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36
성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남자들이 모여서 야한 얘기를 하면, 아주 지루한 학회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담담하다 못해 현학적이기까지 하다. 어차피 남에 얘기라고 생각해서 인지, 아니면 먼 동화 같은 얘기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날도 아주 중요한 일 얘기를 하다가 경험으로 주제가 바뀌었고, 언제나 그랬듯 성적인 맥락으로 이야기가 옮겨 붙었다.
"최작가는 처음 하는 여자가 좋아 잘하는 여자가 좋아?", 감독이 물었다. 회의실에 모여 있던 감독, CG팀장, 조감독 등이 생각에 빠졌다. 고민이라고 해야 하나? 난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내가 저번에 얘기한 것 같은데 경험 없는 신인을 선호하는 프로 스포츠는 없다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이어 말했다. "생각해 봐. 5초 남았어. 점수는 한 점 뒤지고 있어. 공격권은 우리가 갖고 있고. 한골만 넣으면 역전. 버저비터를 노리는 이때 그 공을 누구에게 주겠어? 신인? 어림도 없지. 노장? 그것도 아냐."
"에? 그럼 누구야?"
"농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 처음 하든, 오래 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그걸 애초에 잘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어. 예를 들면 김승현, 허재, 마이클 조던 같은."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잘하는지 못하는지?"
"그렇지. 중요한 질문이야. 그래서 프로 스포츠는 트라이 아웃도 하고 스카우터도 보내서 몇 년씩 그 선수를 지켜보는 거야. 근데 섹스를 그럴 수는 없지.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하고 싶은 이성들을 불러다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고 공개 테스트를 할 수 없잖아. 그 사람의 성생활을 몇 년 간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들 탄식이 흘렀다.
"결국 감독의 몫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조성민이 처음부터 국가대표 슈터였는지 알아? 박상오가 처음부터 슈터였는지 알아? 전창진 감독이 조성민하고 박상오를 처음 봤을 땐 선수도 아니었대. 그런데 선수 만들어 놓은 거야."
"그래서?"
"결국 경험이 있든 없든 좋은 파트너를 만드는 건 상대 파트너의 몫이 크다는 거야. 좋은 감독은 좋은 선수를 보는 눈도 있지만, 좋은 선수를 키우는 능력도 있는 거거든."
"아하."
"여자의 과거를 운운하거나 경험이 없어서 재미없다면서 투덜대는 남자들은 결국 무능력한 감독하고 같은 거야. 자신만만하고 능력 있고, 경험 많은 남자는 그런 거 가리지 않아. 능력 없는 감독들이 꼭 저 선수를 스카우트해 달라, 부상 선수가 너무 많다, 경험 부족으로 졌다, 같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요구를 하는 거야."
아틀레티고 마드리드의 별명은 ATM이다. 팀명의 줄임말이 아니라 스트라이커를 비싼 값에 늘 다른 팀에 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시즌이 우려된다는 뉴스가 줄을 잇지만 새로운 스트라이커를 발굴하거나 스카우트해 와서 또 한 시즌을 꾸려간다.
심지어 ATM에 있다가 리버풀, 첼시를 거쳐 이탈리아의 AC밀란까지 갔다가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은 토레스를 다시 불러와서 화려하게 부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틈바구니에서 3위에 버티고 있다. 2위 바르셀로나와는 승점 3점 차이, 1위 레알 마드리드하고는 4점 차이다. 한두 게임만 물고 물리면 바뀌는 순위다. 이게 바로 감독, 시메오네의 능력이다. (2015. 2. 14)
살다 보면 “00 잘하게 생겼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나도 이런 말을 세 분야(?)에 걸쳐 들어봤다. 십 대 시절부터는 주로 "운동 잘하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심지어 대학 입학해서는 운동 잘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기숙사 축구 대표로 뽑혔다. 대학원에 가서는 "술 잘 마시게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황 모 교수님이 북한산인가 관악산 등반 중에 내 얼굴을 보더니 하신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마흔쯤 돼서, 섹시하다는 말을 두어 번 들었다. 취향이 특이한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섹시하다는 말이 사실 별로 심오한 게 아니다. 결국엔 "섹스"잘하게 생겼다는 말이다.
자 이 말을 지금 직접 입 밖으로 내보자. "섹스 잘하게 생겼다.", 칭찬으로 들리나, 욕으로 들리나? 예를 들어 유부녀나 유부남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칭찬일 수 있다. 물론 아주 친한 사이여야 가능하겠지만. 어찌 됐든 섹스를 잘할 것 같다는 말은 결국엔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하나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이 말을 부연하면 "덕분에 남편(아내)이 행복하시겠어요."라는 말도 될 수도 있고.
그런데 이 말을 미혼 남녀한테 하는 건 칭찬일까 욕일까? 예를 들어 소개팅에 나온 여자가 처음 본 남자한테 "섹스 잘하게 생기셨어요."라고 하면 남자는 "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님 정색해야 할까? 반대로 남자가 여자한테 "섹스 잘하게 생기셨어요."라고 하면 여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친한 대학 후배나 회사 직원에게 "(업무 능력을 칭찬하듯이 아주 담담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너 섹스 잘하게 생겼다."나 "김대리 섹스 잘하게 생겼어."는 성희롱에 가깝거나 성희롱이다. 이건 희한하게 칭찬으로 안 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자. 친구나 선후배가 당신에게 "야, 너, 섹스 더럽게 못하게 생겼어."라고 하면 기분 좋을까? "야, 넌 섹스하고 안 어울려. 섹스에 젬병이지?"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을까? 스스로에 물어봐라.
우린 타인에게 섹슈얼하다는 말을 들으면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려한다. 그런데 약간 생각을 비틀어보자. "넌 진짜 성적 매력 없다."라는 말을 좀처럼 대놓고 얘기하질 않으니 "섹시하다"는 말이 과하게 들리는 게 아닐까? 자, 실습해 보자. 어느 쪽이 더 기분 나쁜가? "너 섹스 못하게 생겼어.", "야. 너랑 섹스하는 그림은 도저히 상상이 안 돼."라는 말과 "너 섹스 잘하게 생겼어.", "너랑 하는 섹스는 상상만 해도 죽인다야."라는 말을 해보자. 어떤가? 어느 쪽이 칭찬이고 어느 쪽이 욕처럼 들리는지...
이런 말의 더 큰 문제는 수명이 있다는 거다. 오십쯤, 아니 웬만한 기혼남녀는 서른다섯만 넘어가면 이런 말을 들으려면 배우자에게 명품백을 사주거나 보너스를 갑자기 200프로 집에 들고 가야, 들을 수 있다. 물론 그 말은 진실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성이 당신에게 "섹시해요."라는 말을 하면 어쩌면 정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그런 말 들을 기회 없는 남성들은 더욱더. 대놓고 "섹스 잘하게 생겼어요."라는 말을 못 하는 세상에서 섹시하다는 말은 당신의 섹슈얼함에 대한 최고의 극찬일 테니까. 그것도 시한부적인.
2015.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