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둘째주, 아까운 것을 배우다.
며칠 전 삼촌 집에 놀러 갔다가 근처 편의점에서 은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붙임 머리 장난감. 반짝이는 인조 머리칼 끝에 간단한 핀이 붙어 있어서 기존 머리칼에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하는 일종의 머리 장식품입니다. 은채는 사달라고 했지만 다른 곳에서도 좀 알아보자고 하고 넘어 갔습니다.
이 주 일요일, 삼촌 집에 있는 에어 프라이어로 닭 요리를 해먹자며 닭 봉을 사들고 갔습니다. 은채는 그 기회를 다시 잡아 아빠에게 편의점에 가자고 졸랐고 전 결국 맥주 몇 캔과 함께 그것도 함께 샀습니다. 요 며칠 간 그걸 사고 싶어서 애를 끓는 은채를 보는 게 유쾌하지 않았으니까요.
학교 가기 전에는 은채가 뭔가를 사 달라고 하면 이러 저리 따져보고 안 되는 것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 되면 사 줬지만 며칠만 갖고 놀면 싫증이 날 게 뻔한 장난감은 사주지 않았습니다. 또 관광지에서 파는 자잘한 기념품이나 장신구, 장난감도 좀처럼 사주지 않았죠. 그러나 이상하게 초등학교 들어 간 이후로는 거절이 쉽지 않습니다. 은채가 생각이 깊어지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안 필요한지 따지고, 비싼지 안 비싼지 나름 가늠해 보는 걸 보면서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 빨리 철이 드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고 부모 사정과 눈치를 너무 이른 나이에 보기 시작한 건 아닌가 하는 안쓰러움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은채는 정말 좋아했습니다.
다음 날, 월요일, 은채는 아침엔 방과 후 학교인 방송 댄스 수업을 다녀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미술 학원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죠. 잠시 아빠가 화장실 간 사이에 뭔가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와 보니 은채는 자기 머리길이보다 긴 붙임 머리칼을 자기 머리길이에 맞게 잘라서 머리에 꽂아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가 좀 짧았습니다. 대략 2센티미터 정도 짧았죠.
“은채야, 아빠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왜 자꾸 몰래해. 좀 짧게 잘라졌잖아.”
그때 은채의 눈이 붉어졌습니다. 그러더니 얼른 거울 앞으로 갔습니다. 짧은 길이를 확인 한 은채는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설움이 폭발했죠.
아빠가 사 준 걸 자기가 함부로 다뤄서 망쳤다는 자책.
완벽하게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의 실력에 대한 실망.
엄마와 아빠의 도움을 빌리는 걸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해서 망쳐 버렸다는 원망.
아직 혼자 하기엔 부족한 자기 실력에 대한 아쉬움.
이런 모든 것들이 겹친 설움이었습니다.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은채야 괜찮아. 하나는 길게 남아 있잖아. 짧은 건 머리를 묶었을 때 하면 돼. 그리고 여기 구슬 장식이랑 비즈 장식이랑 같이 하면 자연스럽고 예뻐.”
그래도 은채는 좀처럼 진정이 안 됐습니다. 완벽하게 꾸민 후 미술 학원에 가서 자랑할 생각도 있었고, 예쁘다는 소리도 듣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이런 자기 계획이 맘대로 안 됐으니 당연히 속상할 만 하겠죠.
은채는 결국 아빠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 울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달래고 달랜 후 여러 장식을 함께 단 후에야 진정 했습니다. 학원도 안 가겠다는 은채를 겨우 달래서 보냈습니다.
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자랐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표현도 무리가 없죠. 그래서 지금도 만 원 이상 돈을 쓸 때는 묘하게 긴장하고 몇 번씩 생각하고 심지어 몇 만 원 이상 하는 옷이나 물건을 살 때는 식은땀도 납니다. 그렇다고 지금이라고 살만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니 은채가 원하는 건 적당한 선에서 해줘야 하는데 그게 맘처럼 잘 안 됐습니다. 한동안은 아주 힘들었죠.
그러던 것이 은채가 천지분간을 하고 자기 생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나름 신중하게 사고 싶은 물건을 얘기하고, 그 물건이 제 눈에는 하찮게 보여도 은채와 은채의 세계에선 나름 중요한 것이라는 것, 그 물건이 없어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소위 그 또래의 사회생활과 소통을 위해서는 필요한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저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은채는 사고 싶은 걸 뒤로 미루고 나중에 사주겠다는 약속을 믿어온 절제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물론 우리도 약속을 하면 꼭 지켰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은채가 참고 기다리는 걸 보는 게 속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큰 돈 드는 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은채가 원하고 필요한 거는 최대한 신속하게 사주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먹었다 한들 해주고 싶은 걸 다 해 줄 수도 없고 다 해줘선 안 되겠죠. 하지만 최소한 은채의 인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더 나아가 벌써부터 부모 지갑 형편 생각 하면서 뭔가 사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벌써부터 이리저리 재는 아이로 크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신 다른 사람 눈에 잘 보이기 위해서, 쟤가 했으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뭔가를 사고 돈을 쓰는 것은 잘 못 된 것이라는 걸 찬찬히 가르칠 생각입니다. 뭔가를 사고, 뭔가를 경험해서 은채가 더욱 은채다워지는 것이라면 아빠가 언제든지 사주고 돈을 써준다는 믿음을, 그런 소비 가치관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