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이면 다시 수영을 한지 딱 1년이 된다. 딸이 태어난 후 수영을 그만둔 뒤로 대략 십여 년만에 다시 만난 수영장이었다. 물론 그동안 이런저런 운동을 했었다. 늘 혼자 근육 운동을 하다가 헬스장에서 운동하면 어떻게 몸이 변할지 궁금해서 한 1년 정도 열심히 헬스를 하기도 했었다. 동네 뒷산에 있는 체육공원에 가서 이런저런 기구를 사용해 운동도 했었고 당연히 이를 위해 등산도 꾸준히 했었다. 달리기도 가끔 했고 이지바와 탄력 밴드 등을 이용해 홈 트레이닝도 꾸준히 해 왔다. 이 십여 년 간 극적인 몸의 변화는 없었다. 몸무게가 75킬로그램까지 찐 적이 있었을 뿐 대체로 몸의 선과 사이즈는 그럭저럭 유지됐다. 어떤 운동을 한다고 해서 특정 부위가 극적으로 커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하체 운동엔 좀 신경을 써서 허벅지가 약간 굵어졌을 뿐이다.
다른 글에도 썼듯이 수영을 다시 하라고 권한 건 아내였다. 그 사이 애도 컸고 나도 나이가 드니 맥주 좀 적당히 마시고 건강을 챙기라는 뜻에서였다. 등록을 할 때 고민 됐던 건, 반의 선택이었다. 시간은 오전에 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작업은 오후에 하니까. 수준 선택이 그다음 문제였다. 중급반, 즉 영법을 교정하는 중인 반에 들어가서 하면 좀 심심할 것 같았다. 고급반의 수준이 어떤지 감이 안 왔다. 과거 저녁반을 할 때를 생각해 보면 그 고급반도 수준에 따라 A반, B반으로 나눴던 것 같아서 일단 고급반을 선택했다.
첫날 가서 강사와 잠시 대화를 했다. “A반은 다른 시간대 A반보다 좀 빡세고요. B반은 아무래도 연령대도 있고 해서 편하실 테고.”.. 일단 수영 체력을 키워야 할 것 같아서 B반에서 하겠다고 했다. 그 반에선 내가 제일 어린 사람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하다 보니, 운동 강도가 강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운동을 하면서 안 쓰던 근육들이 사용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체력 소모가 컸던 것이다. 처음엔 허리 사이즈가 줄었다. 전반적으로 슬림 해졌다. 수영을 시작할 때 69킬로그램이던 몸무게가 가을쯤에는 64킬로그램이 됐다. 이때쯤부터 옆 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같은 돈인데.. 왜?
난 의외로 단순한 편인데, 예를 들어 밖에서 사 먹는 물은 무지하게 아까워한다. 커피, 술, 진짜 물 다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가끔 고깃집에서 맥주를 마실 때는 두 병 이상은 안 마신다. 심지어 아내와 처남과 나눠 마시면서도 말이다. 이런 단순한 생각이 A반을 보면서도 들었다. 예를 들어 세트를 시키면 B반의 숫자가 적었다. 그러니까 A반에게 자유형 50미터 열 개를 시키면, B반은 많아야 여덟 개, 적으면 여섯 개를 시켰다. 그런데 A반이 먼저 끝났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운동양과 질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슬슬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같은 돈을 내는데 왜 운동을 적게 하지. 이때 마침 B반의 1번을 하던 어르신이 개인 사정으로 한 두 달 쉰다고 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가을에 반을 바꿨다. 처음엔 적응하는데 3개월 정도 걸리지 않을까 예상했다. 대충 그 정도 걸렸다. 지금은, 1번 주자를 기준으로 보면 대략 90퍼센트 정도의 체력이다.
적응한 신체
그러나 몸무게는 원상 복귀됐다. 몸은 힘든데 몸무게는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허리 사이즈는 그대로였다. 바지는 헐렁한데 몸무게는 정상으로 복귀. 이상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몸이 달라졌다. 내가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어깨는 넓어졌고 광배는 커졌다. 허리가 들어가서 더 보기 좋아 보였는지도.
봄이 지나면서 술을 좀 줄이면서 체력을 올렸다. A반에서, 일종의 내 역할도 찾았다. 내 앞의 에이스들과 내 뒤의 약간 느린 사람들 간의 가교랄까? 그런 역할을 했다. 강사의 지시를 못 들은 내 뒷사람들에게 그걸 알려주기도 하고, 좀 늦게 와서 뒤에서 쭈뼛쭈뼛하는 총각들을 불러서 내 앞으로 보냈다. 그 총각들이 내 앞에서 신나게 해야 내가 편하니까. 내 앞의 부산 남자들이 무뚝뚝하게 운동만 할 때, 가끔 뒤의 사람들과 힘들어 죽겠다는 하소연도 하고 힘내자는 응원도 보낸다. 그렇게 조화로운 A반이 되는데 나름 일조를 했다.
그 사이 선수출신의 강사로 바뀌면서 자유형과 접영을 교정받았고, 그 덕분에 그야말로 접영과 자유형의 신세계를 맛봤다. '아, 이렇게 하면 정말 힘이 하나도 안 드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몸의 다른 부위가 운동이 됐고 아주 자잘한 근육들까지 운동이 되면서 몸은 점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모양새가 됐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제 막 수영을 시작하는 청년이 ‘아, 나도 수영을 열심히 해서 고급 A반이 되면 저렇게 되겠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이상적인 몸이 됐다. (이거, 이거, 써 놓고 나니까 아주 뻔뻔한 자기 자랑이 되어 버렸지만, 이 나이에 그냥 뻔뻔하기로 했다.)
세월이 만드는 모양새
다른 글에서 쓴 것 같은데, 직업이 모양새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예전 대학 강사 시절, 대전이나 부산에서 지하철을 타거나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대학 강사나 교수는 티가 났다. 심지어 전공이나 학과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랐다. 그뿐인가. 아내 덕에 사회복지사의 모양새, 과거 교회를 오래 다닌 탓에 목사와 장로 등의 모양새도 알아차릴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양새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업에 들어가자마자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 분야, 직장, 업이 처음엔 내 몸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나 같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이게 내 천직이다.’하고 예감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몇 개월 지나면 이직을 생각하고, 일 년 뒤에는 다른 직장이나 직업, 자격증을 알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실천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운명처럼 나에게 맞는 직업과 직장을 만나면, 그리고 그런 연인과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지만 그런 확률은, 알다시피 적다. 결국 알아가고 적응하고 맞추고 맞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영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직장도, 직업도, 연인도, 부부도 다 그렇다. 아내와 연애의 세월까지 헤아리면, 그야말로 사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아내는 사십 대 중반, 난 오십대로 접어들었다. 이제야 겨우 쿵짝이 맞는 느낌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2003년에 시작한 일이 올해 딱 20년이 됐다. 이제 좀 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그 세월 속에 “오, 어쩐지 작가 같았어요.”, “카피라이터요? 어쩐지.”라는 말을 종종 들을 만큼 직업에 맞는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남들이 보기엔 노련하고 여간한 일로 놀라지도 긴장하지도 않는 베테랑의 분위기를 풍기게 됐다. 물론 내 속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무슨 일, 어떤 운동을 하든지 당신에게 시간을 줘라. 그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니 최대한 넉넉하게 줘라. 몇 개월 지났지만 여전히 서툰 자신을 책망하지 말고 더 시간을 줘라. 어느 시점, 어느 순간, 당신은 그 직업, 그 운동에 찰떡 같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오늘, 7월의 첫날인데 고급 A반의 출석률은 저조했다. 내가 강사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 반 등록이 미달인 거예요?”, 강사가 출석부를 보더니, “아니에요, 완전 풀이예요. 저녁 마지막 반 여덟 시 반까지 모든 반이 다 꽉 찼어요.”, 아니 그런데 첫날에 왜 다들 안 오는 거야?
몸풀기를 시작했을 땐 네 명이었다. 반면 B반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결국 강사가 B반에 새로 올라온 비교적 젊은 남녀 두 명을 우리 반으로 보냈다. 그러면서 강사가 그랬다. “따라 잡히면 옆으로 비켜서서 쉬시면 돼요. 너무 부담 가지 마시고 함께 운동한다 생각하세요.” 그 후 메인 세트를 시작하기 전, 1번 주자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뒤에 분들을 위해서 조금 템포를 조절해 주세요.”, 1번 주자 아저씨는 살짝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다들 잘 따라와 줬다. 앞선 글에서 썼던, 지난봄에 새로 합류한 아가씨는 의욕적으로 내 뒤에 섰지만 두 세트를 하고 다시 뒤로 갔다. “시간이 필요하다니까 아가씨.”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언젠간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