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로 떨어지는 날들이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부산이지만 텐트 안과 밖의 훈훈함은 다르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그전까지 난 평택에 살았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 이십 년 전만 하더라도 평택역 뒤나 앞은 휑했다.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대학원을 통학할 때, 2학기, 가을도 겨울도 아닌 11월, 어쩌다 동기들과 술 한잔하고 늦은 밤 무궁화호를 타고 와서 평택역 플랫폼 발을 디딜 때면 훅하고 찬 기운이 덮쳤다. 일기예보가 나열한 온도와는 상관없는,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디 한 모서리에도 걸리지 않고 바로 역까지 도착했다.
한 겨울, 아내와 연애할 때, 아내를 보러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역에 처음 내렸을 때 냉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당황했었다. 다들 바닷바람이 매섭다고 하던데 평택 들판에 불어오는 바람에 비하면 그 끝이 무뎠다. 사납게 짖어대도 치와와는 치와와일 뿐인 것처럼, 아무리 사납게 바람이 불어도 부산은 결국 따뜻한 곳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나 부산 태생인 딸에겐 겨울은 겨울이다.
물론 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서울의 겨울을 체험하고는 부산의 겨울이 얼마나 따뜻한지 실감했지만 관광객에겐 북해도의 추위 또한 관광 상품 아니던가. 여행이 끝나자 언제 그렇게 추위를 느꼈냐는 듯 부산의 온도가 조금만 영하로 기울라치면 얼른 방한텐트를 꺼내 펼쳤다. 덕분에 겨울이면 아내도 깊은 잠을 잔다.
몸에 열이 많은 녀석은 조그만 덥다 싶으면 냅다 이불을 차 버린다. 신생아 때부터 제 몸을 돌돌 싼 싸개를 벗겨 달라고 낑낑거리더니 그 버릇이 여전했다.
텐트를 치기 전, 그러니까 가을 무렵엔 아이 주변에 이불 두세 개를 크기 별로 놔뒀다 아이가 이불을 차 버리면 다른 이불을 덮어준다. 아내 표현을 빌리면 투망을 던지듯 휙 던져 덮어준다고 한다. 원래는 차 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줬는데 조금 큰 뒤부터는 몸에 깔린 이불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기에 아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다.
두 여자보다 두어 시간 늦게 잠드는 나도 잠자려 누우면 일단 딸의 얼굴과 이부자리 상태부터 살핀다. 아빠 옆에서 잘 때면 그 긴 다리가 아빠 자리를 침범하기 일쑤고 잠결에 뒤척이다 그 긴팔로 아빠 얼굴을 휘갈기기 일쑤다. 그렇게 딸의 휘적거리는 손에 맞고 잠에서 깨면 먼저 이부자리부터 살핀다. 그래도 아빠에겐 아직 몸에 깔린 이불을 꺼낼 힘이 남아 있지만 행여나 아이가 깰까 봐, 나 역시 아내가 주변에 던져 놓은 다른 이불을 딸에게 덮어준다. 그렇게 가을 내내 아내와 난, 깊은 잠을 못 잤다.
1월, 추위가 매서웠던 어느 날, 잘 준비를 끝낸 텐트 속의 딸 옆에 잠시 누웠다. 딸은 텐트의 아늑함 속에서 쫑알쫑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아빠, 성유 있잖아. 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핸드폰 사줬대."
"그래?"
"진짜 좋더라."
"너도 있잖아."
"있지. 그런데 지유 꺼나 성유 꺼보다는 좀 그렇지. 최신 폰이 아니니까 좀 부럽더라."
"딸. 너 요즘 눈썹도 막 올리고 립글로스도 바르고 그렇지?"
"응."
"네가 부러워하는 친구랑 같아지려고 애쓰고 그러지 마. 야. 엄마랑 아빠가 널 얼마나 특별하게 낳고 키웠는데. 친구를 부러워해서 그 친구가 하는 걸 너도 하려는 건 똑같아지려는 거야. 평범해지는 거지. 그럴 필요 없어."
"그래? 흠."
닮고 싶은 사람의 심리
광고홍보학과에서 배우는 과목 중 하나인 소비자 행동론이나 소비자 심리학의 핵심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닮기"다. 광고 메시지 또한 이 "닮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돈다. 담고 싶은 누군가와 같아질 것이냐, 누군가가 당신을 닮길 원하게 할 것이냐, 모두 닮았는데 당신은 좀 달라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바람을 넣는 것이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건 얼핏 내가 모자라서 노력하여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이라 여겨 다들 이 감정을 긍정적으로 보곤 한다. 특히 이 자본주의 시장에선 이 부러움을 부추긴다. 그러나 그 도달하고자 하는 수준의 준거점이 없어서, 우린 바닷물을 마시듯 그 닮음을 추구하면 할수록 목마르다.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 표본, 표상은 저 멀리 달아나고, 우린 다시, 없는 살림과 빡빡한 일상에서 바닥난 에너지의 그릇을 박박 그러모아 안간힘을 쓰며 신기루 같은 표본과 표상을 허위허위 추적한다. 하나, 그 도달은 절대 이뤄지지 않기에 이 시장은 잘만 돌아가는 것이고, 그 헛 된 시도가 계속될수록 그 과정에서 오히려 고유한 주체만 상실된다.
라임색 조거 팬츠
이런 대화가 있던 전 날, 딸과 <씽 2>를 보러 갔었다. 이 날 딸이 입고 갔던 검은색 조거 팬츠가 짧아서 복숭아 뼈는 물론이고 발목도 나와 있었다. 결국 근처 SPA 매장에 조거 팬츠를 하나 사주기로 했다. 매장에 들어가 색은 네 맘대로 고르라고 했더니 연한 라벤더 색과 연한 라임 색을 골랐다. 라임색은 미국 할머니가 보내주신 것과 비슷해서 라벤더로 낙찰했다.
"왜 검은색 안 사고?”
검은색 조거 팬츠가 짧아서 못 입으니 그걸 대신할 검은색을 고를 줄 알았다.
"응? 난 이색이 좋은데?" 딸은 담담하게 말했다.
토요일마다 주산을 배우러 서면의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에 간다. 아직은 그 번잡한 곳에 혼자 보내는 것이 맘에 걸려 따라간다. 덕분에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던 백화점을 요 근래 매 주말마다 간다. 갈 때마다, 뚜벅이족인 아빠 탓에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간다. 딸은 휠체어를 고정시키는 구조물이 있는 자리를 좋아해서 늘 그 칸에 탄다. 한정거장쯤 갔을까? 딸이 내 팔을 톡톡 친다. 귀를 기울이니 속삭인다.
"아빠 사람들 옷이 다 까매."
함께 쿡쿡대며 웃었다.
지하철 게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종종 딸과 하는 게임이 있다. 한 칸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 찾기, 무채색이 아닌 다른 색을 입고 있는 사람 찾기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앞의 게임은 어떤 책이든 읽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게임의 승자가 나온 적은 거의 없다. 나 혼자 책을 읽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후자의 경우엔 무채색의 기준을 좀 넓히면, 이 역시 승자가 나오기 힘들다. 예를 들어 흰색, 검은색, 흔히 감색이라 부르는 네이비, 여기에 차콜에서 연회색까지를 포함하는 범 그레이 색들까지 무채색의 범주에 넣어버리면 이 범주에서 벗어난 색의 옷을 입을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몇 년 전, 소위 모나미 패션이라고 해서, 위에는 흰색, 바지는 검은색을 입는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을 때는 거의 게임 자체가 성립이 안 됐다. 그나마 봄, 여름엔 좀 낫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 지하철 안은 검정과 회색의 늪이 된다. 여기에 다들 흰색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어쩐지 기분이 울적해진다.
이날, 그러니까 딸이 내 팔을 톡톡 친 뒤 귓속말을 했던 날, 난 오렌지색 경량다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딸은 아마 핑크색 플리스 재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부녀가 한 겨울의 칙칙한 지하철에 오르면 사람들이 흘깃거린다. 오렌지색과 핑크색의 침범.
딸은 아빠가 노란색과 오렌지색을 좋아한다는 걸, 색과 그 이름을 알기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다. 딸이 아빠는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물을 때마다 그렇게 답해줬고 실제로도 여러 벌 있는 오렌지 색 옷을 자주 입고 함께 외출하고 운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나름의 사회생활이 있는 터라 일 때문에 고객과 만날 때는 소위 점잖게 입고 간다. 어디까지나 이것도 내 기준,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카피라이터의 점잖음이지만. 11월에서 3월까지는 색만 다른 똑같은 재킷 세 벌을 번갈아 입고 다닌다. 안엔 언제나 부드러운 터틀넥을 입고 다니는데 이 역시 색별로 일곱 여덟 개 정도가 있어 번갈아 입는다. 신발은 사시사철 같은 걸 신는데 이 역시 두 가지 색이다. 그 외에는 늘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색과 노란색, 브라운 색 계열, 아내가 좋아하는 녹색 계열의 외투를 입는다.
결국 어딜 가나 눈에 띄고 알아본다. 감독과 움직일 때는, 일단 감독의 차가 커다란 랭글러의 짚이기 때문에 시청이나 구청 주차장에 세울 때부터 공무원들이 우리가 온 걸 알고, 복도 끝에 우리가 나타나면 한 사람은 덩치 큰 강호동 같은 분위기에 겨울이면 늘 파일러 코트를 입고, 한 사람은 휘청거리게 마른 체형에 늘 하이넥 점퍼를 입고 있기에 대번에 남철/남성남 콤비처럼 알아챈다. 그래서 우린 늘 나쁜 짓을 하면 따로 하자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오렌지색이 유별난 걸까? 아빠가 비정상인 걸까? 똑같은 점퍼를 색깔별로 다 사서 겨울 내내 번갈아 입는 건 이상한 걸까? 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아빠는 늘 그랬으니, 그것이 아빠고 아빠다운 것이라 여긴다. 그렇다. 아빠의 마이 웨이다.
환갑이 넘어서도 더플코트를 입고 다니는 하루키처럼, 겨울이면 세 개의 같은 점퍼를 번갈아 입고 다니는 아빠처럼, 딸도 그렇게 다른 듯 평범하고 평범한 듯 다른 어른이 되길 바란다. 여름휴가철의 공항에서, 명절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얼핏 보기만 해도, “어, 최카피가 여기 웬일이지?" 하며 가려내어 알아볼 정도로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는 아빠처럼, 딸도 그렇게 자기만의 고유한 존재로 성장해 주길 바라고 있다.
틴에이져 쉰에이져는 올해 1월부터 자꾸 지가 이제 틴에이져가 됐다고 하기에, “에라이. 그럼 아빠는 이제 쉰에이져다.”라고 답한 데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