음의 단절, 외부의 차단과 그로 인한 자가 격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들은 귀마개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 제품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페이스오프>의 총격전에서 아이가 커다란 헤드폰으로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총격전의 상황을 모르게 되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이어폰과 헤드폰이 딱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어폰이나 헤드폰 대신 그 귀에 멋진 귀걸이를 하거나 피어싱을 하는 것이 당신을 알리는 데 더 좋다. 굳이 이어폰과 헤드폰으로 당신을 알리고 싶다면 플레이리스트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아주 비싼 이어폰이나 헤드폰, 겉을 큐빅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제품을 귀에 꽂으면 된다. 심지어 스마트 폰이 없어도 된다. 아무런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어폰과 헤드폰이 패션의 역할을 하지 않는 이상, 그건 당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진 속 Mp3 플레이어는 15,6년 전 처남이 준 생일 선물이다.  

이어폰은 작년에 딸이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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