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의미를 찾는 모험

8월 첫주, 토요일-첼로 연주자 같은 바이올린 선생님을 보고

by 최영훈

한 주간의 방과 후 학교 방학이 끝났습니다.

은채는 월요일부터 방과 후 학교를 부지런히 갔습니다. 월요일 아침 9시에 하는 방송 댄스도 갔다 왔고, 수요일엔 절친인 지유와 박물관 체험 활동에도 참가 했습니다. 금요일엔 역시 방과 후 학교로 바이올린을 배우러 갔고, 토요일엔 아침 아홉시에 하는 3D펜과 열한시에 하는 음악 줄넘기를 소화했습니다. 음악 줄넘기를 하고 나온 은채는 마치 습식 사우나에서 금방 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에어컨을 켜 놨다 하더라도 한 낮의 온도는 이미 35를 육박하고 있었으니까요. 은채는 나오자마자 배고프다고 난리였습니다. 가까운 단골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은채가 좋아하는 버섯 쇠고기 전골. 어쩌면 은채는 후식으로 주는 유자 푸딩을 먹기 위해 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금요일, 바이올린 시간엔 제가 직접 데려다 줬습니다. 백팩에 책 두 권을 넣고 따라갔죠. 학교 도서관을 학부모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말이죠. 학교 음악실은 5층, 도서관은 4층. 창 너머로 흘깃 바이올린 교실을 훔쳐보고 내려 갔습니다. 이날 오후 네 시엔, 백화점 문화 센터에서 하는 주산 교실에 데려다 줬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은채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은채야. 너 네 바이올린 선생님, 첼로 연주자처럼 생기셨어.”

“응? 첼로 연주자처럼 생겼다는 게 어떤 거야?”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악기 소리에 대한 나름의 선입견이 있습니다. 바이올린은 섬세하고 날카롭고, 첼로는 부드럽고 쓸쓸한 느낌이라는 게 아빠의 대체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다녔던 교회에 첼리스트 형님이 한분 계셨는데 은채 바이올린 선생님을 본 순간 불쑥 그 형님이 떠올랐던 거죠. 바이올린 선생님은 그 시절 그 형님처럼 흰 색 린넨 셔츠에 검은 색 바지를 입고 있었고, 음악실에 들어서는 은채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셨죠. 나이는 젊어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첼로의 여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아빠의 느낌을 은채한테 말했던 것이죠. 그러나 은채는 악기 소리에 대한 선입견이나 그에 따른 연주자 캐릭터의 고정관념이 없으니 아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리가 없었죠.

“아, 왜 첼로는 좀 부드럽고 깊은 소리를 내잖아?”

“응.” 선생님이 현악기마다 소리를 들려주셨던 모양입니다.

“바이올린은 높고 섬세한 소리를 많이 내는데 선생님은 예민한 소리보다 첼로 소리처럼 편안해 보였다고.”

“소리가 예민한 건 뭐야?”

형용사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묵직한, 따뜻한, 편안한, 여유로운, 섬세한, 예민한, 날카로운, 부드러운. 결국 은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해야만 했죠. 제가 느끼는 바이올린 소리와 첼로 소리의 차이를 말이죠.

“아빠가 느끼기엔 바이올린 소리는 딱 요즘 같아. 아님 한 겨울이나.”

“응? 왜?”

“요즘 낮에 나가면 해가 진짜 뜨겁잖아? 그리고 겨울엔 정말 춥고. 바이올린 소리는 아빠한테 그런 느낌을 줘.”

“그럼 첼로 소리는 봄이나 가을 같아?”

“아, 봄이나 가을이라기보다는 아빠가 느끼기엔 2월 달이나 11월 같아. 아주 춥지도 아주 덥지도 않은, 어떤 계절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아~.”


은채가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첼로 연주곡들은 뭔가 쓸쓸한 느낌을 줬습니다. 어떤 축제도 없는, 어떤 계절에도 끼지 못하는 2월과 11월만이 갖고 있는 적막함, 외로움이 느껴졌죠. 아빠가 이, 삼십대 느꼈던 느낌을 은채의 언어로 바꿔 말해 주기 위해, 그야말로 번역이 필요했습니다. 형용사는 기댈 사물이나 사람이 없어 힘을 얻지 못한 채 맴돌았고, 계절과 계절 사이의 달들의 쓸쓸함은 은채에겐 아직 없는 감각이었습니다. 은채에겐 4계가 분명했고, 2월이든 11월이든 어떤 계절에라도 속해야만 했습니다. 어떤 계절에도 속하지 않는 달이란 존재할 수가 없죠.


그렇게 우린 십 분 정도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의 차이, 그리고 그것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느낌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를 찾는 모험을 했습니다. 그 모험은 그러나, 절대 끝날 리 없는 모험, 어쩌면 이제 막 시작된 모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은채가 은채만의 사전을 구축할 때가지 우리 부녀는 주로 아빠의 사전에 있는 단어들을 갖고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은채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기만의 사전이 두꺼워지겠죠. 그때가 되면 우리 부녀는 하나의 개념과 현상을 두고 서로 다른 단어를 얘기할 것이고 그 다름을 갖고 한참을 토론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름이 틀림이 아니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냈고, 살아 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은채도 언젠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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