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걸 인정하는 용기

8월 첫주 일요일, 실패를 통해 완성을 향해 간다.

by 최영훈


일요일, 은채는 수학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나 저나 중학교 때부터 수포자로 살다가 공교롭게도 사회과학 전공을 통해 통계학을 배우면서 그나마 숫자와 친해진 사례입니다. 그래서 내 딸만은 좀 숫자랑 일찍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단한 학습지 하나를 하고 있죠. 요즘엔 두 자리 숫자의 더하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세로 덧셈까지 나아갔죠. 8월 들어서는 더하면 세 자리 숫자가 되는 경우까지 배우고 있죠. 그래서 1을 올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문제는 은채가 이 1을 백이 안 되는 경우에도 무조건 올려야 한다고 종종 착각하곤 한다는 것이죠. 일요일 낮에 숙제를 하다가 우연히 엄마가 이걸 발견했습니다. 앞에 페이지 몇 장을 더 보니 무조건 1을 올려놔서 백이 안 되는 숫자에도 앞에 백을 붙여놨죠. 엄마는 은채에게 백이 안 되니 1을 올리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은채는 선생님이 무조건 1을 올리라고 했다면서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그게 아니라 백이 될 때마다 그렇게 하는 거라고 다시 말해줬죠. 그리고 앞에 틀린 것들을 고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은채는 천천히 책을 덮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엄마는 왜 안 고치냐고 물었죠. 은채는 지금은 하기 싫어져서 나중에 할 거라며 책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꾹 참고 놔뒀습니다. 잠시 후 은채 방을 살짝 훔쳐보니 어둑해지는 늦은 오후의 자기 방에서 불도 안 키고 책상에 앉아 틀린 문제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은채는 정말 지기 싫어하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아마 이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겠죠. 이 또래 아이 중 어느 누가 “내가 이건 좀 못 하니 전공 선택할 때 신경 써야겠다.”라면서 쿨 하게 한 과목 앞에서 돌아설 수 있겠습니까. 학교 들어가기 전에도 아빠랑 어떤 게임을 해도 지기 싫어했죠. 한번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하고 하던 보드게임인 할리갈리를 사 달라고 했습니다. 우린 사줬고 같이 게임을 했죠. 그런데 질 때마다 욱하면서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이게 빨리 보고 벨을 치는 게임이라 지는 척하면 금방 티가 나죠. 결국 은채가 울고불고 해서 이 게임은 다시는 안 하기로 했죠.


전 은채한테 잘 지는 법,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에는 어떤 분야든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반면에 나만이 특출 나게 잘하는 분야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라는 걸 말이죠. 각자 잘 하는 영역이 다르니 상대의 영역에 들어가면 지는 건 당연한 거라는 걸 말이죠.

전 이걸 대학 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선 일 년에 한번 총장배 축구 대회를 했습니다. 일종의 대학의 FA컵이라고나 할까요? 동아리, 학과, 기숙사 등 팀을 꾸리고 팀의 소속만 있으면 참가할 수 있는 대회였습니다. 전 어느 해인가 기숙사 대표팀으로 이 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4강인가 8강에서 사회체육학과 팀과 붙었었습니다. 당시, 전 일반인 치고는 제법 달리기가 빠른 편이고 나름 공 좀 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운동이 전공이고 그걸로 먹고 살 생각을 하는 사람하고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걸 이때 절감했습니다. 상대편 공격수가 치고 나가면 분명 내가 먼저 공을 향해 출발했는데 어느새 저를 추월해서 골대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은채를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트럼프 카드 게임이었습니다. 원카드 아시죠? 이 게임은 사실 운칠기삼입니다. 패가 잘 들어오면 쉽게 이길 수도 있고, 조커라도 들어오면 금방 끝낼 수 있습니다. 은채는 초등학생이 된 후 이 게임을 하면서 패배라는 현실을 수긍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수긍과 함께 승리의 기쁨도 오롯이 자기 것으로 누리고 있죠. 이 게임은 사실 져 주기도 애매하고 솔직히 그게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은채는 실력으로 저를 자주 이기곤 했습니다.

좀 난이도를 높여서 블랙잭을 쉽게 변형한 게임이나 훌라도 가르쳐 봤습니다. 블랙잭을 쉽게 변형시켜서 카드로 특정 숫자를 만드는 게임으로 바꿨죠. 그런데 이 게임은 절대적으로 은채한테 유리한 것이 주산에 수학까지 한창 배우고 있는 은채가 저보다 암산 능력이 더 좋기 때문이죠. 게다가 훌라도 스톱이라는 룰이 있으니까 재빨리 카드 숫자를 계산해서 자기 카드 숫자가 낮다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스톱을 부릅니다. 그러니 아주 공평하게 은채가 자주 이기고 있죠.


이기는 게 반복되는 만큼 지는 게 반복 되도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또래보다 조금 크니 달리기도 빠르고 힘도 좋아서 체육도 잘하고, 그림에 관심도 많고 미술학원도 다니니 그림도 잘 그리고 꼼꼼하다는 칭찬도 받습니다. 이런 과목 저런 과목 모자람 없이 나름 선방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중학교쯤 가서 과목이 정신없이 많아지면 분명 구멍이 생길 겁니다. 그야말로 폭망하는 과목이 발생하게 되겠죠. 물론 부모 입장에선 그런 과목이 생기면 과외를 시켜서라도 단점을 메워줘야겠죠.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천부적 재능의 한계를 절감해야 부모에게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요? 또 그걸 잘하는 친구에게 자존심을 굽혀가며 물어 볼 수도 있고 선생님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말이죠.

우리가 사는 사회는 패배, 실패, 부족함을 긍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소홀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작은 부족함이나 실패도 큰 낙담과 절망으로 이어지는지도 모릅니다. 전 은채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최대한 담담히 바라보길 원하고 있습니다. 자존감이든, 자존심이든 그 본질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편안히 받아들이는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요즘 난이도 높은 받아쓰기를 하면서 어른도 어려운 띄워 쓰기 공부를 합니다. 당연히 열 개를 하면 서 너 개는 틀립니다. 솔직히 제가 봐도 어려운 것이 수두룩하니까요. 그러나 이때도 은채는 억울해 합니다. 백점을 못 맞춘 것이 말이죠. 그때마다 제가 말합니다.

“나중에 백점 맞기 위해서 오늘 많이 틀려 봐야 하는 거야. 괜찮아. 많이 틀려도.”

실패를 통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올 여름에 은채와 함께 새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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