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마지막주 - 엄마가 찍어준 부녀의 사진, 함께한 추억.
더위도 한풀 꺾였습니다. 은채의 방학은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죠.
방학 내내 어디 멀리 못 갔었는데 한 달 전에 엄마가 예약 해 놓은 고령 대가야 테마파크 펜션 덕분에 고령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펜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령은 대가야의 고장이죠.
금요일 아침. 은채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를 생각에 들떠서 차에 올라탔습니다. 첫 번째 휴게소인 진영 휴게소에 들러서 좋아하는 소떡소떡과 호두과자를 샀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도넛과 아메리카노. 엄마는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 컵에 받으면 늘 다 못 마신다며 텀블러를 준비해 갔습니다. 덕분에 고령에 도착해서도 커피는 따뜻했죠.
고령에 가는 길에 도로 표지판을 보니 고령과 합천 해인사가 아주 가까웠습니다. 이게 아날로그의 힘이겠죠. 고령을 관광한다고 고령에 대해서 검색하다보면 고령 인근 도시의 정보에 대해선 새까맣게 까먹게 됩니다. 우리 나이 정도 되고, 부산에서 십년 넘게 살았으면 거창, 합천, 고령, 함안, 성주 등이 서로 인접한 지역이라는 걸 얼추 감으로 알고 있는데도 고령에 그야말로 꽂혀서 주변의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고령에서 관광을 하고 돌아가는 토요일엔 합천 해인사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아빠도, 한 번도 안 가본, 팔만대장경이 보관 되어 있는 해인사를 드디어 간다는 생각에 설레었죠.
고령은 정말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였습니다. 박물관 정원에서 만난 나비들조차 무늬가 선명할 정도였고 그 종류도 많았습니다. 어디서 따로 나비를 키우는지 두리번거렸을 정도였습니다. 안타깝게 박물관의 주 건물인 역사관은 리모델링 공사로 내년 4월까지 휴관 중이었습니다. 다행히 왕릉전시관은 운영 중이었습니다. 그곳은 고령의 대가야 고분군이 어떻게 발견 됐고, 발굴 됐으며 그것이 어떻게, 어떤 형태로 조성됐고, 부장물이 뭐였는지 상세히 알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빠나 엄마, 은채에게도 생소한 대가야의 매장 문화에 대해서 그야말로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죠. 또 다양한 유물을 볼 수도 있었죠.
그곳 직원의 소개로 우륵 박물관도 방문했습니다. 우륵은 가야금의 시조이자 우리나라의 삼대 악성이죠. 고령 대가야 박물관에서 차로 오 분도 안 걸렸습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륵의 동상이 우리를 맞이했죠. 전시관엔 가야금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악기와 그에 대한 설명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현악기의 소리를 직접 들어 볼 수 있는 전시물에선 아빠와 은채 모두 한참 머물렀습니다.
관람을 끝내고 나온 후 안족 목걸이 체험을 했습니다. 안족이란 가야금 줄을 받히는 기러기발을 닮은 받침대를 말하죠. 이 안족을 펜던트 삼아서 다양한 구슬을 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마침 행사의 마지막 전날인데다가 담당하시는 분이 조금 늦으셔서 초등학생만 무료로 할 수 있는 것을 부모님도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은채와 다른 초등학생 오빠, 그리고 아빠와 엄마, 그 오빠와 함께 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다 같이 참여해서 손수 만들어보고 각자 하나씩 목걸이를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 체험 선생님은 사실 가야금 체험관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고령에서 낳고 자라서 그야말로 걸음마를 뗄 때부터 가야금을 배워 대학생이 된 청년이었죠. 그 청년이 방학 때면 아르바이트 삼아 고향에서 이렇게 관광객에게 가야금 체험을 가르치고 가야금 연주도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초등학생 오빠와 은채, 엄마와 오빠의 할머니는 가야금으로 학교종이 땡땡땡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연주로 아리랑을 듣는 귀한 경험도 할 수 있었죠.
펜션은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이었습니다. 낮은 산의 계곡 안에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어서 아늑하고 시원했죠. 펜션의 커다란 창문으로는 대가야의 지산동 고분군이 보였고 공기는 대도시하고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곳곳에 꽃들이 넘쳐 났고 다양한 나무들이 촘촘히 서 있었습니다. 곳곳엔 대가야를 테마로 한 조형물과 체험 시설이 있었죠.
오후 늦게까지 쉰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으러 지역 식당을 찾았습니다. 마침 검색해서 찾아간 두 곳의 식당이 영업을 안 해서 결국 보건소 인근의 한 식당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먹었습니다. 그 후 군청 근처 번화가의 마트에 들러서 군것질 거리와 아빠의 맥주를 샀습니다.
우리는 해가 지길 기다렸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던 별이 뜨길 기다렸습니다.
캄캄해진 한 밤. 우리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엄마의 기대가 맞았습니다. 하늘엔 별이 가득했습니다. 부산이라는 대도시의 하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들이 고령의 하늘에는 무수히 떠 있었습니다. 아마 테마 파크의 조명이 모두 꺼지는 한밤중이었다면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충분했습니다. 별들은 충분히 많았고 더할 나위 없이 빛났습니다. 나중에 은채한테 물었더니 고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별이라고 대답할 정도였습니다.
토요일엔 왕릉 전시관 옆에 있는 어린이 체험실에서 다양한 체험을 했습니다. 고령토로 대가야의 마스코트도 만들어보고 탁본도 찍어 봤습니다. 대가야의 옷을 입고 사진도 찍어 봤죠. 은채는 정말 재미있었다고 좋아했습니다.
이제는 해인사로 떠날 시간.
삼십분쯤 걸려 해인사 주차장에 도착한 후 우리는 다시 한 이십분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가야산의 풍광과 시원한 계곡 소리에 감탄했습니다. 불쑥 마주치는 고목과 다람쥐들도 신기했습니다.
해인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웅장했습니다.
마침 해인사에서 진행 된 조계사의 하안거를 마무리하는 행사가 준비되는 터라 사찰 입구의 성보박물관 뜰은 정신없었습니다. 사찰 곳곳엔 조계사를 비롯한 주요 사찰의 신도들과 스님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고요. 해인사가 얼마나 큰 사찰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삼보사찰 중 법보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기존 사찰의 대웅전 역할을 하는 삼존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의 규모도 웅장했습니다. 한국 고유의 사찰 건축물이 거센 암산을 등지고 서 있으면 얼마나 남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표충사 이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해탈문의 가파른 계단을 보고 위압감을 느꼈는데 장경판전으로 향하는 계단은 더 완고해 보였습니다. 마치 이곳은 귀한 것을 보관하는 곳이니 함부로 올라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죠. 그 계단을 조심히 올라가 보니 장경판전의 보관소 나무 창살 사이로 천년을 버틴 목판의 등걸이 보였습니다. 요즘 책은 아무리 좋은 책도 십년 이상 본색을 유지하며 버티기 쉽지 않은데 그 판들은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은채에게 이 판들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떻게 책을 인쇄하는지 최대한 정성들여 설명했습니다.
시선을 돌려 가야산과 사찰 지붕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풍경을 보게 해줬습니다. 엄마는 은채와 대적광전, 가야산의 웅장함이 한눈에 담기도록 사진을 찍어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기념하는 기념물 앞에서도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우리 가족은 사찰 곳곳에서 마주친 외국인들에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이런 문화재를 갖고 있는 국민이라면 외국 손님에게 이 정도 여유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국인이라면 언젠간 꼭 한번 가 봐야하는 곳입니다.
엄마와 은채는 사찰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산 중턱에 있고, 사찰 안에 있는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보다 싸면 쌌지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은채와 엄마는 차를 기다리는 동안 한쪽 벽에 전시 된 기념품들을 구경했고 아빠는 요즘 관심 있는 불교 철학을 다룬 책들을 찬찬히 구경했습니다.
카페를 벗어나면 경내 한 편에 법종각이 있습니다. 김해 은하사의 목어에 감동을 받은 뒤로 어느 사찰을 가도 꼭 목어가 있는 곳을 찾습니다. 법종각은 불교 사물이라고 하는, 사찰의 하루를 깨우고, 예식의 시작을 알리는 타악기인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는 곳이죠. 사찰에 따라선 범종을 따로 모시기도 하지만 큰 사찰은 대체로 이 네 개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은채에게 각 악기가 어떻게 소리가 나고 무엇으로 소리를 내는지 설명했습니다. 마침 각내에 각 악기의 소리를 내는 도구들이 있어서 설명하기가 훨씬 편했습니다. 은채와 함께 쭈그리고 앉아 목어의 파 놓은 배 밑도 확인을 했죠. 은채가 해인사의 경치와 팔만대장경의 의미를 오롯이 마음에 새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앞으로 은채가 크면서 이 사찰의 의미를 더 크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바랄뿐입니다.
해인사 숲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아내가 장경판전 계단 아래에서 찍어준 부녀의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계단 맨 위에, 팔만대장경이 선명하게 써진 현판 아래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은채와 아빠는 각자의 오른손과 왼손을 머리 위로 올려 큰 하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은채는 아빠의 손에 자신의 손을 맞추기 위해 왼팔을 힘껏 뻗고 있었죠.
전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딱 한 장 있습니다.
제가 7살, 동생이 6살쯤 됐을 때 찍힌 사진이죠. 쌍문동 살던 시절에 찍힌 듯 합니다. 지금은 본래의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찾은 창경원에서의 사진입니다. 창경원은 은채랑 용인 에버랜드에 놀러 가기 전까지 제가 유일하게 갔던 동물원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전, 구릿빛 원형 양은 도시락에 담긴 밥을 향해 젓가락을 뻗은 채 벤치에 앉아 있는 아빠를 보고 있습니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은 제 뒤에 숨듯이 서서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인 채 역시 도시락에 젓가락을 뻗고 있죠.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표정 없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아버지의 오른쪽 방향 살짝 뒤편에서 저와 동생을 향해 찍혔기에 아버지의 오른쪽 얼굴만 보입니다. 80년대 청년답게 장발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 레이밴 일겁니다. 연한 무늬가 있는 흰색 셔츠에 하늘 색 여름 정장을 입고 있습니다. 상의는 사파리 스타일로 당시에는 상당히 멋쟁이로 보였을 디자인입니다. 양말은 희고, 구두는 검은색 스웨이드 같습니다. 도시락엔 햇빛이 반사돼서 빛나는 부분이 있는 데 구두는 아무런 광도 안 나기 때문이죠. 전 빨간색 긴 팔 피케 셔츠에 하늘색 반바지를 입고, 흰색 스타킹을 받쳐 신었습니다. 거기에 파란색 슬리퍼를 신고 있네요. 동생은 밤색 원피스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노란색 슬리퍼를 신고 있고요. 아마 모처럼, 아니 어쩌면 최초의 가족 나들이여서 어머니가 최선을 다해 입히신 것 같습니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아버지를 조금 이해하고 용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은채를 키우면서 이해가 더 안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이 사진을 보고 “그럴 수 있다. 그 나이라면.”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이 사진을, 수십 년 전국을 떠돌며 살다가 십여 년 전에 좋은 남자를 만나 청원에 정착해 딸 둘을 낳고 살고 있는 여동생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아버지 사진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을 때 문득 생각나서 다시 보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이때 겨우 스물일곱 여덟쯤 됐을 겁니다. 애가 애를 낳아서 키운 것이죠. 미술을 전공했으나 무예가였고 동시에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된 한 남자의 차림새를 보면서 왜 그렇게 자식 사랑에 서툴렀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은채와 아빠가 함께 찍힌 사진이 많이 생깁니다. 고등학교 때 사진반이었던 엄마가 늘 멋있게 찍어주죠. 사진 속의 아빠는 늘 편한 차림으로 큰 배낭을 메고, 은채에게 꼭 붙어 있습니다. 가족 여행에서 아빠는 짐꾼이고, 보호자고, 가족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머슴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대신 엄마는 여행의 모든 걸 계획하고 예약하고 가이드 해주고 사진까지 찍어주고요. 그래서 전 항상 편한 차림입니다. 대신 색깔만큼은 화려하죠.
은채가 어른이 된 후에 앨범을 보게 되면 아빠와 찍은 사진이 정말 많을 겁니다. 그래서 훗날 결혼 한 신혼집에, 또는 아빠가 죽은 후에 함께 찍은 사진 하나를 골라 액자로 만들어 간직이라도 할라치면 정말 고르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진을 고르든 그 사진 속의 아빠는 환하게 웃고 있을 겁니다. 부녀의 뒷모습을 찍는 걸 좋아하는 엄마 덕에 혹시라도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고른다면 커다란 백팩을 멘 채 은채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거나 은채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을 겁니다. 아니면 “아빠가 사진 그만 찍으래.”라고 말하면서 은채는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고 아빠는 조금 앞에서 걸어가는 뒷모습이겠죠.
어떤 사진을 고르더라도 젊지는 않을 겁니다. 머리칼은 하얗고 짧을 겁니다. 눈가에 주름이 있고 뺨은 움푹 들어가 있을 겁니다. 눈썹도 절반쯤 흴 겁니다. 그러나 분명, 은채와 함께라면 웃고 있을 겁니다. 아빠가 좋아하는 푸른색의 오클리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도 웃는 것이 느껴질 겁니다. 은채가 곁에 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