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치유되도 흉터는 남는다.

8월 첫주, 수요일, 아빠도 화를 낸다.

by 최영훈

여름이 절정입니다. 은채의 방학도 리듬을 찾아 갑니다. 일어나는 시간은 여전히 일곱 시쯤이고 자는 시간도 늦어도 열 시입니다. 에어컨 덕분인지 열대야가 기승인 밤에도 은채는 깨지 않고 제 옆에서 잘 잡니다.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고 에어컨도 조절해야줘야 해서 은채의 뒤척임이 없는 은채 방에서 잡니다.


새벽에 잠이 깰 때마다 옆에서 자는 은채를 만져봅니다. 애기 때부터 하던 버릇입니다. 이렇게 해서 은채가 밤사이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점검 하는 것이죠. 여름에는 주로 덥지 않은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이마에 땀이 살짝 배어 있거나 잠옷이 눅눅하면 덥다는 것이겠죠. 그러면 안방에 에어컨을 켜 주거나 창문을 조금 더 열어 줍니다.

이렇게 귀하게 키우는 딸에게도 화를 냅니다. 주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것이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을 때 그렇죠. 또 은채의 유일한 알레르기인 색소 알레르기로 인해 먹지 말아야하거나 갖고 놀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사달라고 할 때 정색을 합니다.


수요일엔 아내와 모처럼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대구에서의 긴 프로젝트를 막 끝낸 삼촌이 이주의 휴가를 받고 집에서 쉬고 있어서, 삼촌이 은채를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삼촌 동네까지는 지하철로 세 정거장. 광안리에서 가까운 금련산 역. 저녁 다섯 시까지 삼촌 집에 가기로 해서 전 두 어 시간 전부터 은채에게 혹시 삼촌 집에 갖고 가서 놀거리가 있으면 미리미리 챙겨서 짐을 싸 두라고 했습니다. 은채는 없다고 했습니다. 출발 할 때가 돼서 은채의 교통카드가 들어간 목걸이 카드 지갑을 은채에게 줬습니다. 목에 바로 걸더군요.

집을 나왔습니다. 은채의 손에는 은순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은순이는 은채가 막 태어났을 때 엄마가 DIY 인형 키트를 사서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든 인형입니다. 은채 동생이라고 해서 은순이라고 이름을 붙여줬죠. 이 인형을 은채는 다른 데 가서 잘 때마다 데리고 갔습니다. 멀리 여행을 갈 때도, 하룻밤 감전동 외가댁에 가서 자고 올 때도 말이죠. 자고 올 것도 아닌데 구지 은순이를 왜 들고 나왔나 싶었지만 모른 척 하고 넘어갔습니다.

밖은 정말 더웠습니다. 네 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기온이 35도에 육박했죠. 집을 나와 2,3분쯤 걸을 때 은채가 갑자기 우뚝 섰습니다. “아빠, 교통카드.” 전 이때 짜증이 났습니다.

은채는 아빠랑 움직일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입니다. 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 지하철만큼 효율적인 교통수단도 없죠. 우리가 주로 가는 곳들은 지하철로 다 연결되고, 심지어 엄마의 회사는 2호선의 종착역이죠. 그래서 늘 저랑 외출할 때는 교통카드를 챙겨야합니다. 그것은 지난 6개월 동안 반복해서 연습한 규칙이죠.

물론 안 가져 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전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은채는 지하철 개찰구 밑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학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을 갖고 투덜댔지만 그건 규칙을 어기는 것이죠.

“넌 누가 봐도 초등학생이야. 초등학생이 요금을 안 내고 타면 어떡케 하냐?”

그런 일이 서너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집으로 가서 카드를 챙겨 왔습니다.

이날은 그 카드를 미리 챙겨서 걸고 있었는데 막상 집에 나와 보니 없었던 것입니다. 은순이를 챙기면서 정작 카드 지갑은 빼 놓은 것입니다. 우린 다시 집으로 갔습니다. 지갑을 챙기고 손에 덜렁 들고 있는, 키가 6,70센티미터는 되는 은순이는 집에 두고 가라고 했습니다. 은채는 싫다고 했습니다. 자지도 않을 건데 왜 가져 가냐고 했더니 그냥 가져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가져가면 떨어트릴 수 있으니 가방에 넣어가라고 했습니다. 전 현관 앞에 있고 은채보고 가방에 넣어서 오라고 했죠. 한참을 지나도 안 나왔습니다. 전 버럭하고 말았죠.

“왜 안 나와?”

“비어 있는 가방이 없어.”

결국 제가 들어가서 은채의 작은 백팩에 은순이를 넣어줬습니다.

그러면서 한번 더 버럭 했죠.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아빠는 벌써 힘들어서 엄마한테 못 가겠다고 해야겠다.”

은채는 안 된다고 울고불고 난리였죠. 결국 둘은 집을 나왔습니다. 둘 다 기분이 좋을 리 없죠. 말없이 지하철역까지 걸어갔습니다.


금련산 역 개찰구를 은채 혼자 나가게 했습니다. 삼촌한테 전화해서 출구를 알려주고 은채한테도 출구를 알려주고 찾아 나가라고 했습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수영역쯤 갔을 때 삼촌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은채가 안 올라왔다고. 전 내려서 은채한테 전화했습니다. 통화 중. 다행히 바로 삼촌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은채랑 만났다고.


전 사실 집에서 큰 소리 나는 걸 두려워합니다. 사실 모든 큰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죠. 그래서 있는 데로 성질 내 놓고 자기는 그래도 뒤 끝이 없다고 말하는 인간을 정말 싫어합니다. 최근 집에 문제가 있어서 은채가 보는 앞에서 아내랑 언성을 높였습니다. 아주 완곡하게 표현하면 말이죠. 우린 둘 다 은채한테 사과 했습니다. 물론 은채와 둘이 있을 때 제가 큰 소리를 내면 그날 안에 사과를 하고 대화를 합니다.

싸움이 있고 난 후 몇 주가 지난 어느 저녁 시간에 은채는 불쑥 “다시 엄마랑 아빠랑 싸우면, 아빠 미워, 엄마 싫어, 하고 방에 들어가서 다시는 안 나올 거야.”라고 선포를 하고 다짐을 받듯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습니다.


은채는 분명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아마 상처 받기 이전의 상태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죠. 아빠한테 사과를 받는다고, 대화를 하고 서로 포옹을 한다고 해서 흉터를 없애주는 약을 바르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가 없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단지 흉터가 연해질 수는 있겠죠.

심리학 이론은 잘 모르지만 전 상처는 나아도 흉터는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까지 포기해선 안 되겠죠. 상처를 그냥 놔두면 곪아 들어가서 더 큰 상처를 만들고, 심지어 수술을 통해 도려내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르니까요.

은채의 마음에 상처를 안 만드는 게 가장 좋겠지만 저 같이 흠 많은 아빠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 7년간 조심의 조심을 했지만 은채 마음에는 알게 모르게 상처와 흠집이 났을 것입니다. 솔직히 할 수만 있다면 자동차 외관 복원하듯이 상처가 없던 때로 다시 돌려놓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죠.


흉터가 커지지 않도록 정성껏 치료해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절대 화를 안내겠다는 이룰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정말 큰 거짓말이니까요. 그저 “너도 같이 사는 가족이니 좀 주의하자, 아빠도 앞으로 주의 하겠다.” 협의를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협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것이고요.


흉터가 없어질 만큼 더 튼튼하고 크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옹이 없이 곧고 곱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를 위해 아빠가 더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좋은 아빠이기 전에 더 좋은, 더 나은 인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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