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20일, 금요일, 방학식을 시작으로 은채의 첫 번째 여름방학이 시작됐습니다.
은채는 방학 때 아빠와 이것저것 해 보고, 배우기로 했습니다. 일단은 오래 전에 사 놓은 받아쓰기 책을 떼어 보기로 했습니다. 쓰기의 난이도와 숙련도를 높여주는 책이죠. 지금도 나이에 비해 잘 쓰는 편이지만 은채는 더 욕심이 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앞서 말했던, 엄마가 골라준 영재 수학 책입니다. 서점에서 제가 직접 봤더니 논리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책이었습니다. 뭐랄까 제법 똑똑한 연예인들이 나와서 어려운 문제를 푸는 TV프로그램인 <문제적 남자>의 초등학생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전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교재가 영재학교의 기초 교재라고들 하던데 전 솔직히 그런데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은채가 난이도 높은 퀴즈를 풀듯이 접근하게 할 생각입니다. 잘 풀리면 몇 페이지 하고, 잘 안 풀리면 한 문제라도 오랫동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거죠.
세 번째는 은채가 원했던 음표 배우기입니다. 은채는 방과 후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습니다. 당연히 악보를 보겠죠. 그러나 음표 보는 법을 모르니 매번 선생님이 음을 설명해주셔야 했죠. 사실 은채는 일곱 살 때부터 저에게 음표 보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아빠는 악기도 다룰 줄 알고 음표도 잘 보니 아빠한테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집에 통기타가 있습니다. 물론 연주를 안 한지 몇 년 됐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죠.. 평택에서 부산으로 올 때 모든 악기를 교회 후배들에게 주고 오면서 악기로 하는 취미는 이제 그만하자고 다짐했었고 그걸 아쉬워하던 아내가 통기타를 사줬는데 손에 쉽게 잡히지가 않습니다. 어찌됐든 이런 아빠의 과거를 알게 된 은채는 음표나 음악을 배울 최적의 사람은 아빠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방과 후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악보 보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열망이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 방학에는 어딘가에 묻어 놨던 오선지도 꺼내서 악보 보는 법, 음표 그리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방학 첫 주는 은채 스스로에게 휴가를 줬습니다.
한 학기동안 열심히 해 왔으니까요. 은채는 금요일 날 교장 선생님 도장이 찍힌 대천 바름이 표창장을 들고 왔죠. 이걸 찍어서 미국 할머니에게 보내드렸더니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토요일엔 음악 줄넘기 승급 심사를 해서 초급 2급을 땄고, 급수증을 받았습니다. 은채 줄넘기 손잡이에는 2급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당당히 붙어 있죠. 이어서 간 <동화야 놀자>프로그램도 끝나서 부경대학교 총장님의 도장이 찍힌 수료증을 받았죠. 길게는 일 년, 짧게는 한 학기 동안 성실히 보낸 결실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은채는 개학 후 지금까지 열심히 학교를 다녔습니다. 감기 때문에 두 번 결석한 걸 제외하고는 학교 가기 싫다는 말도, 주말에 하는 방과 후 학교인 음악 줄넘기나 부경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동화야 놀자>프로그램도 가기 싫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엄마 아빠가 어디 가자고 꼬드겨야만 겨우 쉴 수 있었습니다. 애가 묵묵히 성실하게 뭔가를 해 나간다면 부모는 그저 아이의 체력과 스케줄 관리만 해주면 됩니다. 여러 스케줄이 꼬이지 않도록 하고, 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어디 아프지 않도록 잘 먹이고, 잘 쉬게 하면 되죠.
담임선생님이 은채의 1학기에 대해 평가하신 내용의 핵심은 딱 한마디입니다.
“습관이 잘 들었다.” 은채의 식습관과 독서 습관이 좋다는 칭찬이 있었습니다. 전 솔직히 식습관이 좋다는 칭찬이 더 좋습니다. 평생 건강을 책임지는 습관이니까요. 선생님은 또 학습에 대한 열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익히 알고 있죠. 무서울 정도죠.
방학 둘째 주부터 지켜나갈 계획을 함께 세웠습니다. 언제, 어떤 공부를 하고, 언제 함께 책을 읽을 것인지 말이죠. 틈틈이 같이 수다 떨고, 영화 보는 시간도 계획해 놨습니다. 무슨 책을 읽을 지 고민도 하고요. 방학식 이후 첫 주, 은채의 휴가 기간 동안, 은채가 먹고 싶다는 건 웬만하면 다 사줬습니다. 달달한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치킨.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센텀 시티의 한 백화점에 가서 쇼핑도 하고, 장난감 뽑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멍 때리면서 만화도 보고 일러스트 책을 사서 귀여운 그림도 잔뜩 그렸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방전 된 에너지를 은채는 충실히 채워갔습니다. 그렇게 채워줬더니 은채는 7월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8월에는 쉬고 싶다던 미술 학원도 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가 올 8월의 꽉 찬 스케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빠와 함께 배워나갈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