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색 기차 연필깎이

유년시절의 기억은 목에 박힌 칼

by 최영훈

여름 방학은 이제 끝나갑니다.

은채는 부지런히 보냈습니다. 일기를 일주일에 두 번을 쓰고, 책도 하루에 한권은 읽고 선생님이 나눠주신 기록지에 꼼꼼히 메모했습니다. 엄마랑 다양한 공연을 봤고, 아빠와 받아쓰기를 통해 띄워 쓰기와 맞춤법 공부를 더 했습니다. 제법 어려운 수학 학습지도 함께 풀었죠. 게다가 고령에도 다녀왔고 말이죠.


화요일은 외가댁에서 보냈습니다. 월요일 밤에 짐을 싸들고 가서 화요일 밤에 집에 왔습니다. 아빠가 화요일마다 울산 팀 사무실에 나가봐야 하기 때문이죠. 엄마 없이는 못 잘 줄 알았는데 방학 내내 잘만 잤습니다. 외할머니는 행여나 은채가 더울까 곁에서 부채질을 해주시느라 깊이 잠들지 못하셨지만 말입니다.

갈 때마다 은채는 외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 왔습니다. 오천 원, 만원씩 말이죠. 외할아버지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은채가 특별히 원하는 게 없어도 은채가 목에 걸고 다니는 작은 지갑에, 때로는 은채가 짐을 싸들고 간 가방에, 때로는 은채의 바지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시곤 했습니다. 은채는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먹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 도구 등을 사곤 했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 밤에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은색 기차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하이 샤파 연필깎이. 정말 저 초등학교 때 모습이랑 하나도 안 변했더군요. 마치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는데 나만 늙고 친구는 그때 그대로인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씻고 거실에 앉았습니다. 엄마와 은채는 벌써 잠든 깊은 밤.

전 습관처럼 사 간 맥주를 잔에 따라 한 모금을 마신 후 연필깎이를 한참 봤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만져 봤습니다. 뒤의 손잡이를 몇 번 돌려도 봤습니다. 뭔가 모를 묘한 슬픔이 밀려 왔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겐 이 은빛 기차는 부자 친구의 상징이었습니다. 삼각형 모양의 티티 샤파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제품이었죠. 그 시절 유행했던 은하철도 999의 기관차 모양을 본 떠 만들어서, 정말 그 당시 초등학생들에겐 꿈의 제품이었습니다. 드림 카 같은 것이었죠. 초등학교 때, 전 항상 연필을 작은 도루코 칼로 깎아 다녔습니다. 저학년 때는 엄마가 깎아주셨고, 고학년 때는 나름 서툴게나마 제가 깎아 다녔죠. 그래서 항상 연필깎이로 매끈하게 깎인 친구들의 연필을 부러워했습니다.


은채에게도 연필깎이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작은 것이었죠. 나름 괜찮았는데 몇 번 책상에서 떨어지면서 고장 나고 말았습니다. 여름 방학 내내 은채는 작은 휴대용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아왔습니다. 엄마가 제대로 된 거 하나 사줘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화요일에 할아버지와 함께 마트에 갔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가 엄마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사준 하이 샤파를 보게 됐고, 할아버지는 손녀에게도 똑같은 걸로 사주셨던 겁니다. 엄마의 하이샤파는 몇 년 전까지 외갓집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어린 시절 부러워만 하던 그 제품을 성인이 돼서 내 아이의 것으로 만나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이제는 쓸 일 없는 제품이지만 전 몇 번이고 만져 봤습니다. 정말 옛날 그 모습 그대로인 것이 신기해서 여기저기 살펴봤습니다.


전 사실 조부모에게 큰 선물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양말 공장에 다니던 친할머니가 가끔 양말 더미를 안겨주신 거 외에는 말이죠. 그래서 전 지금도 양말을 사서 신는 것을 망설이죠.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나름 최선을 다하셨던 것 같습니다. 두 분 다 너무 일찍 결혼하셨고, 너무 일찍 엄마 아빠가 돼서 자식을 어떻게 키울지 모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마흔이 다 돼서 나은 자식도 어떻게 하면 잘 키우는 건지 전전 긍긍 하는데 갓 스물, 스물 하나에 자식을 낳았으니 오죽할까요? 더듬어 보면 어머니는 특히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이혼 후 혼자 사춘기 아들을 키우시면서 별의별 일을 다 하셨고, 장사도 여러 번 하셨죠. 그러나 제가 스물이 넘을 때까지 물질적 여유를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제 방이나 제 물건에 대한 개념도 희미했죠.


그래서인지 전 요즘에도 가끔 땅콩버터를 통째 놓고 퍼 먹곤 합니다. 미군 부대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낸 저에게 땅콩버터는 가장 사치스러운 간식이었습니다. 부잣집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먹어 본 땅콩버터는 정말 고급스러운 맛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요즘도 빵에 땅콩버터를 먹는 것이죠. 땅콩 알갱이가 아작아작 씹히는 걸로 말이죠.


“유년 시절의 기억은 목에 박힌 칼 같아서 절대 잊혀 지지 않는다.”

<그을린 사랑>을 보다가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기억은 묻혀 질 순 있어도 사라지진 않습니다. 은채를 키우면서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불쑥 떠오르곤 하죠. 전전한 셋방살이, 리어카를 끌며 다녔던 이사, 어머니와 함께 직접 할 수밖에 없었던 도배, 몇 가구가 함께 써야 했던 외딴 화장실, 돈이 없어서 한두 장씩 살 수 밖에 없었던 연탄, 작은 종이봉투에 사야했던 됫박들이 쌀까지.


이런 기억들이 은채를 키우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여름에 더운 거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서 에어컨도 안 켜고 버티던 저였지만 막상 44일이라는 긴 여름 방학을 맞은 은채를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에어컨을 켜 놨습니다. 환기하려고 잠깐이라도 끄고 베란다 창을 열면 은채는 덥다고 난리였죠. 밤에도 엄마는 타이머를 맞춰가면서 은채가 덥지 않도록 신경 썼습니다. 더우면 거실에 나와서 자고, 창문을 다 열고 자고, 그것도 안 되면 이방 저방 옮겨가며 자는 걸 은채는 안하게 하려고 말이죠.


은채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스테이크를 말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한우 스테이크 거리를 사와서 집에서 구워 먹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죠. 부산이라 활 전복을 마트에서 싸게 살 수 있어서인지 은채는 전복을 집에서 구워 먹는 것도 호사라고 생각 안합니다. 아빠는 서른 넘어서, 부산에 와서야 전복을 먹어 봤다는 얘기를 하면 믿지를 않죠. 연어 회나 초밥, 횟집의 모듬회를 배불리 먹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산이어서 싸기도 하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먹어서 그런지 특별한 외식이라고는 생각하지만 호사나 사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나나 하나조차 사치였던 아빠의 어린 시절하고는 비교도 안될 만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죠.


아빠의 두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셔서 구체적인 기억이 없습니다. 두 할머니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죠. 은채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외삼촌을 자주 봅니다. 외할머니는 은채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묘수를 내서 은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곤 하죠. 킥보드를 타고 빗물이 고인 웅덩이로 돌진해도 뭐라고 안 하시고, 사람이 거의 안 다니는 지하철 역 한 귀퉁이에서 킥보드를 타도 말리시지 않습니다. 물론 설계상의 잘 못으로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곳이긴 하지만 아마 저였다면 못 타게 했을 겁니다.


은채는, 제 기준으로는 부족함 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사랑도 물질도 말이죠. 하지만 그건 제 어린 시절 기준과 비교했을 때 그런 것이지 지금의 같은 반 친구들하고 비교했을 땐 알게 모르게 어떤 결핍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결핍이 큰 기억의 구멍을 만들어서 은채의 유년시절의 그늘을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은채가 뭐가 필요하다, 갖고 싶다고 하면 그것에 대해서 은채와 진지하게 얘기하고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인터넷으로 주문해주거나 은채 생일, 어린이날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꼭 약속을 지킵니다.


그러나 이런 은채의 바람이 외할아버지 귀에 들어가거나 외삼촌에게 접수 되면 바로 실천됩니다. 사랑하는 큰 딸이 낳은 예쁜 손녀가 갖고 싶은 걸 못 가져서 애가 달는 것을 외할아버지가 못 견뎌 하시기 때문이죠. 또 가장 친한 게임 파트너이자 고기 마니아 동료인 조카가 원하는 걸 바로 들어주는 걸 사는 재미 중 하나로 여기는 외삼촌이기 때문이죠.

은채도 알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꼼꼼히 따져봐서 사주지 않을 것이지만 외할아버지나 할머니, 삼촌이라면 덥석 사준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종종 외갓집이나 외삼촌 집에서 TV를 보다 광고가 나오면 혼잣말 하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마트를 함께 가면 장난감 코너나 학용품 코너에서 괜히 어슬렁거리기도 하죠. 우리 부부는 은채의 그런 속을 알지만 모른 척 해줍니다. 철없이 무턱대고 사달라고 졸라대는 녀석이 아니니 가끔은 무한정 사랑을 베풀어 주는 외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의 혜택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죠.


은빛 기관차를 보면서 맥주를 다 마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은채에게 부럽다고 했습니다. 아빠도 가끔 쓰자고 했죠.

은채는 “알았어.”라고 흔쾌히 허락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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