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후 1
은채는 지금 4학년이다. 이 4학년의 시간도 틈틈이 메모해 왔다. 언젠간 기회가 되면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한 시간들을 담아 책으로 만들어줘야지 다짐하며 말이다.
마흔에 낳은 딸이 벌써 4학년이다. 딸은 열한 살, 아빠는 쉰한 살이 됐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소녀가 됐고 아빠는 나이가 들었다. 아이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은 보고만 있어도 눈부시다. 어느덧 어깨를 넘을 정도로 컸지만 잠잘 때와 밥 먹을 때, 안아 달라고 할 때, 울 때와 웃을 때, 아빠를 올려다볼 때, 라면을 신나게 먹을 때, 학교 앞에 기다리는 아빠를 보며 손을 흔들 때, 단짝 친구 지유와 알콩달콩 전화 통화를 할 때, 대부분의 순간 여전히 아기 같다.
그러나 불쑥 소녀의 모습이 스쳐간다. 엄마를 닮아 집중하면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면서 눈썹이 갈매기 날개처럼 변하는데, 딱 그런 얼굴로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집중해서 책을 볼 때 소녀의 옆얼굴이 보인다. 집 앞 박물관에 들어가 조용히 관람을 하며 거닐다가 마음에 드는 문화재 앞에 멈춰서 몸과 얼굴을 앞으로 기울여 얼굴이 문화재를 비추던 조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큰 눈과 갸름하면서도 아직은 젖살이 남아 있는 얼굴과 이마 위로 천천히 내려온 머리칼이 달빛 아래로 서서히 나오는 찔레꽃처럼 드러날 때, 소녀의 옆얼굴이 보인다.
4월 말이면 유엔묘지로 겹벚꽃을 보러 간다. 그 나무 아래에서 아빠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하고 포즈를 취할 때, 그렇게 찍힌 사진을 확인한 뒤 “아빠, 이건 아니지.”하고 타박한 후 다시 찍어달라고 할 때, 그때도 소녀의 옆얼굴이 보인다.
딸은 치킨을 먹을 때 늘 닭다리 두 개를 먹는다. 내가 딱히 그걸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처음 치킨을 먹을 때부터 그 다리를 들고 열심히 먹는 모양새가 귀여워서 계속 손에 들려주다 보니 버릇이 됐다. 어디 다른 데 가서도 닭다리는 으레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될 텐데 하는 염려가 있지만 아직은 그 닭다리 든 모양새가 탐욕스럽기보단 귀엽다. 또 제법 천지분간을 할 줄 알면서 양보와 책임감도 익혀서 아비의 걱정만큼 이기적인 외동딸로 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딸이 커서, 지금 어린이와 소녀의 시간을 오가고 있다. 그러나 점점 더 소녀의 시간이 많아진다. 아빠가 중년의 낌새가 더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카피라이터 일을 하면서 칼럼을 쓰고, 이렇게 여러 글을 쓰는 아빠여서 다른 아빠들 같지 않다. 운전도 못하고 돈도 많이 못 벌고 동창회나 산악회 친목회 같은 것도 안 한다. 엊그제 은채를 혼낼 때 했던 말처럼 돈을 쓰는 곳이라곤 책과 맥주, 그리고 딸과 아내뿐이다. 그래도 이 인생이, 이 쉰을 넘어가는 순간이 단조롭지 않은 것은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닭다리를 먹지만 볼 때마다 기쁨을 주는, 저 눈부신 생명 때문이다.
이렇게 애쓰고 노력한 것보다 훨씬 크게 누리는 행복이 또 있을까? 이 행복의 시간을, 소녀의 시간, 4학년 시간을 틈틈이 연재해보려 한다. 소녀의 시간을 지난 사람에게도, 소녀를 키우고 있는 사람에게도, 앞으로 소녀가 될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이 어린 시절을 지나온 모든 사람에게도 느리게 읽히고 오래 남는 글이었으면 한다.
그런 딸이 요즘, 외모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엄마에게 뷰러하는 법을 배워서 눈매도 깊게 만들고 립글로스를 발라 입술도 도톰하게 보이게 만든다. 아내에게 뭘 그런 걸 가르쳐줬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했다. 아내는 이십몇 년간 매일 같이 화장했다. 취업한 이후 지금까지 포멀 한 의상에 단정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외출할 때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다 나가서 사 와야 했다.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다. 나야 모자하나 푹 눌러쓰고 나가면 그만인 사람이니까.
그런 아내를 봐와서 그런지 벌써부터 외모에 신경 쓰는 딸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어차피 평생 할 거 너무 일찍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제 깐엔 이게 또 재미있는 모양이다. 외모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모양새를 받아들이고 산다면 이런 꾸밈은 넘어가주려 한다. 나 또한 작업실에 갈 때나 미팅이 있을 때는 좋은 옷을 입고,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로션도 바르니 말이다. 당연하다고? 어린이의 시간이 참 짧다. 이 글을 읽는 이 중에서 딸 가진 아빠가 있다면 어린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놀아주시기 바란다. 좀 있으면 그 얼굴 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런 예감이 서서히 든다. 그러나 저러나 할머니 집에 자러 가는데 왜 외모에 신경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외모에 신경 쓰다 보면 당연히 다른 사람 시선에도 신경이 쓰인다. 겨울의 어느 날, 방과 후 바이올린 교실에 데려다 주기 위해 길을 걷다가 딸이 불쑥 물었다.
"아빠, 나 길 가다가 번호 따일 수 있을까?"
"응? 왜? 굳이?"
"아니 그냥.."
"야, 넌 코로나 끝나도 마스크 쓰고 다녀야 돼. 학교 맘 편히 다니려면."
"아~무슨 소리야. 진짜, 아빠는."
"아니 진담 반 농담 반인데... 너 ‘지성과 미모를 갖춘’ 이런 표현 알지?"
"응."
"네가 잘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얼굴이야 뭐 엄마가 잘 낳아줬고."
날씨 탓에 딸은 배스킨라빈스의 체리 쥬빌레 색의 다운 파카를, 난 홍시 색깔의 펜필드 파카를 입었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이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패션이다. 아빠는 평생 오렌지색과 노란색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딸은 아빠가 어떤 요란한 색을 입어도 놀라지 않는다. 물론 나도 사회생활이란 걸 하다 보니 이런 색을 자주 입을 순 없고 딸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할 때 정도다. 이런 아빠이기에 딸에게도 색의 자유를 줬다. 서너 살 때부터 입고 싶은 옷을 고르면 날씨와 상관없이 고른 옷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여름에 다운파카나 겨울에 반팔 티셔츠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입게 해 줬다. 덕분에 딸의 친구들은 넓은 운동장에서도 은채를 찾는 게 너무 쉽다고 종종 말한다고 한다.
딸에게 종종 외모 칭찬을 한다. 그렇다고 뭐 엄청 유별나게 하는 건 아니고 그저 담담히 외모의 장점이나 옷 색깔에 대한 칭찬정도다. 원래 다른 사람 외모 칭찬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편이다. 이게 어머니 때문인데, 어머니는 교회 가실 때 정장을 입으시고 마지막으로 브로치를 다실 때 항상 나에게 물으셨다.
"아들, 어떤 게 예뻐?"
결혼하니까 같은 질문을 아내에게 듣는다. 특히 옷과 구두의 조화를 물을 때마다 식은땀이 난다.
"여보, 어떤 게 어울려? 좀 멀리서 봐야지." 이 질문을 조만간 딸한테도 듣지 않을까?
여하간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뭔가를 잘도 찾아내서 칭찬한다. 그리고 광고 카피의 출발도 사실 이렇게 제품이나 서비스의 사소한 차이를 발견하는데서 시작하는 것이기에 이래저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재능이라면 재능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나 제품이나 그 고유의 매력은 내재되어 있다. 다만 발견되지 못했을 뿐이고, 설령 발견 되더라도 적당한 묘사나 표현의 옷을 입지 못해서 세상에 소개되지 못했을 뿐이다.
십 대로 접어든 딸은 외모의 변화와 함께 약간의 뻔뻔함까지 장착했다. 살짝 우기거나 말실수를 했을 때 아빠나 엄마가 지적하면, 그전엔 지가 틀린 걸 알아도 억울해하며 변명을 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죄삼니다." 한마디로 신속히 사과를 한다. 약간 능구렁이 같아졌다고나 할까? 겨울방학의 어느 날, 영어 방과 후 교실에서 게임 규칙을 못 들었다고 항의하는 남자 선배한테 조용히 대들었던 듯하다. 배짱도 생긴 것이다. "저기요 아저씨, 님이 규칙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셔서 그런 거잖아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선생님한테 종종 대드는 녀석이 눈에 거슬렸는데 어제는 그 도가 지나쳤던 모양이다.
자기가 원하든, 원치 않던 이런저런 장단점이 자신에게 쌓여간다. 살면서 장점만 취할 수도, 단점만 버릴 수도 없다. 그 모든 게 나니까. 그러니 설령 길에서 남자에게 전화번호를 안 따 여도 개념치 말길 바란다. 따 인다는 표현도 참 구닥다리 표현이다만. 어찌 됐든 궁극적으로 우린 한 명이면 족한 존재들 아닌가? 아 물론 젊을 때야... 이 얘긴 그만하자.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