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7
"아빠, 영어로 병원 알지?"
"응."
"발음해 봐."
"너 한번 해봐라."
"핫스비럴, 이제 아빠 해봐."
"하스피탈."
"와~아빠 영어를 어디서 배운 거야?"
"스코틀랜드."
올(2022) 1월엔 이런 농담을 자주 했다. 딸은 방과 후 교실에서 영어를 배운다. 이제 한 이삼 년 됐나? 3학년부턴 정규 수업 시간에도 영어가 들어 있다. 덕분에 제법 읽을 줄도 알고, 쓸 줄도 안다. 아내와 난 "야, 이거 해외여행 갔을 때 너한테 심부름시킬 날도 멀지 않았다."하고 감탄하곤 한다.
난 파주, 의정부, 평택에서 살았다. 특히 의정부, 평택에서 십 대, 이십 대를 보냈다. 그것도 미군부대 바로 앞 동네였다. 어지간한 한국 남자라면 이름을 들어봤을 <미 8군 야전 사령부>와 <K6>, <캠프 험프리스>의 앞 동네였다. 덕분에 영어를 공식적으로 배운 건 중학교 들어가서였지만 희한하게 영어에 익숙한 편이었다. AFKN으로 스포츠도 열심히 봤고, Soul train 같은 음악 프로그램도 즐겨 봐서 그랬을 거다. 게다가 미군부대 주변에 널려 있던 코믹스 잡지에다가 각종 카탈로그, 여기에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같은 어마 무시한 성인 잡지까지.
여하간 저 아날로그 시대에 이 잡다한 영어 콘텐츠를 이해하기 위해서 애를 쓰다 보니 알게 모르게 영어와 익숙해졌다. 때문에 중학교나 들어가서야 영어를 제대로 배웠고, 알파벳을 배우고 쓰는 법을 익혔지만 그럭저럭 영어 시간은 견딜 만했다.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한 걸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가. 영어까지 두려워했으면 대학은 물론이고 그 뒤로도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듣기는 잘하는데 말은 잘 못한다. 미군 부대 앞에 오래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미군들과 부대끼는 와중에 듣는 귀는 제법 뚫렸지만 말하는 입은 좀처럼 부드러워지지가 않았다. 미군들하고 자주 마주쳤지만 뭐, 긴 얘기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적당히 말을 하면 알아들으려니 하는 생각이어서 말할 때마다 발음이나 문법 따위도 신경 안 썼다.
나중에, 대학원에 가서 안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나온 어지간한 한국 성인보다 아는 영어 단어의 숫자가 적다. 그러니 미국에 갔을 때 너무 어려운 단어를 쓰면 오히려 소통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확인은 안 해 봤다.
여하간 이런 희한하면서도 마이너 한 영어 학습과정과 습득 구조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하고 그럭저럭 대화를 주고받는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더 뻔뻔하게 얘기한다. 한 십몇 년 전에 처제가 호주 남자를 사귄 적이 있었다. 더블데이트를 하기로 하고 광안리의 일식집에서 만났다. 남자는 호주가 본사인 조선해양 관련 회사의 지사장인가 그랬다. 그때 나는 풋내기 카피라이터 시기를 막 벗어날 때였기에 이렇다 할 접점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됐다.
만나서 잠시 뻘쭘했으나 저녁에 들어간 일식집에선 해소가 됐다. 거기서 몇 잔 마신 뒤엔 자연스레 스포츠 얘기를 화제 삼아 아무렇게나 떠들었다. 그때 마침 히딩크가 호주 대표팀 감독이 됐던 탓이라 축하한다고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던 기억이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하고는 더 뻔뻔하게 얘기한다. 대학원 시절,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을 오갔는데 그 기차 안에서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곤 했다. 요즘도 그런 기회는 많다. 사는 곳이 관광지인 부산이고, 그중에서도 내가 사는 대연동 일대는 내국인 관광객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도 사시사철 흔하기 때문이다. 근처에 서너 곳의 대학이 자리한 데다가 광안리와 가깝고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도 많다 보니 오가는 외국인들의 인종, 나이, 성별, 국적이 다양하다.
특히 집에서 5분 거리에 부산시립박물관, 유엔기념공원,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유엔평화기념관 등이 몰려 있어서 지도를 한 장 펴 들고 유엔교차로를 서성이는 외국 관광객을 흔하게 볼 수 있고 한국참전용사라는 모자를 쓴 어르신과 그 어르신을 모시고 온 가족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미군과의 인연이 깊고 어머니 또한 미국 사람과 미국에 사시니 누가 봐도 참전 용사이거나 퇴역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도를 펴 들고 있으면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중학교 때 배운 영어로 “도와 드릴까요?” 물으면 백이면 백, 내 앞으로 지도를 들이민다. 젊은 외국 관광객들 또한 헤매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이렇게 물어보면, 스마트 폰으로 지도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나이 든 아재의 오지랖 일수도 있는데, 심지어 내국인 관광객에게도 길을 잘 가르쳐 준다. 해파랑 길을 걷다가 평화공원을 서성이며 박물관이 어느 쪽인지, 이기대 공원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는 배낭을 멘 관광객이 보이면 슬며시 다가가 물어본다. “어디 찾으세요?” 이게 일종의 관광지에 사는 시민의 기본 에티튜드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아이랑 있으면 나한테 길을 물어보는 빈도가 올라간다. 중년 남자가 혼자 있는 것보다 초등학생 딸이랑 있으면 그 친절함이 배가되어 보이는 걸까? 딸도 사람들이 아빠한테만 길을 묻는다고 신기해할 정도다.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아이가 매 주말마다 주산을 배우는 문화센터가 있는 서면의 롯데백화점을 갈 때도, 등굣길이나 하굣길에도, 어쩌다 박물관 기획전시나 특별전시를 보러 갈 때도 길을 찾는 사람들은 자석에 끌리듯 나에게 온다. 국적불문, 나이불문....
얘기가 좀 옆으로 샜다. 다시 영어 이야기로 돌아오자. 어찌 됐든 그렇게 이때까지 발음이며 문법 따윈 신경 안 쓰고 원하는 자료 찾아 읽고 보면서, 영어를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 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딸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슬며시 신경이 쓰인다.
애초에 검정고시 출신답게-아, 물론 검정고시 출신이 다 그런 건 아니겠다만-스펠링에 신경을 안 썼다.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부득이하게 영어를 써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솔직하게 말했다. “아, 제가 이, 스펠링에 약합니다. 그러니 알파벳이 빠지거나 더 있으면 알아서 고쳐서 필기하세요.”라고. 그럼 학생들은 속으로 ‘저 인간, 완전 막가는구먼.’하면서도, 내 솔직함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카피라이팅을 배우는 거지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니, 다들 뭐, 그러려니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딸의 방과 후 교실에서 내 준 숙제를 패드로 하다 보면 스펠링을 정확히 입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펠링을 한자라도 틀리면 안 된다. 다행히 이 때는 엄마가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어디 한번 쳐보자. 어김없이 빨간 줄이 그어졌다. 스펠링이... 아홉 글자다.
게다가 요즘엔, 자꾸 딸이 발음을 물어본다. 제대로 된 발음이 궁금해서 구글님과 네이버님에게 물어보면 각 영어권 나라별로 발음을 해주시고, 딸의 영어학습 프로그램의 선생님도 멋지게 발음해 주시지만 딸은 내 발음도 궁금해한다.
요즘에야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같은 영국 배우들 덕분에 섹시한 영국식 발음이라고 열광하지만 우리 때만 해도 영어는 미국식 발음이 표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할 법도 한데 우린 그 발음이 영어 말하기의 정석이라고 알고 있었다.
90년대 들어, 필리핀 사람들이 미군부대 앞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영어가 말이 될 때, 그 소리는 사람마다 제 각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 후에는 영국 내에서도 스코틀랜드 사람의 발음은 또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퍼거슨 감독의 말을 잉글랜드 선수들도 못 알아듣는다는 뉴스를 보고 말이다. 후에 은퇴 후 박지성도 그랬다. 못 알아듣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었다고.
돌아보면 영어가 모국어 아닌 사람과 대화가 편했던 건 그들이 영어 발음을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너나 나나 영어 말하기는 젬병이지만 어떻게든 알아듣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니냐, 뭐, 이런 공감대가 서로에게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런 편한 마음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영어가 더 잘 들렸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큐멘터리나 CNN을 보다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의 인터뷰가 나오면 더 잘 들리는 이유도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실제로 얼마 전 딸이랑 CCN 뉴스를 보다가 세계보건기구, WHO의 전문가라는 사람의 영어 인터뷰 내용이 나왔다. 어찌나 귀에 쏙쏙 들어오던지. 이름을 보니 이탈리아 사람 같다. 나랑 같은 학교 나온 줄 알았다.
딸이 영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영어를 미국어로 알게 될까 살짝 걱정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고 세계화됐다고 하지만 원어민 교사의 대부분은 아직 미국 사람이다. 영어의 발음 또한 미국 말의 발음이다. 그 발음이 영어 말소리의 표준이고 정석이라고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그래도, 쓸데없는 걱정일지 모르지만,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의 영어, 프랑스 사람의 영어 발음은 다르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영국 남자의 매력적인 발음이나 어지간한 영국인도 못 알아듣는다는 퍼거슨 경의 헤어드라이어 스코틀랜드 발음이나 호주, 필리핀 사람의 발음도 다 다르다는 걸, 심지어 텍사스에 사는 이모도 남부 사투리를 쓴 다는 걸 알고 살았으면 한다.
더 나아가, 언어는, 우선은 소통의 도구라는 걸, 이 구실을 잘하기 위해선 같은 언어를 다르게 발음하는 사람의 그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세상엔 수많은 언어가 있고 영어는 그 언어들 중 하나일 뿐이란 것도 알았으면 한다. 내가 영어를 할 줄 알고 상대방은 스페인어를 한다면 두 사람이 대화를 하기 위해선 제3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그 제3의 언어를 찾지 못해서 상대방이 미숙한 영어를 해서라도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사람이 나와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용기는 언어의 미숙함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이길 만큼 나와의 소통이 더 절실했기에 발휘된 것임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궁극적으로 언어는 소통을 위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소통의 전제가 아님을 알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그래서, 소통을 하기 위해선 언어의 능통함보다 타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이 우선해야 함을, 그 열망이 언어와 국적, 나이와 성별, 문화와 세대의 장벽과 간극을 뛰어넘게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언어 이전에 사람과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딸은 아빠와는 달리, 영어를 체계적으로 배운다. 딸이 언어를 배우면서 언어의 구실과 그 본질에 대해, 그리고 그 본질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