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 주 - 독감에 걸린 딸 곁을 지키며 보낸 성탄절의 밤들
은채가 아팠습니다.
일요일 밤부터 낌새가 이상하더니 결국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열은 아니어서 해열제를 먹이고 일단 잤습니다. 새벽에 고열로 변했고, 결국 월요일엔 가까운 아동 병원에 갔습니다.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없던 병도 걸려오지 않을까 걱정 될 정도였죠. 성수기의 제주 공항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진료는 봐야 해서 제법 오래 기다려서 진료를 봤습니다.
목이 부어서 그런 것 같다, 독감 검사를 받아 보겠냐고 의사가 묻더군요. 전 괜찮다고 했습니다. 은채는 고질적으로 편도가 약해서 영아 때부터 목이 부으면 열에 시달렸기 때문이죠. 의사는 오늘 밤에도 고열이 나면 꼭 입원해야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은채는 그날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물론 밤에는 다시 고열에 시달렸지만 화요일엔 씩씩하게 학교에 갔습니다. 전 사무실에 출근했죠.
엄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 보건실에서 전화가 와서 엄마가 은채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했더니 A형 독감이라고 판명이 났다고 말이죠. 전 울산에서 좀 일찍 나와서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평소에는 넉넉잡고 50분도 안 걸리는 데 이날은 무려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왜 부산-울산 고속도로가 막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기사님은 나란히 멈춰 선 동료 운전자에게 푸념하시더군요. 명절 때보다 더 막힌다고요.
은채가 입원한 병원이자 엄마의 직장이 있는 해운대 근처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었습니다. 평소 고속도로라면 2~3분 정도 걸리는, 송정에서 해운대 장산으로 넘어가는 데만 20분이 넘게 걸렸죠. 그렇게 장산역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엄마가 부탁한 준비물을 챙겨서 병원에 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사랑하는 사람과 밤새 본적이 없는데 드디어 그런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 엄마는 쉬러 집에 들어가고 아빠는 은채가 잠드는 침상 옆, 보호자 침상에 앉아 폴 오스터의 <오기렌의 크리스마스>를 읽었습니다. 폴 오스터가 자신의 소설인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를 직접 각색한 영화 <스모크>의 시나리오도 함께 실려 있는 소설집이죠. 크리스마스 이브에 딸의 병상을 지키며 책을 읽어야 한다면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 불쑥 생각이 난 책입니다. 인문학 책이 책꽂이에 늘어나면서 공간 확보를 위해 소설을 내다 파는 구조조정 속에서도 용케도 폴 오스터의 소설들은 살아남았죠. 그날, 은채의 병상 옆, 딱딱한 보호자 침대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성탄절, 쉬는 엄마가 간호한 낮에도 은채는 열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결국 이날도 집에 못가고 병원에서 보내야 했죠. 밤에는 역시 아빠가 갔습니다. 은채는 아빠를 보고 억지로 웃어보였지만 핼쑥한 건 숨겨지지 않았습니다. 병원 밥이 맛이 없다며 엄마 직장을 디스 하더니 결국 저녁엔 하루 종일 먹은 걸 다 토해냈습니다. 경험상 은채가 이렇게 대차게 토하고 나면 열도 내리고 병이 나았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목요일 아침, 담당의가 회진을 왔을 때 열은 38도를 웃돌았습니다. 하루 더 지켜보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집순이 은채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죠. 목요일 밤도 아빠와 함께 보냈습니다. 바타유를 다룬 책을 가져가서 재밌게 읽고 있었더니 무슨 책이냐며, 아빠가 그런 표정으로 책을 읽으면 진짜 재미있는 책인 게 분명하니까 자기도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 바타유를 설명할 재간도 없고, 은채가 그걸 읽을 수도 없으니 네 책은 어디 갔냐고 물었습니다. 엄마가 병원 도서관에서 몇 권 갔다 줬는데 다시 가져간 모양입니다. 은채는 엄마가 쓰던 옛날 스마트 폰과 패드로 번갈아 게임을 하다 불쑥 저보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밖에는 모처럼 추운 겨울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고 있었고, 건너편 주차 빌딩 옥상에 꾸며진 풋살 경기장에선 청춘들이 유령처럼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소설을 쓰겠다고 예전에 간추려 놓은 동화 같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 줬습니다. 어느 날 꿨던 꿈이 워낙 생생해서 메모해 놓은 것이었죠. 그 이야기에 이런저런 살을 붙여서 길게 얘기해줬습니다. 그러곤 다시 은채는 게임을 하고 전 책을 봤죠. 덜렁 은채만 혼자 있는 5인실엔 바람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은채는 다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럼, 무서운 이야기도 괜찮아?”
“응. 제발~”
결국 쓰다만 무서운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해줬습니다. 악어가 주인공인 소설이었죠. 은채는 신기하고 재미있게 들어줬습니다. 이야기에서 누가 제일 책임이 있는 것 같은지 묻는 아빠의 질문에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해줬습니다. 그렇게 삼일 째 밤을 안정되게 보내고 금요일 오전에 퇴원을 했습니다.
단 한 번도 크리스마스 밤을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보낸 적이 없습니다. 십 대에서 이십 대 후반까지는 제법 열심히 교회를 다녀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늘 교회에 있었고, 평택에 살 때는 새벽송도 몇 번 돌았습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고, 이때 부를 칸타타 연습을 한두 달하곤 했죠. 그래서 연말연시는 늘 교회에서 또래 성도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부산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진 지금의 아내인 여자 친구와 저녁을 먹는 게 다였고, 결혼해서도 특별히 낭만적인 밤을 계획해 본적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묘하게 은채랑 보낸 크리스마스 전후의 3일이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불편한 잠자리를 감수하며 병상을 지키는 것만큼 크리스마스다운 건 없으니까요.
자식이어서 그랬을까요? 은채의 병상을 향해 지하철로 가는 밤의 여정이, 장산역에 내려 병원까지 걸어가는 길이 가벼웠습니다. 힘들어 하는 딸을 보면 속상했고, 좋아진 딸을 보면 저도 밝아졌습니다. 아마 그 몇 날 밤 소아 병동에서 밤을 뒤척인 모든 부모들이 같은 심정이었겠죠. 말을 못하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먼 병실에서 들려 올 때마다 저 부모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무던하게 견뎌내고 있는 딸이 고맙기도 했고요.
은채는 태어난 직후 신생아 치료실에 잠시 있었습니다. 뭐 중병은 아니고 두어 주 일찍 나왔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치의께서 인큐베이터에 하루 정도 잠시 넣어 두신 것이죠. 세상에 나온 지 이틀째, 아이를 보는 시간에 들여다보니 은채는 눈에 거즈를 붙이고 파란색 빛을 쬐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담당의에게 물어보니 조산한 아이들은 약한 황달기가 다 있어서 이렇게 잠시 광선 치료를 한다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이셨죠.
그걸 보고 온 아내는 병실에서 눈물을 삼켰고 저는 아무 일 아닌 척 했습니다. 그날 밤, 아내가 저녁을 먹은 뒤, 저 혼자 장산역까지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걸어가는 동안 파란 빛을 쬐고 있는 인큐베이터 속의 은채-그때는 태명이 건강하게 태어나라고 강이었습니다.-가 생각났습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버렸고 오 분도 안 되는 거리를 걷는 내내 거의 펑펑 울다시피 했습니다. 병실에 있는 아내에게 가기 전, 로비 층 화장실에서 아주 오랫동안 수습을 해야만 했죠.
신생아 수준을 갓 벗어났던 언젠가는 염증수치가 좀 높게 나와서 병원에서 은채 인생 최초로 링거를 맞아야 했죠. 엄마는 차마 간호사가 바늘 꽂는 걸 못 돕겠다고 해서, 엄마는 병실에 남고 아빠가 은채를 안고 주사실로 가서 간호사가 은채의 혈관을 찾고 바늘을 꽂는 동안 은채를 꼭 붙잡고 있었죠. 물론 은채는 그 큰 목소리로 소아 병동이 떠나가라 울었고요. 그날 은채한테 가장 많이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했을 겁니다.
은채는 퇴원 후 방학식을 하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짐을 사물함에서 꺼내 들고 나왔습니다. 방학을 앞둔 1학년의 마지막 주를 그렇게 병원에서 보냈죠. 은채 말로는 유찬이도 독감 때문에 학교에 안 왔다고 합니다. 다들 조심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옮겨 오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은채는 점심으로 좋아하는 튀김우동 라면을 먹고, 신나게 만화를 보고, 지금은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묵묵히 마스크를 쓰고 말이죠. 오늘밤엔 모처럼 집에서 푹 자고, 내일은 더 건강한 은채로 돌아와 주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