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셋째주 - 창의력의 사소한 출발
주말 알림장에 월요일에 휴지심을 챙겨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빠 있어?”
“두 세 개 정도는.”
집에는 항상 각 티슈 박스와 휴지심, 그리고 그 심보다 두 배는 더 큰 페이퍼 타월 심이 있습니다. 재활용으로 버리기 전, 한두 주 정도는 혹시나 해서 따로 챙겨 놓습니다. 애가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이런 저런 사소한 재활용 자원들이 요긴하게 쓰인 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은채가 여섯 살 때였나, 어린이집은 김해의 한 시골 마을로 체험 학습을 갔습니다. 마침 민물고기들이 사는 작은 하천도 있어서 그 물고기를 잡을 만한 작은 망 같은 걸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써 놓으신 보기에는 채소를 씻거나 소면을 삶고 헹굴 때 쓰는 채반 같은 것, 또는 다시를 낸 멸치를 건질 때 쓰는 그물망 국자 등이 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마 저런 주방에서 쓰는 걸 진짜 가져오라는 건 아니겠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걸 가져오라는 거겠지 싶어서 전 대충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는 잠자리채 정도는 집에서 만들었고 족대 정도도 어지간하면 만들어서 썼으니까요.
마침 못 쓰게 된 세탁소 옷걸이가 몇 개 있었고, 일전에 쓰고 안 버린 양파 망이 있었습니다. 그 두 개를 이용해서 국자만한 소형 잠자리채 비스무리 한 걸 만들어줬습니다. 은채 어린이집 가방에 꽂아서 갈만한 사이즈로 말이죠. 은채는 좋아라하며 점시 도시락, 간식통과 함께 당당하게 꽂고 어린이집으로 향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은 정말로 보기에 든 그런 주방 용품 같은 걸 들고 왔다더군요. 그러니까 채소 씻을 때 쓰는 그런 채반 같은 걸 말이죠. 심지어 그런 도구를 사서 온 친구들도 여럿이었고요.
물고기를 잡는 시간, 은채가 그 아담한 잠자리채를 꺼냈을 때 선생님들부터 감탄하셨다고 합니다. 산 줄 알았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 왔냐면서 은채한테 물었고, 친구들도 한번만 쓰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고 은채가 자랑스럽게 말해줬습니다. 덕분에 그 소형 잠자리채는 아직도 집에 있습니다. 옛날 사람인 아빠한테는 그런 건 만들어 쓰는 게 당연한 건데 요즘 아빠들한테는 그런 건 사서 쓰는 게 당연했던 것입니다.
요즘도 은채는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뭔가 만들고 붙이는 걸 좋아합니다. 더 어렸을 때는 커다란 라면 박스에 작은 박스며 휴지 심, 엄마 작은 화장품 케이스 등을 잔뜩 모아 담아 줘서 알아서 놀게 해줬죠. 그래서 한창 열심히 보던 <파자마 삼총사>의 코스튬도 박스 같은 걸로 아빠와 함께 만들어서 놀았습니다.
요즘엔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3D펜 공예를 배우고 있습니다. 해운대의 한 축제 체험 부스에서 한번 해보고 나서 그렇게 배우고 싶어 하더니 결국 학교 가서 하게 됐죠. 매주 만들어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합니다. 나름 공들여서 만든 부분은 아주 진지하게 설명합니다. 마치 도예가처럼 말이죠.
예전엔 장난감이 흔치 않아서 만들어서 놀았는데 요즘엔 장난감이 너무 흔해서 오히려 만드는 경험이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풀과 가위, 각종 첨단 도구를 사용해서 자신이 생각한 걸 만드는 행위는 언제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있는 일이고, 평면으로 된 스케치를 입체감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보는 건 다차원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데 유익한 활동입니다. 그래서 전 늘 뭘 만들려고 딸이 궁리를 하면 어떻게 만들지 설계도나 스케치를 먼저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소재로 만들어지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죠. 어리면 어린 데로, 미숙하면 미숙한데로 나름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자신과 타인에게 납득시킬만한 시각적 상징으로 알려주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만들었음을 누구나 인정할만한 입체적 물건을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창의적 활동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