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저녁이나 일요일 오전에 설거지를 할 때, 종종 시티팝을 듣곤 한다. 처음엔 일본의 퓨전 재즈를 들었는데 알고리즘의 다리가 거기까지 이어줬다. 들을 때마다 ‘햐~ 참 세월 좋았긴 좋았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제법 리듬감이 있는데도 느긋함이 느껴진다. 그 느긋함을 받쳐주는 건 완벽한 세션, 즉 반주다. 가끔, ‘야, 이렇게 완벽한 음악에 노래가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게 또 시티팝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일본 문화를 접한 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90년대 들어서야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가 개방 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재미있는 건, 이 당시에는 일본 음악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국 흑인 음악과 얼터너티브 록에 빠져 있었다. 그러니까 소위 일본 음악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엔 그 음악을 들을 여건이 안 됐고, 그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땐 그 음악에 관심 없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이렇게 일본의 80년대 음악을 들으면, 뭔가 아련한 느낌 속에서, 좋았던 시절이 생각난다. 마냥 좋았던 시절, 구김살 없고, 햇살이 직선으로 얼굴에 꽂히던 여름날의 기억, 포카리스웨트 광고처럼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를 걸 알기에 두려움 없이 물에 젖던 여름방학의 기억들, 세련되게 하고 싶었지만 마냥 서툴기만 했던 첫사랑의 기억들, 개강 첫날, 겨울의 냉기가 아직은 남아 있는 텅 빈 강의실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들, 5월에 맞았던 학교의 축제들, 과와 동아리들이 운동장에 천막으로차린 주점들을 순회하며 마음껏 취하던 순간, 그때 내 취한 몸을 받쳐주던 친구...
대중문화의 힘
어쩌면, 대학에 들어가서 교재 삼아 일본 광고를 많이 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천 년 대 초반,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했을 때도 일본 광고들, 특히 과거의 광고들을 많이 봤다. 돌이켜보면 80년대에서 90년대 중후반은 일본 문화의 전성기였다. 우리가 아는 퓨전 재즈의 슈퍼 밴드들이 저 시기에 등장했으며, 한 장 한 장 장인의 솜씨로 그려내어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시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작들이 세상에 나왔다. 전설의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등장한 것이 80년대 말이었고, <페트레이버> 시리즈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공각기동대>가 등장한 건 90년대 중반이었다.
따져보면 일본의 80년대의 성취는 경이롭다. 알다시피 일본은 패전국에서 산업 국가로 성장하는 5,60년대를 지나다 그 끝 무렵 68 혁명의 광풍 속에서 적군파와 같은 극렬 좌파를 겪기도 했다. 그 이후, 60년대의 대학생들은, 하루키가 묘사했듯, 70년대 일본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기꺼이 80년대 맞이할 장밋빛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이 시기, 영화 <종이달>에서 그 잔재를 확인할 수 있듯이, 도쿄 외곽의 작은 도시들마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고 도쿄의 지하철과 JR은 그 노선이 더 많아졌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 다양한 소비자 욕구-장거리 출퇴근, 주말의 근교 나들이, 연인과의 멋진 드라이브-를 발판삼아 양적 질적으로 성장한 것도, 또 그 성장을 도약대 삼아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도 이 시기였다. JDM이라 통칭되는 일본의 내수형 스포츠카의 성장도 이때 이뤄졌다. 덕분에 우리는 <이니셜 D>와 같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었던 것이고 성룡이 주연한 <썬더볼트>에 등장하는 미쓰비시 랜서 레볼루션의 활약과, 그 이후 한참의 세월을 건너뛰어 <분노의 질주 1>에서 그 멋진 일본의 스포츠카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티팝 위에 휘핑크림
일본의 시티팝은 시대의 현실과 환상이 공존한다. 사운드와 보컬엔 거품 경제의 환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애써서 고음을 지르지도 않는다. 엄청난 기교도 없다. 기계적으로 완벽한 사운드 위에 적당한 흥과 스토리만 얹으면 된다. 최근에 내가 다시 듣게 된 시티팝은 그렇게 들렸다. 뭘, 어떻게 해도 성공하고 잘 나가던 그 시절 일본이라는 나라와 사회의 분위기가 그랬을 것이다. 밤 열한 시까지 백화점이 문을 열던 시절 아닌가.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가사나 뮤직비디오는 조금 어긋난다. 세련된 도시 직장인의 삶을 담고 보여준다. 쉽게 시작하는 사랑과 가볍고 빠른 사랑의 진행, 그만큼 쉬운 이별, 세련된 곡선의 스포츠카, 여름날의 피서와 겨울날의 스키장, 패스트푸드와 코카콜라, 그리고 신주쿠와 아카사카의 밤, 잠들기 힘든 여름밤의 드라이브.... 1979년, 하루키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80년대 나온 그의 소설 <양을 쫓는 모험>과 <노르웨이의 숲>엔 이러한 일본 사회와 젊은이들의 정서가 담겨 있다. 거품 위의 무지개처럼 빛났던 청춘들의 찰나들이.
실제로 일본 사회는 최근까지도 보수적이었다. 뭐,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뭔가 문란하고 엉망인 듯 한 현상이 보이는 요즘이지만 그건 일본 사회를 억눌러온 뭔가의 틈 사이로 뜨거운 김처럼 터져 나오는 현상에 불과하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에도 이렇다 할 대규모 시위나 극성스러운 반정부 활동은 없었던 나라 아닌가? 패전 이래 정권이 바뀌건 딱 한 번, 그마저도 이천 년 대 들어서였을 정도였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그 당시에도 노래만큼 여성들이, 청춘들이 자유로웠는지는 의문이다. 80년대 코카콜라 광고처럼 마냥 긍정과 웃음만 넘쳐났는지도 의문이다. 저 노래의 가사처럼 여자가 남자를 보내고, 그러면서 위로했었는지는 의문이다.
대중문화, 그 단맛
대중문화는 그 사회의 표면이다. 달디달고 쓰디쓰며 짜디 짠 표면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는 분명 이 시대를 반영하지만, 대중문화로 한 사회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대중문화는 쓴 커피 위에 얹어진 휘핑크림 같은 것이니까. 이런 대중문화는 사실과 현실을 잊게 한다. 80년대 일본의 코카콜라 광고와 이 일본 광고를 그대로 흉내 낸, 심혜진 씨가 나온 우리나라의 그 당시 코카콜라 광고도 그런 역할을 했다. 탄산음료로 만날 수 있는 청량감 있는 새로운 세상, 그 세상을 향한 티켓의 종합선물 세트가 그 광고들에 담겨 있었다.
다른 대중문화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보수적인 80년대에 우리나라엔 에로영화가 유행했고 일본에서도 7,80년대 로망 포르노가 침체해 가던 일본 영화계를 살렸다. 반면 일본에선 <야쿠자의 아내들> 같은 강한 여성상이 등장했는데,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강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돌아이 시리즈>가 등장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시 말하지만 쓴 커피 위에 얹어진 휘핑크림 같은 역할을 하며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탄산음료 같은 역할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당시의 시티팝이 지금도 회자되며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날들의 OST
시티팝처럼 좋은 날들의 OST가 있다. 좋은 날들의 냄새와 소리, 촉감도 있다. 사실 냉정히 돌이켜보면 지겨운 학교를 다녔고 억지로 직장을 다녔으며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왔던 시간들이지만 그 시간들의 어느 순간을 “좋은 날”로 돌아보게 하는 촉매제들이 있는 것이다.
이 노래도 그런 노래 중 하나다. 사실 다른 시를 준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어느 방송에서 이 노래가 나와 생전 안 보던 채널에서 멈췄다. 들어봤던가? 갸우뚱하면서 듣다 보니 결국 끝까지 다 듣게 됐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해서, 몇 년에 한 번씩 노래방에 가게 되면 꼭 두세 곡 부르는 가수, 조장혁이 리메이크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 노래가 기억에 남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난 무명의 일본 여자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채널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다 들었다.
사실 노래는 별로였다. 함께 듣고 있던 아내가 “노래방 가면 저 정도 노래 부르는 사람은 흔하지 않나?” 할 정도였다. 그렇다. 고음이 있는 노래도 아니고 목소리가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열창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끌렸다. 게다가 가사가 담백했다. 앞뒤가 안 맞거나 이상한 비유와 은유가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낯선 일본의 어느 도시 이름이나 사람, 건물 이름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여자가 헤어지자고 먼저 말하고 그 이유를 말한 뒤, 앞으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남자에게 당부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였다. 그게 담백하게 다가왔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또 있었다. 진행자였던 강남이라는 일본 출신 연예인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제법 오래된 노래일 텐데, 도대체 강남은 몇 살이길래 이 노래를 알고 흥얼거리는 걸까? 궁금했다. 강남의 나이를 검색해 보니 이 노래보다 어렸다. 그렇다면 꽤 오랫동안 사랑받았고 현재도 누구나 다 아는 노래 중 한 곡이라는 얘기다. 아마 여러 가수가, 여러 다른 무대에서 불렀을 것이다.
이런 노래는 누군가의 “좋은 날”의 OST가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렇다. 예를 들어 “The Mamas and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은 60년대 나온 노래지만 내겐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중경삼림>에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역시 60년대 나온 노래지만, 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언제나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를 떠올린다. 그가 “굿 모~닝~~ 벳남”이라는 외침으로 시작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 나왔던 영화 <굿모닝 베트남>이 가장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노래의 가사 내용도 이와 비슷한 경우인지 모르겠다. 헤어져도 잊지 않겠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다들 잊고 산다. 그러다 어느 날 불쑥 그 시절을 떠올릴 때, 한 곡의 노래처럼, 한 편의 영화처럼 망각의 뒤편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이 있다. 강풍과 폭우 속에서 밤을 견디며 거의 모든 꽃을 떨어뜨린 능소화가 다시 해가 내리쬐는 며칠 사이에 거짓말처럼 주렁주렁 다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추억 속 존재는 고유의 생명력이 있다.
기억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가슴속에 품고 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가을이나 겨울, 모처럼 분위기 있는 가요가 듣고 싶어 김동률의 노래를 들을 때면, 어수선하게 채널을 돌리다 불쑥 <접속>이나 <약속> 같은 한국 영화의 한 장면을 스쳐 볼 때면, 그렇게 거짓말처럼, 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어서,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 풍경, 공간이 뒤를 따르며 생각난다.
음악이 끝나면 훅 하고 사라지는 생생한 기억들. 다비치의 <잔소리>의 가사처럼, “나 없다고 술 먹지 말고, 니 몸은 니가 좀 더 챙기”라고 했던, “나 없다고 아프지 말고, 밥은 꼭 챙겨 먹고 다니”라고 했던, 그 사람에 대한 생생한 기억들.
찾아보니 일본 가수 몇 명이 시대를 달리하며 불렀고, 우리나라에선 조장혁이 불렀다. 가사는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그 프로그램의 번역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