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지난 5월)의 일이다. 딸을 데리러 미술 학원에 갔다. 함께 근처 대형 문구 도매상에서 영어 공책을 사야 해서다. 자주 오는 곳이 아니니 필요한 것을 골라 보라고 했다. 딸은 미로 같은 매장에서 수채화 붓 세트를 찾아냈다. 도매상이라 그런지 가격표가 없었다. 얼마나 하겠나 싶어 일단 계산하면서 얼마인지 물어보자 했다. 붓 세트는 이만사천 원이었다. 요즘 수채화에 재미가 들려가는 중이고 학원의 붓은 뻣뻣하다 했기에 결제를 했다. 나오면서 무심히 한마디 했다.
“딸, 이제 화장품 얘기는 끝. 선크림 같은 거 대신 이걸로 하는 거다.”
“응? 선크림이 훨씬 비쌀 텐데.”
“선크림은 집에 쓰는 거 있잖아. 그리고 너, 이 붓이 꼭 필요하다며.”
“아니. 그래도.”
딸은 억울해했다. 이만 사천 원짜리 붓도 사고 선크림도 나중에 꼭 아빠에게 얻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난, 지금 손에 든, 내 기준으로는 비싼 그 붓에 감사하지 못하는 딸에게 화가 났다. 장바구니에서 붓을 꺼냈다.
이어지는 쓴소리들
“딸. 아빠는 너에게 빚진 게 없어. 너한테 무슨 빚이 있어서 선크림을 사주겠다고 하고, 이렇게 붓을 사주는 게 아니야. 네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빠 딸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주는 거야. 넌 왜 여기에 감사하지 않아? 선크림 대신 이거지만, 그래도 감사함을 느끼고, 고맙습니다.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아빠가 너에게 이렇게 좋은 붓을 사주고 뭔가 빚이 남아 있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하지?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
잔소리는 길 건너 마트 주차장에서 이어졌다.
“너 정신 차려. 엄마가 너 스무 살 될 때까진 절대 화장품 이야기 꺼내지도 말라고 저번에 너 혼내면서 말했지. 네가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용돈을 모아서 사든지 하라고 했지. 아빠는 네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사주는 거야. 엄마도 네가 필요하다 그러면 얼른 주문해 주잖아. 그런데 뭐가 더 필요한 거야? 왜 감사를 못해?”
말을 하면서 딸의 정수리를 붓 세트로 한 대 쳤다. 딸의 침묵이 이어졌다. 기분은 나빠졌다. 결국 붓을 반품하겠다고 했다. 딸은 말렸다. 난 기어이 반품했다. 이날은 아내도 나도 월급날이었다. 기분 좋게 사주고 싶었다. 집까진 아직 이십 분을 걸어야 했다. 걷는 도중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근처 병원 공터에 다시 아이를 세웠다.
“딸, 너 예뻐져서 뭐 할 건데. 하고 싶은 게 있고, 목표가 있으면 정신 차리고 공부해야 돼. 너 아빠가 농담처럼 도대체 공부한 건 어디에 저장되어 있나 하고 물은 적 있지? 네가 무슨 아가일 체크 니트니, 원피스니, 모자니, 파운데이션이니 주저리주저리 입에 올리면서 어울릴 것 같으냐고 물어보고 사줄 수 있냐고 아빠한테 물어볼 때 아빠가 그렇게 농담처럼 물은 적 있지? 너, 서울대나 하버드 같이 좋은 대학 가고 싶다며, 그러고 싶으면 지금부터 그런 쓸데없는 데 머리 쓰고 하면 못 가. 인간은 머리의 용량에 한계가 있어. 선택하고 집중하며 사는 거야.”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저녁엔 딸의 방과 후 교실 신청을 해야 했다. 어떤 과목은 경쟁이 심해서 열리자마자 마감되기에 아내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미리미리 로그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을 간단히 만두로 해결하자고 했다. 딸과 걸어오다가 단골 만두집에서 만두 삼인분을 샀다. 사장님이 만두를 찜통에 데우는 동안 딸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매장 한편, 길가로 향해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청춘남녀 커플이 지나갔다. 남자는 담배를 손에 들고 피우면서 재를 길에 털며 걸어왔고, 여자는 허벅지가 다 보일 정도로 앞이 크게 찢겨나간 청바지를 입고 남자와 같은 색, 같은 디자인의 카라 니트를 입고 있었다. 남자의 문신한 팔에 엉겨 붙어 걷는 것인지 끌려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비척대며 걷고 있었다.
“은채야. 너 얼마 전에 팬티가 보일 정도로 교복 치마를 줄여 입은 고등학생 언니 봤지?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면 저렇게 돼. 세상은 냉정해. 네가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으면 스스로 멋있어야 돼. 1류를 만나고 싶으면 1류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집 근처까지 왔다. 속상했다. 마지막 몇 걸음동안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다.
“은채야. 아빠가 네 이야기를 담은 책 한번 내보겠다고 몇 군데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는지 알아? 얼추 백 개 정도 돼. 아무리 못 해도 7,80곳은 될 거야. 그런데 다 거절당하고 한 군데서만 책을 내주겠다는 메일이 온 거였고, 계약한 거였어. 그런데 그것조차 코로나 시국에 엎어진 거야. 열심히 쓰고, 열심히 메일을 보내도 안 되는 게 있어. 그러니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잘 안 풀릴 때가 있다고. 그래도 아빠는 지금도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써. 당장은 몇 사람만 읽고, 책을 내주겠다는 사람은 없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으면 꾸준히 노력하고 애쓰는 수밖에 없어.”
선택과 포기의 갈림길
인생은 선택이다. 다 가질 수 없다. 물론 다 가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걸 갖고 있어야 한다. 부르디외 식으로 표현하면 사회적 자본,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은 물론이고 신체적, 정신적인 역량도 갖고 있어야 한다. 자본과 역량이 큰 사람은 시간도 자본으로 만들어서 더 많은 일,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모든 자본들이 빈곤하다. 자본의 빈곤은 선택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욕망하는 것을,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 난 그걸 처절하고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다. 어린 시절, 원하는 백 가지 중에 한 가지 정도를 가질 수 있었다. 십 대 시절엔 남들이 호의로 주는 것에 기대어 살아야 했다. 단순히, 가난했다고 말하기에도 뭐 한 그런 빈곤이었다. 도시락을 싸고 간 기억도 별로 없고 소풍 사진은 두 장뿐이다. 수학여행은 당연히 안 갔고 고등학교도 못 갔다.
어찌어찌 검정고시를 거쳐 수능을 보고 그 점수에 갈 수 있었던 대학 중에서 전공과 함께 기숙사와 장학금 여부를 엮어 대학을 선택해야만 했다. 만약 그때 수도권의 그 대학을 선택했다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알 수 없다. 그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선택하지 못한 것들은 가능성과 후회를 남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들로 이뤄진다. 실존주의의 핵심이다.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묵묵히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마치 순례자처럼. 비정하지만, 그것이 인생이다.
날 때부터 이 선택의 폭은 정해져 있다. 좋은 부모를 만나거나 좋은 신체를 갖고 태어나면 선택의 폭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넓다. 은채의 학교 친구이자 이웃의 정화는 다리가 불편하다. 정화는 달리기가 필요한 운동선수도, 워킹을 해야만 하는 모델도 될 수 없다. 건강을 위해서 태권도를 배우지만 국가대표를 꿈꿀 수도 없다.
딸은 건강하게 태어났다. 농구를 가르치니 배웠고 달리기와 음악 줄넘기, 발레, 수영 등을 할 수 있다. 얼마 전엔 롱 보드도 타기 시작했다. 긴 다리를 갖고 태어나서 연예인을 꿈꿀 수 있고 모델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정화든, 딸이든 선택을 해야만 한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선택과 포기를 해야만 한다. 누가 언제 무엇을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저 어린 시절의 태생적 조건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인생이 불공평하면서도 공평한 이유다.
선택의 폭은 더 줄어든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늙는다. 늙음 앞에서 선택의 폭은 더 줄어든다. 이 주 화요일, 울산의 한 산업단지에서 3D 프린터 작동을 촬영하려는 감독, 조감독과 동행했다. 촬영이 끝나자 감독이 문수구장 공원에서 음료수나 한잔하면서 쉬다 들어가자고 했다. 소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보니 옆에 풋살장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의 시합이 시작됐다.
“한 판 같이 할랑교?” 감독이 농담을 했다.
“뭔 소리야. 아이고 이 더위에. 죽어. 서른다섯 이후로 난 공 안 차.”
내가 엄살을 부렸다.
“왜요?”조감독이 물었다.
“내가 그 나이 때, 교회 축구팀이 생겨서 덜컥 합류를 했었거든. 그렇게 시합을 한 번 뛰었는데... 야, 몸이 회복하는데 일주일이 걸리더라고. 그래서 이제 축구는 그만하자고 다짐했지. 다 그래. 예전에 내가 학원 강사 할 때, 낮에 한가하잖아. 부경대 농구코트에서 종종 농구를 했거든. 그러던 어느 날 부경대 학생들하고 시합을 했어. 재미있게 했지. 집에 와서, 그때 이제 원룸에 살았거든. 요즘은 이렇게 터치식이지만 그때만 해도 열쇠로 열었어. 문을. 집에 잘 와서 열쇠를 꺼내서 열쇠 구멍에 넣으려고 하는데 도대체 그 구멍에 맞출 수가 없는 거야. 손이 계속 떨리더라고. 그때, 또 다짐했지. 아.. 이제 농구는 그만. 그때가 서른하나인가 둘인가 그럴 거야. 그렇게 마라톤도, 스포츠 클라이밍도 알아서 접었지.”
다시 말하지만 원하는 걸 다 할 수는 없다. 꿈꾸는 걸 다 할 수는 없다. 꿈이 있으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불법다단계 회사의 대표처럼 말하고, 또 그걸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 그나마 이 글 쓰는 재주에 기대어 카피라이터로 이십 년을 살았다. 칼럼을 쓴 지 이제 딱 2년이 됐다. 가진 재주가 이것뿐이어서 더 잘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노력이란 것을 해야 한다.
나이는 들었고 체력은 뻔하며 돈은 달랑거리니 모든 것을 냉정히 판단하여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힌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이 맥주와 책 말고는 나 자신을 위해 별로 돈을 쓰지 않는다. 가끔 옷을 사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해져야 사거나 딸이 아빠가 입고 다니는 옷을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해야 바꿀 뿐이다. 남는 돈은 엄마의 눈치를 보며 딸의 군것질을 사주거나 잡다한 것들을 사 준다. 업무 외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없고 고민이 있어 만남을 청한 후배들이나 어쩌다 만날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월에 대한 초조함이 더 깊어진 끝에 이 버릇도 더 심해졌다.
아이에게 벌써부터 선택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은 매정하고 비정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가 이르렀다. 내 기준으로 보면 딸은 원하는 것을 대체로 얻고 살아왔다. 마음 약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한정 없이 퍼준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딸의 입에서 원하는 것이 말로 튀어나와 땅에 떨어지기 전에, 그 자리에서 해준다.
친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먼 타향에 사시는지라 손녀를 향한 그리움이 크기에 퍼주고 싶은 마음 또한 더 크다. 손녀가 한창 클 때는 옷과 인형으로 가득 찬 큰 택배 박스를 일 년에 두 번 정도 보내셨을 정도다. 피부색이 다른 친할아버지 또한 잔정이 많은 이탈리아 계 미국인이라 우리와 정서가 비슷하다. 퍼주기에 있어서만큼은 식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렇게 딸은 사랑 속에 컸고 풍요 속에 자랐다. 포기의 갈등보다는 선택의 만족이 훨씬 큰 유년기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꿈과 욕심이 많은 딸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 알아야 한다. 시간도, 체력도 제한되어 있다. 물론 부모의 재력 또한 한계가 있다. 가지고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효과를 내기 위해선 선택해야 한다. 딸에게 그걸 가르치려 애쓰는 중이다. 물론 내 궁핍한 유년기가 만든 삶의 기준이 딸의 삶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은 선택과 포기의 연속 속에서 누가 이것을 더 냉정하고 신속하게 하느냐에 따라 그 깊이가 결정된다.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깊이를 말하는 것이다. 딸이 엄청나게 성공하거나 위대한 인물이 되길 바라질 않는다. 그건 자신의 몫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건, 남과 다른 깊이를 가진 인생을 살길 바랄 뿐이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필요한 선택을 하면서, 포기한 것에 대해 미련을 접으면서, 그렇게 깊고 깊은 자신만의 순례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