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방과 후 교실 음악 줄넘기는 입학 후 현재까지 하고 있다.공부도, 운동도 스스로 수련하고 단련시켜 나가는 법을 알기를...그래서 자신의 현 상태를 점검하며 더 나은 자신을 향해 정진하는 삶을 살길 바라고 있다.
생일 선물 징크스
음력 7월 백중이 내 생일이다. 장마도, 여름휴가 시즌도 끝나가는, 한여름의 무더위는 슬슬 물러가고 추석 앞두고 태풍이 종종 찾아오곤 하는 시기다. 매해 날이 바뀌니 이 또한 매번 바뀌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생일 때면 장인, 장모님이 용돈을 주신다. 처음엔 다 큰 어른이 용돈을 받는 것이 어색했지만 처가의 전통이라면 전통이라 몇 해 전부터 감사히 받는다.
이 돈을 그냥 아내에게 주거나 책을 사거나 하면서 흐지부지 쓰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큰맘 먹고 튼튼한 신발 두 켤레를 색만 다르게 샀는데, 그 이후로 우리 팀의 일이 잘 풀리고 바쁘게 움직였다. 이게 징크스라면 징크스, 미신이라면 미신으로 굳어져서 최근 몇 년 간은 장모님이 주신 용돈으론 꼭 옷을 사거나 신발을 산다. 올해도 그랬다.
생일마다 찾아왔던 우울
생일마다 바뀌지 않은 건 우울이다. 만성으로 사시사철 쫓아다니는 것은 아니니 그 끝에 “증”을 붙이긴 뭐 하는, 그저 계절 독감 같이 생일 앞뒤로, 대략 한 달, 짧으면 보름 정도 마음에 감기가 찾아온다. 올해 생일은 일도 바쁘고, 집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아내가 신경 쓰는 게 눈에 보여서 우울함을 내색하지 않았다. 또 생일, 그다음 주에 아내가 휴가를 내어서 더 그랬다.
그게 아니어도 몇 해 전부터 덜하긴 했다. 내 생일 때마다 아이의 여름 방학이 겹치는데, 애가 집에 있는 동안 아비가 그늘진 얼굴로 집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않나? 올 해는 또, 아내가 7월부터 수영을 다시 하라고 권해서, 그 덕에 좀 덜한지도 모르겠다.
딸에게 수영 가르치기
아내가 휴가가 있던 주, 8월 셋째 주 목요일에 기장군 정관 신도시에 새로 생겼다는 대형 수영장에 갔다 왔다. 들어가 보니 소문대로 제법 규모가 컸다. 용도별로 풀의 깊이도, 레인의 길이도 여러 종류여서 아이들도, 노인들도, 수영을 배우려는 시민들도 두루 사용하기 좋았다. 다만 수영을 오래 한 사람 입장에선 50미터 레인이 많지 않고 수심도 1.2미터로 얕은 데다가 수온이 좀 따뜻한 편이어서 몸이 좀 안 나간다는 느낌인 것이 아쉬웠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딸 때문에 이런 곳에 오지만, 정작 딸은 수영을 못한다. 아내는 나보다 수영을 몇 년 먼저 배웠기에 수영을 안 한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폼은 선수급이다. 가족 중 혼자서만 수영을 못하는 딸은 자신도 수영을 배우고 익혀 엄마와 아빠처럼 다양한 영법으로 앞으로 나가고 싶지만 그게 또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최근에 학교에서 생존 수영을 배운 딸이 제대로 수영을 배우고 싶어 해서 물놀이 시설에 갈 때마다 조금씩 가르치고 있다.
이 날도 딸에게 발차기를 가르쳤다. 딸은 조금의 물도 먹지 않겠다고, 더 많이 숨을 쉬어 보겠다고, 궁극적으로, 그러니까 살겠다고 고개를 쳐들고 숨을 쉬었다. 그런 딸에게 고개를 살짝 옆으로만 돌려 숨을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그게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나 또한 초급반 때 그랬으니 말이다.
물에 대한 두려움
자유형을 할 때,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들면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려 몸은 가라앉고 다리는 수중으로 쳐진다. 몸이 부력을 유지하여 수영장 바닥과 최대한 평행이 되게 하려면 시선은 수영장 바닥에 두고 골반은 최대한 띄운 뒤, 발을 열심히 차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딸에게 설명하긴 어렵고 설명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그 논리를 이해하더라도 물을 먹는 두려움과 숨쉬기의 열망으로 인해 몸으로 이해한 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 날, 딸은 키판을 꼭 붙잡은 채, 고개를 틈틈이 번쩍 들곤 하면서 발을 열심히 찼다. 때문에 지금도 팔이 아프다.
한 십 년 전에 수영을 처음 배울 때,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몸에 들어간 물은 다 나옵니다. 귀에 물 들어가고 물 좀 먹어도 안 죽습니다. 걱정 마세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솔직한 강사다 싶지만,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수영을 제법 오래 한 사람들은 수영이 끝나고 샤워를 한 뒤에도 귀에 여전히 물이 도는 게 느껴지면 통통 뛰거나 면봉을 넣어 귀를 휘젓지 않는다. 손가락을 오므려 그 끝에 살짝 물을 받아서 귀에 더 넣는다. 그러면 그 물이 길을 열어 안에 있던 물과 섞이는 게 느껴진다. 그때 귀를 바닥을 향해 기울이면 쪼르륵 물이 나온다. 수영을 통해 물은 물과 섞여 한줄기 흐름을 만들고 수영을 할 땐 그 흐름들이 몸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배운다. 더 나아가, 결국엔 사람이 물과 섞여 건강해지는 법을 배운다.
수영의 매력과 운동의 권유
수영은 인간이 하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맨 몸으로 하는 운동이다. 특히 남자 수영복은 팬티 쪼가리 하나다. 여기에 수모와 수경이 다다. 그래서 숙련도와 실력, 컨디션을 숨길 수가 없다. 아마추어들은 그래서, 자유형 하는 것만 봐도 대충 상대의 수영 경력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오래 했지만 기본을 쌓는 시간이 없어서 그 실력이 제자리인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더 길게 쓰겠다.
여하간 이런 이유로, 수영은 내가 해본 운동 중에서 가장 명상에 가깝다. 마라톤도 비슷하고, 스포츠클라이밍도 비슷하다. 하는 동안 잡생각이 없어지고, 오직 앞으로 나가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모든 운동이 다 그렇듯 수영 또한 더 잘할 방법을 궁리케 한다. 개인적으로 이 세 종목은 장비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지려는 의지, 실력을 향상하려는 의지가 더 중요한 종목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른 스포츠도 본질은 비슷하겠지만.
그래서 이런 수영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 이걸 모르는 사람에게 그 매력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더 나아가, 모든 게 그렇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수영을 권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스포츠로서 수영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수영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건, 그 매력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나 또한 아내에게 그 매력에 대해 수 없이 들었으면서 꽤 오래 안 했으니까 말이다. 예전에 일 때문에 만난 예술회관 직원이 말했듯이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문외한에게 그걸 권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큼직하게 구분하면, 다른 사람에게 운동의 매력이나 독서의 재미를 말하고 권유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 나아가, 누가 그랬듯이, 물가로 데려가 줄 수는 있어도 물에 들어가는 건 순전히 개인의 몫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일단 그 매력을 아는 사람은, 거기에 젖어든 사람은 거기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운동하는 인간
토요일 오전, 딸은 방과 후 교실에서 음악 줄넘기를 한다. 난, 여기에 데려다준 뒤 40분 정도 집에서 밴드와 이지바로 간단한 근육 운동을 한 뒤, 땀에 젖은 채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달리기 하러 나간다. 그렇게 십 분에서 이십 분 정도 뛴 뒤, 아이와 함께 집에 온다.
오늘은 더 뛰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다. 좀 오래 뛰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려면 러닝화를 새로 사야 하겠지만, 어찌 됐든 수영을 하니 러닝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운동이 가진 매력은 다른 운동의 매력과 서로 연동된다. 읽기와 쓰기는 서로 연동된다고, 고미숙 선생이 어느 책에서 말한 것처럼 몸은 운동과 연동되어 하나의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운동도 하게 되고 둘 다 잘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이렇다 할 종목이라 할 만한 운동을 안 하고, 집에서 간단한 운동만 했었다. 일단 뭘 제대로 하면 그 제대로 하는 것이 다른 것도 제대로 하고 싶은 열망을 불러온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 말이다.
오늘, 딸은 줄넘기 교실에서 팀을 나눠 치른 게임에서 졌다. 진 팀의 벌칙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버핏 테스트, 하나는 50미터 선착순 3위안에 들기. 오늘의 벌칙은 50미터 선착순... 딸은 이제 고학년이고 키도 크니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고 한다. 1, 2학년은 꽤 앞에서 출발을 시켰는데도 그랬다고 한다. 이 시기의 한 살은 어마어마한 차이니까. 딸의 단짝 친구이자 함께 음악 줄넘기를 하는 지유가 딸의 달리기를 보고 그랬다고 한다. "은채야, 너 달리는 거 보니까~, 선수 같았어."
예전에 김용옥 선생님이 한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공부와 쿵후는 한자가 같습니다. 몸을 단련하는 것과 이성과 지성을 단련하는 것은 결국 같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대뜸 푸시 업을 열 번 가까이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공부와 쿵후
어제 오후, 딸과 외출을 한 후 막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검도 도장 승합차에서 곰돌이 푸우와 몸매가 비슷한 꼬마가 내렸다. 그 꼬마는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나와 딸 쪽으로 걸어왔다. 나이 탓인지, 못 참고 한마디 했다. "고개를 들고 앞을 봐라." 아이는 놀라 고개를 들고 걸어갔다.
쿵후(功夫)의 한자는 한국에서 말하는 공부(工夫)와 그 한자는 다르나 의미는 같다. 중국에선 무술을 물론이고 모든 숙달된 기술을 칭할 때, 앞의 쿵후를 쓴다고 한다. 난 딸이 두 개의 의미를 가진 공부와 쿵후, 양쪽 모두를 수련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에게 엄격하길 바란다. 우리의 뇌도, 몸도 하나뿐이어서 사는 내내 가꾸고 지켜야 하고 그건 일종의 주체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등하교를 하며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걷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지하철에서, 동해선에서, 내릴 때까지, 아니 내려서도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걱정을 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지성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문제까지 다다르는 것은 아닐까?
짧은 영상에 길들여져서 뇌의 지구력과 생각하는 힘이 떨어지는 것에만 국한될 문제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업>에 나오는 우주선 속 지구인처럼 그 육체 또한 힘이 떨어지고 비대해져서, 결국엔 기계와 한 몸이 되지 않고서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로 퇴화하는 건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한다. 이런 걱정 때문에 더 딸이 두 개의 쿵후를 수련하길 바라는 지도 모른다.
수련하고 단련하는 삶
딸하고 많이 걷는다. 등하교는 물론이고 지하철 한 코스 정도는 당연히 걸어가야 하는 거리로 인식시켰다. 운동은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인간인 이상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 시간을 들이는 것을, 독서와 공부에 시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듯이, 절대로 아까워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더 나아가 독서와 운동을 통해 시간을 들여야만, 그것도 아주 긴 시간을 들여야만 수준을 도달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 하고 있다. 음악 줄넘기의 일부 고난도의 동작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몇 주, 몇 개월 만에 되곤 하기에, 딸은 이미 그것을 절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관 수영장, 50미터 레인에서 혼자 유유히 자유형으로 예닐곱 바퀴를 돌았다. 배영을 할 때는 천장의 푸른 패널에 내 모습이 보였다. 수영은 물놀이가 아니라 스포츠고 모든 스포츠는 수련이고 수행과 닮아 있음을 새삼 느꼈다.
언젠간, 요즘, 유해진과 후배 배우들이 캠핑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스위스의 푸른 호수에서 딸과 함께 긴 수영, 레인도, 터치패드도 없는 긴 수영을 할 수 있길... 그 수영을 하며 더 많은 인생의 비밀을 서로 나눌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