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둘째주, 2학기
2학기가 되니 확실히 은채나 저나 긴장이 덜 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은채라 등교 시간 걱정도 없고 알림장을 보고 숙제며 과제 챙기는 일도 익숙해졌습니다. 은채는 이제 선생님한테 들은 칭찬을 종종 얘기해줍니다. 얼마 전에는 선생님이 은채는 예쁘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칭찬해주셨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은채는 다양한 문장이 써진 종이를 학교에서 가져왔습니다. 들여다봤더니 은채가 일전에 말한 받아쓰기 문장들입니다. 종이에는 1급부터 10급까지 급수별로 다양한 문장들이 써져 있었는데 이 문장들은 국어책의 각 단원에 나오는 문장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문장들을 소리 내어 몇 번을 읽으라고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나중에 받아쓰기를 위해서였죠. 초등학교 들어가서 하는 대망의 첫 번째 받아쓰기가 다가오고 있었죠. 은채는 나름 자신이 있는 모양인지 걱정도 안했습니다. 예고대로 선생님은 1급, 즉 1단원의 문장들로 받아쓰기 문제를 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은채가 집에 와서 불평 아닌 불평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채점은 하신 것 같은데 점수도 안 알려 주시고, 심지어 받아쓰기 공책도 돌려주지 않으신다고 말이죠.
선생님은 다 맞은 사람이 두세 명 있다는 말만 하셨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마도 아이들이 점수를 알았을 때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어쩌면 교만해질 수도 있다는 걸 경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단지 선생님은 은채를 포함한 세 명의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죠?”하고 물어보셨답니다. 그 중 세인이라는 친구는 독서광으로 워낙에 유명한 친구이고요. 방학 때 읽은 책을 기록한 기록장의 두께가 웬만한 책 같았다고 하더군요. 선생님은 점수는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잘한 아이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칭찬을 해주고 싶으셨나봅니다.
“엄마가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안 돼?”
은채는 퇴근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어이 딸, 그런 일로 전화하는 거 아니야.” 전 모녀를 동시에 말렸습니다.
“받아쓰기 한 다음에 선생님이 연락 오면 큰일이지, 연락 없으면 잘 한 거야.”
“연락 오면 왜?”
저와 아내는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이 문제 있을 때 선생님이 연락을 하신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은채가 점수를 하도 궁금해 하기에 문장이 써진 종이를 보면서 맞춰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시험 끝나고 정답 맞춰보던 게 생각나서 권했죠. 은채는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하나 틀렸나?” 은채가 갸우뚱 하기에 “잘 했어. 수고했고.”라고 짧게 답해줬습니다.
은채는 며칠 후 자신이 백점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셨어?”라고 물으니, “아니. 공책이 교실에 쌓여 있었는데 내 것만 꺼내서 확인했어.”
학교에 한두 명쯤은 꼭 있었던, 시험이 끝나면 교무실까지 따라 가서 점수를 확인하던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은채는 알림장에 있는 선생님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합니다. 세 번을 소리 내서 읽으라면 읽고, 수학 익힘 숙제를 하고 아빠에게 채점을 받으라고 하면 꼭 빨간 색연필로 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이런 단순한 반복이 누적되면 실력이 된다는 걸 은채는 아마 모르겠죠. 선생님은 아이들이 이런 사소하고 단순한 반복을 성실히 해내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쉬운 걸 매일 반복하면 어려운 걸 해낼 수 있는 기초 체력이 되겠죠.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학습 그 자체를 해내는 성실함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