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셋째주 - 겨울방학 최대고민, 삼시세끼
공감할겁니다. 학교급식이 얼마나 고마운 제도인지 말이죠.
1월 한 달 동안 최소한 하루 두 끼 이상은 아빠가 해줘야 합니다. 아침엔 커피와 빵만 먹거나, 잘 해야 누룽지나 씨리얼을 먹는 아빠와는 달리 은채는 그야말로 가정식이든 서양식이든 한상 차림도 마다하지 않으니까요. 학교 다닐 때는 국과 달걀 프라이는 기본이었고요.
이건 엄마의 철학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엄마의 엄마의 철학, 그러니까 은채의 외할머니의 철학이자 신념이시죠. 외할머니는 삼남매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점심 도시락 반찬은 늘 김치 볶음을 싸주셨지만 단 한 번도 도시락을 안 싸주신 적은 없으셨고 말이죠. 아내는 저와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잘 챙겨 먹고 출근을 했죠. 아침 여덟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딸에게 장모님은 매일 아침 식사를 십년 이상 챙겨주신 거죠. 은채가 학교에 가면서 아내가 육아 휴직 3개월을 더 한 건 바로 이 아침 먹는 버릇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린이집 다닐 때도 아침은 꼭 먹고 갔지만 등교 시간이 빨라진 초등학생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밥을 꼭 먹고 가야 한다는 루틴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려진 커피로 대충 정신을 깨우지 않으면 빵 한조각도 넘기지 않는 아빠가 보면 정말 신기한 풍경입니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잔 마시고 거실 쇼파 앞에 앉아 있습니다. 아침 밥상을 기다리는 것이죠. 그럼 전 엄마를 도와 아침을 차립니다. 반찬을 담고 달걀 프라이도 하고 밥도 푸죠. 실무자 회의가 있어서 엄마 출근 시간이 이른 수요일에는 아빠가 모든 걸 할 때가 있습니다. 간단한 달걀국도 끓여주죠.
방학에는 은채도 좀 느슨하게 아침을 먹습니다. 씨리얼이나 빵을 먹기도 하고 아빠랑 같이 누룽지를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점심은 양보할 수 없는 한 끼죠. 물론 가끔 점심때도 라면이나 만둣국을 끓여주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가정식 백반을 먹입니다. 오후엔 미술 학원에 가서 나름 머리를 써야 하니까요.
맨 날 비슷한 반찬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던 차에 맥주 안주로 사온 비엔나 소세지가 생각났습니다. 김치 볶음을 해주기로 했죠. 마침 엄마가 감전동 외갓집에서 얻어온 이웃집 김장 김치가 있어서 신 김치도 넉넉했습니다. 백종원씨가 가르쳐 준 데로 먼저 파와 마늘 기름을 냈습니다. 그리고 소시지를 먼저 볶고 김치는 맨 나중에 넣었습니다. 단 맛도 내고 윤기도 낼 겸 올리고당을 조금 넣었습니다. 아니 조금 많이 넣었나? 김치 볶음은 단짠이 조화로웠습니다. 물론 제 입맛엔 단맛이 좀 많은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지만 말입니다.
김치 볶음엔 아릿한 아픔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저 때만 해도 초등학교도 오전 오후반이 흔했고, 한반에 60명도 흔했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도시락도 싸들고 다녀야 했죠. 저희 집은 도시락을 싸줄 형편이 못 됐습니다. 싸줘도 반찬은 빈약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다행인건 저희 땐 학교에 왕따 같은 건 없어서 끼리끼리 모여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때마다 돼지고기, 스팸, 햄을 넣은 김치 볶음을 반찬으로 싸 온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죠. 달걀 프라이를 밥 위에 얹어온 친구와 함께 말이죠. 중학교까지 듬성듬성 도시락을 싸 갔고, 고등학교는 사정상 못간 저에게 김치 볶음은 상당히 고급 반찬으로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슨 한풀이라도 하는 거 마냥 소시지를 잔뜩 넣어서 김치 볶음을 만들었습니다. 맛이 없을 라야 없을 수가 없었겠죠.
은채는 김치 볶음만으로도 한 그릇 뚝딱 비웠습니다. 그렇게 몇 번 김치 볶음을 해줬습니다. 은채는 아빠의 신 메뉴라며 정말 좋아하더군요. 남는 김치 볶음은 저녁에 맥주 안주로도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매번 새로운 반찬을 해주기도 애매해서 홈쇼핑에서 파는 전 세트도 주문했습니다. 녹두전도 먹고, 김치전도 먹고, 동그랑땡이며 산적, 깻잎전도 먹었죠. 은채는 김치전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은채가 크면서 다양한 요리에 도전했습니다. 아내는 에어 프라이어도 사 안겨서 메뉴의 가능성을 더 열어줬죠. 생닭 요리도 처음 해 봤습니다. 같이 일하는 감독이 레시피를 알려줬죠. 닭 한 마리는 엄두가 안 나서 닭다리와 닭 봉을 주로 해줬습니다. 아내가 미국과 캐나다 여행 때 사온 양념 가루를 골고루 묻힌 후 잠시 재놨다가 에어 프라이어로 익혀주면 은채는 정말 열심히 잘 먹습니다. 물론 아빠의 맥주 안주로도 좋으니 둘 다 윈윈하는 셈이죠. 그 밖에도 은채 덕분에 달걀 프라이와 달걀말이, 달걀찜 솜씨도 늘었고 김치 볶음밥도 세련되어 졌습니다. 특히 은채는 아빠가 해주는 꼬시래기 무침을 제일 좋아하죠.
대 여섯 살 때까지, 은채의 소울 푸드는 전복 미역국이었습니다. 감기 걸리면 감전동 외할머니가 끓여주시는 전복 미역국을 꼭 먹고 싶다고 했죠. 요즘엔 할머니의 김치찌개와 두부조림, 양념 명란에 푹 빠져 있습니다. 방학 때마다 월요일 밤은 감전동에서 자고 화요일에는 삼시 세끼를 할머니 집에 해결하다 보니 할머니 음식에 맛들인 것이죠. 특히 할머니만의 독특한 두부조림 - 두부를 미리 부치지 않는 - 과 명란젓을 알주머니에서 다 긁어내어 양념한 양념 명란은 외할머니의, 그야말로 시그니쳐 메뉴로 아빠의 술안주로도 최고입니다.
이런 은채에게 외식할 때 뭘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늘 스테이크, 연어, 회. 치킨, 그리고 수육 백반과 순대 국밥이 이어집니다. 양식, 일식, 한식이 총 망라되지만 자세히 보면 다 부산에서 먹어 온 음식들입니다. 특히 회와 국밥은 부산 사람 은채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죠. 여기에 여름마다 먹는 밀면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부산을 떠나 살면 늘 생각나는 음식의 리스트가 완성되죠. 미국에 사는 은채 이모가 한국에 나오면 꼭 먹는 음식들이기도 하고요.
밀면을 단 둘이 처음 먹으러 갔을 때 은채는 겨우 다섯 살 정도였습니다. 전 일부러 비빔을 시키고 은채는 좋아하는 물을 시켜줬습니다. 비빔을 얼른 먹고 은채가 남긴 물 밀면으로 입가심을 할 생각이었죠. 이런 아빠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은채는 면을 다 먹고 국물을 그릇째 마셨죠. 은채는 최소한 면 요리만큼은 어른만큼 먹습니다. 특히 짜장면과 밀면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죠.
이렇게 부산 소녀로 커가는 은채를 보다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라 앉혔던 뭔가가 무심히 올라 올 때가 있습니다. 아빠에겐 소울 푸드가 없습니다. 마음이 허할 때 생각나는 음식, 고향이 그리울 때 먹고 싶은 음식, 고향에 가면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파주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다시 의정부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평택으로 이사해서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전에서 대학을,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닌 후 은채 엄마의 터전인 부산으로 혼자 내려왔죠. 이런 떠도는 삶에서 당연히 불알친구를 만들 수 없었고, 집안 사정으로 인해서 친척들과도 소원해져서 사촌과의 추억은 물론이고, 두 할머니와의 애틋한 기억도 거의 없습니다. 얼굴만 기억될 뿐이죠.
미군 부대 지역에서 유년기와 20대를 보낸 아빠가 구지 기억에 남는 음식을 찾는다면 얇은 나무 도시락에 담겨져 팔던 바비큐 치킨과 미군 부대에서 어머니가 사 오시던 커다란 피자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특별히 그립지도 않고, 다시 먹는다고 해서 떠오를 동네나 사람도 없습니다.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은 있지만 생각만 해도 고향이 그리워지고 마음이 따듯해져서 향수병에 걸리게 하는 음식은 없습니다. 그리운 풍경과 사람이 없으면 소울 푸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은채는 서울이나, 이모처럼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다 부산에 오면, 가장 먼저 쌍둥이 국밥집에서 돼지 국밥을 먹고 남천동의 연합 횟집에서 회를 먹을 것입니다. 부경대학교 후문의 초원복국에서 지리를 먹고 막힌 속을 내릴 테고요. 무엇보다 외할머니 집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할머니의 음식을 먹으며 고향의 위로, 가족의 위로를 받고, 그 위로가 지펴준 에너지를 잔뜩 충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