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도 썼듯이, 월요일은 회개의 날이다. 지난 주말에도 마셨다. 맥주 좀 적당히 마시라고 늘 잔소리를 해대는 아내가, 언제나 그랬듯 공범이다. 아내는 최근 새로 한 편의점 모바일 앱을 깔고 행사 정보를 받아보는데 그중 맘에 드는 행사 상품을 종종 구매한다. 그런데 그 상품이 주로 와인과 맥주다. 신기한 오프너를 준다고 병맥주 열두 개를 사질 않나, 어느 나라의 특별한 홉을 사용한 한정판이라는 이유로 캔 맥주 여덟 캔을 사기도 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유럽의 한 유명 브랜드 맥주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여덟 캔이나 샀다. 이걸 토요일, 일요일 이틀에 걸쳐 마셨다. 뭐, 양으로 보면 많지는 않지만 월요일의 수영을 생각했으면 최소한 두세 캔을 남겼어야 했다. 인간의 욕심을 끝이 없고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 그만하자. 여하간 회개했다.
회개는 깊고 진했다. 1번과 2번 아저씨가 왔고 뉴 페이스 총각(나중에 들어보니 총각이 아니다. 결혼한 지 몇 년 됐고, 최근 아기를 낳아서 육아휴직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매거진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이 젊은 남자를 계속 “새로 나온 총각”, 또는 “뉴 페이스 총각”이라고 부를 생각이다. 뭐, 이게 무슨 수십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하소설도 아니어서 독자들이 이런 호칭 정도야 금방 정리하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아닌 것.... 이 또한 그만하자. 여하간 계속 그렇게 부를 것이다.)이 왔다. 그리고 나와 내 뒤의 귀여운 글래머 아줌마, 그리고 체력 좋은 아줌마까지.... 그러니까 이게 수영이 시작되고 몸 풀기 개인 혼영 두 랩이 끝나고 난 후의 멤버 구성이다. 안 그래도 힘든 월요일, 열 명도 안 나왔다니...
더 큰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뉴 페이스 총각의 수경이 부러진 것. 종종 있는 일인데 고무 밴드와의 연결 부위나 중앙의 코걸이 부분이 끊어지곤 한다. 총각은 전자의 경우였는데, 이 경우 강사에게 말만 잘하면 남아도는 수경 중 하나를 빌려 계속할 수도 있다. 과거 난 어느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수영장 직원에게 부탁해 구비되어 있던 수경 중 하나를 빌려 계속 수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뉴 페이스 총각은 잠시 강사와 얘기를 하나 싶더니 사라져 버렸다. 이봐, 난 어떡하라고... 결국 난 3번에 섰다.
무색무취의 공간
앞선 글에도 썼듯이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수영 또한 정직하다. 전날 많이 마셨거나 아침을 많이 먹으면 당연히 몸이 무겁다. 월요일의 수영장은 방탕한 주말의 죄를 묻고, 오전의 수영장은 아침의 과식을, 저녁의 수영장은 오후의 점심 식사와 이어진 간식의 책임을 묻는다. 무엇으로도 그 죄를 가릴 수 없고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 그저 힘들어하는 육체를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이 정직한 수영장엔 아무런 향기가 없다. 옷도 없고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도 없는 곳에 심지어 향기조차 없다는 것이다. 나는 냄새라곤 오직 희미한 소독약 냄새뿐이다. 남자 샤워장엔 밋밋한 비누 냄새가 있을 뿐이다. 여자 샤워장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그마저도 샤워장에서 끝난다. 샤워장에서 무슨 향이 나는 샴푸와 비누를 썼던지 간에 일단 수영장에 들어오면 그 향은 사라진다. 인공적으로도 소독된 물속에서 세상의 모든 향은 사라진다.
당신의 흔적, 당신의 과거
우리가 영화와 소설 <향수>를 통해 배웠다시피 향은 존재의 자취다. 자취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신체 부위는 발이 유일한다. 발자취. 그러나 탈옥수를 쫓는 영화에서 봤다시피, 사람을 쫓는 전문가는 이 발자취를 쫓지만 사람을 쫓는 개는 냄새의 자취를 쫓는다. 사람이 여간해선 없앨 수 있는 두 가지 흔적이 바로 이 발자취와 향의 자취다.
자취는 흔적이다. 지나온 궤적이자 살아온 흔적이며 그의 역사다. 그래서 그것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향수>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 이것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 개인이 고유한 주체로 이 땅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이 주체를 타자와 구별되게 하는 가? 우리가 살면서 추구하는 것들은 결국 이런 욕망들에 기인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내 고유의 자취가 될 만한 것들. 불행히도 우리가 추구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남도 추구하고 욕망하고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자취 만들기는 멈춰지지 않는다.
그 결과,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꿀 것이다. 내가 오기 전과 온 후, 또 내가 그 공간을 떠나고 난 이후, 그때마다 매번 그 공간의 공기가 달라지길 기대할 것이다. 나만의 존재감, 향기, 자취, 어쩌면 아우라, 이런 것들을, 고유한 나만의 것을 갖기 원할 것이다.
과거는 알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존재감, 그것을 만드는 향기와 자취가 무시되는 공간에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런 사람과 만날 때가 있다. 난 당신의 과거엔 관심이 없다. 당신이 어떤 향수를 뿌렸는지, 어떤 명품을 걸치고 왔는지, 어떤 자동차를 타고 왔는지, 더 나아가 당신이 어떤 대학을 나왔고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직업이 무엇이고 연봉은 얼마고 심지어 나이가 몇 살인지도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과 공간이 있다.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부르짖는 공간이 있다. 수영장도 그런 곳이다.
수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강사를 제외하고는 익명이고 무명이다. 달이 바뀌어도 출석을 부르지도 않는다. 아, 유일하게 출석을 부르거나 새로 나온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는 반은 기초반이다. 물론 고급반에서도 종종 그런 경우가 있는데 이때도 그저 새로 나온 사람만 콕 집어 이름을 물을 뿐이다.
회원들 간엔 이름을 묻기 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그 데면데면함을 한 번에 깨부수어 주는 명함을 건네는 의식 같은 것도 당연히 없다. 나이도, 고향도 묻지 않는다. 그렇다.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당신의 과거엔 관심이 없다. 수영장 밖의 당신도 궁금하지 않다. 수영을 배워 수영 동호인이 되는 곳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이름, 별명, 하나의 새로운 인생의 자취와 흔적을 만드는 곳.
새 출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이렇게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곳에서 우리는 무색무취, 무명의 존재가 된다. 과거가 없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삶이 싫은 사람은 새로운 세상에서 새 출발을 꿈꾸기도 한다. 그것은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다.
물론 과거에 발목이 잡힌 사람이라면 어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과거가 날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서 새출발을 시도할 것이다. 영화 <화차>에서 주인공이 꿈꿨던 것이다. 제로베이스에서 무명으로, 새 출발. 그렇게 처음부터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시작된다.
그러나 우린 종종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과거와 같은 궤도를 그리며 산다. 앞선 글에서 썼듯이 수영을 배우기 위해선 신체에 새겨진 육지의 경험을 잊어야 하듯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과거의 버릇과 경험을 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까 그 버릇과 경험을 그대로 반복하며 살면 어디에 살든, 몇번을 새로 인생을 시작하든 당신은 과거와 같은 궤적을 그리며 살게 된다.
수영을 빨리 배우기 위해선 육지의 버릇을 버리고 물의 규칙을 익혀야 하듯이 새로운 삶의 시작은 과거의 나와의 결별에서 시작된다. 그 결별이 어렵기에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도 익숙한 나를 보게 된다. 같은 걸로 상처받고, 같이 이유로 사랑에 실패하고, 같은 실수로 회사에서 문책을 당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나를 만난 사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추석 연휴의 첫날이다. 내겐 고향이나 본가라고 할 만한 곳이 없기에 아내나 나나 명절 당일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날은 쉰다. 아내는 추석 당일, 그 다음날 미국으로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동생에게 놀러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동생과 여기저기 다닐 계획이라고 한다. 처음 가는 곳도 아닌데 여전히 그렇게 놀러 갈 곳이 남은 모양이다.
추석 같은 명절엔 나의 흔적과 자취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과 만난다. 가족, 친척, 고향의 친구와 선후배들. 그들은 오늘의 나를 당연하거나 낯설거나, 둘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아는 과거와 이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면 당연하고 익숙하게, 반면 그 과거와 전혀 다른 맥락의 삶을 살고 있다면 낯설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데 성공한 것인지도.
처제는 미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직업을 갖고 살고 있다. 그 과거와의 결별은 고통스러웠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별이었다. 결단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변해야 했다. 내가 변해야 모두를 살릴 수 있었다.
연휴를 끼고 대략 일주일 정도 수영장이 쉰다. 넋 놓고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연휴를 보냈다가는 일주일 후에 정말 큰 회개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혹시나 체력이 떨어질까 싶어 오늘 오전에 밖에 나가 잠시 달리기를 하고 가져나간 밴드로 어깨와 팔 운동을, 그리고 벤치를 이용해 간단한 하체 운동을 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뭐, 그래도 회개는 피할 수 없겠지. 일주일 뒤이면 10월이다. 새로운 회원이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낯선 물을 찾아 들어올 것이다. 과거의 당신에 대해선 묻지 않겠다. 그저 멋진 수영 동호인이 되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