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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Sep 26. 2024

꿈의 행방은 묻지 말자.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46

번데기 껍질 벗다

    

                             방재욱  

        

삼 년간 데모하느라

사상불량으로 잘리나 주눅 들더군요     


군생활 삼 년간은

실컷 얻어터지니 기가 팍 죽더군요     


다시 한번 도전한 대학생활은

친구 놈들 돈 번다고 술로 조지더군요.


무명 시인들의 동인지

세 명의 시인이 동인지를 냈다. 당신이 아는 이름은 없다. 이들 중 유명 시인이 된 사람은 없으니. 혹시나 해서 이 세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 봤지만 알만한 언론이나 미디어와 인터뷰 한 사람도 없다. 그나마 이들의 문학회는 명맥을 이어오는 동안 몇 번 지역 언론을 탔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사람도 없다. 기사를 보니 후배 중 한 명이, 자신의 시집을 십몇 만 원어치 팔아치웠다는 이유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접받는다고 한다. 다들 뭘 해서 먹고 살려나.     


제일 나이가 많은 이는 예산이 고향인 방재욱으로 66년생이다. 안성수는 72년생으로 속초가 고향이며, 인현숙은 73년생으로 당진 출생이다. 고향이 다른 이들을 만나게 한 건 당연히 대전의 한 대학, 불문과다. 거기서 시를 쓰고 술을 마시고 청춘을 보냈다. 지방의 한 대학, 불문과, 91학번 졸업생들이 시 동아리 비슷한 걸 만들었고 그 뒤로 후배들이 이어졌고, 꾸역꾸역 시를 써 시집을 냈다. 내 손에 들어온 건 그중 세 번째 시집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영문과, 불문과, 국문과를 가는 학생들은 문학과 관련한 공부를 하러 가거나 그 언어로 된 문학을 공부하거나 문학을 업으로 삼기 위해 갔었다. 그래서 학교마다 불문과가 있고 불어 교육학과가 따로 있었으며, 국문과와 영문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교육을 위한 외국어를 배우고 싶으면 교육학과를 가는 것이고, 문학을 위한 외국어, 또는 어디든 문학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들어가겠다는 이가 들어가는 곳이 0 문과였다.      


외국어로 된 문학을 배운 사람이 모국어로 문학을 창작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언어는 문학으로 들어가는 도구이자, 그 언어를 쓴 낯선 이름의 작가들은 만나지 못하는 외국의 선배였다. 문학을 배웠다면 문학을 해야 한다. 이 명제는 너무나 자명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 주변에 있는 0 문과를 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원고지를 앞에 두고 밤을 새웠다. 심지어 국어교육과였던 기숙사 동료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밤마다 글을 썼고, 완성된 소설을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됐을까?     


방재욱은 어느 대학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민주화 시위를 하다 군대에 끌려갔다. 거기서 많이 맞으며 군대 생활을 한 뒤 제대 했다.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들어온 대학에선 이미 민주화의 열기가 사그라들었고 다들 컴퓨터와 뉴미디어를 이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물결에 먼저 올라탄 시인의 친구들은 진즉에 이념 대신 명함을 들고 다녔고 마음의 꿈을 비우고 지갑에 돈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살았다. 그의 시 <자동차 영업 사원 최 군>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명함을” 꺼내고, 삐삐를 치고 서류를 뒤지고 콜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켠 뒤 “야! 죽겠다.”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친구들은 더 이상 “막걸리를 마시며 야망의 부픈 꿈을 논”하지 않고, “시위를 하면서 사회 정의를 논”하지 않는다. “서른도 채 안된 나이건만 / 지친 눈매와 / 야윈 어깨에는 / 고달픈 십자가가 매여 있다.”     


투쟁은 경력이 되지 못했다. 이념은 스펙이 되지 못했으며 그들이 만든 동아리는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시 배워야 했다. 세상의 문법을 배워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세상은 그들을 길들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진보 정치인을 자처하는 이의 사무실에 들어가 바닥부터 정치를 배워 구의원, 시의원이 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준비 없이 졸업장 하나 들고 세상에 나왔다. 그마저도 동기보다, 또래보다 늦게 받은 졸업장이어서 취업 전선에선 오히려 짐만 될 뿐이었다. 그들은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갔을까?      


아쉬움  

   

            안성수

    

수많은 약속을

해 놓은 채로

그 해 여름을

보냈지만     


이제 남은 건

지킬 수 없는

우리 마음의

상처뿐인 걸.


약속

약속은 미래를 향한다. 계약이든, 언약이든, 서약이든, 밀약이든, 모든 약속은 내일부터 그 효력을 발휘하고 그 약속의 효력이 지속되는 동안 미래를 에너지로 약속은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약속엔 지킴과 어김의 결산일이 다가온다. 언젠가, 누군가, 어디에 선가는 그 약속의 결과를 확인받게 된다. 지켰는가? 어겼는가?     


추상적인 약속이라면 상관없다. 행복하게 살아라. 건강해라와 같은 약속들 말이다. 심지어 효도하겠다는,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고 살게 해 준다는 약속도 괜찮다. 그것들은 하는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크게 기대하지 않는, 그러니까 그 약속의 지킴을 확신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거짓 공약이자 허위 공약이라는 걸 안다. 선심 공약이자 퍼주기 공약이라는 걸 잘 안다.     


젊은 시절, 문인을 꿈꾸던 사람들의 약속은 무엇이었을까? 글 솜씨 하나 믿고, 좋은 글 하나 세상에 남기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살아가자, 그런 약속이었을까?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문학만은 버리지 말자. 시인으로 살다가 시인으로 죽자. 어디서 무엇을 하든 시만은 버리지 말자. 세상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묵묵히, 꾸역꾸역 시를 쓰다가 늙어 죽자. 그렇게 자신의 시 몇 편이 실린 팔리지도 않는 시집이 막 인쇄소를 나와 손에 들리던 밤, 그들은 축하주를 마시며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약속에 약속을 거듭했을까?      


내가 만일 서른 살이라면   

  

                                인현숙      


내가 만일 서른 살이라면

그리고

시집 못 간 노처녀라면

게다가

남들이 왜 아직 결혼 안 했냐고

묻는다면

뭔가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필요하겠지

꼭 변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간의 자취에 대한

적당한 설명이 있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만일

서른 살에 시집 못 갔더라도

내게

쫓겨날 염려 없는 직장과

18평짜리 독신자 아파트 전세금과

기름만 넣으면 굴러가는 중고차와

가끔씩 영화 보여줄

어깨 넓은 친구가 한 명 있다면

그때는

굳이 핑곗거릴 찾느라

고심하지 않아도 되겠지     


왜냐고?     


그땐

내게 있어 결혼은

단지 선택사항일 뿐

결핍은 아닐 테니까.


바라던 삶, 선택과 가능성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이제 막 첫 화가 방영된 연속극 같았다. 마흔이나 쉰은 물론이고 서른조차 멀게만 느껴졌다. TV에선 예전에 없던 직업을 가진 청춘들이 예전에 없던 장소에서 연애를 하고 “마이카”를 끌고 꽃구경, 단풍구경을 했으며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녔다. 까짓, 나도 그렇게 살게 되겠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대학만 졸업하면, 그래서 괜찮은 직장을 얻고 연애를 하고 차를 뽑고 몇 년 후 모은 돈으로 조그만 아파트라도 전세로 얻으면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살 수 있겠지, 생각했었다. 글로벌도, IMF도 저 시대의 뒤켠에 숨어 있을 때였다. 대학에서 막 한글 3.0을, 도스로 불러내던 시절의, 그야말로 386 컴퓨터로 타자 연습을 하던 시절이어서 품을 수 있었던 희망이었다.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미술학원 강사가 되기 위해 미술학원을 다닌 후 입시를 통과해 미대를 다니는 사람은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1학년 때부터 방과 후 교실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데, 그 선생님도 자신이 바이올린을 배우는 동안, 그리고 음대에 가서 열심히 음악을 배우고 연주 실력을 닦는 동안, 이런 코흘리개들한테, 그것도 음악도, 바이올린도 사랑하지 않으며, 그래서 음악가나 연주가가 된다거나 하는 꿈도 없는, 최소한 그걸로 먹고 살 생각이 전혀 없는 애들한테 바이올린을 가르칠 것이라 상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뿐인가, 우리가 쉽게 마주하는 수많은 태권도장의 사범들 또한 자신들이 국가대표는 고사하고 상비군에도 뽑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태권도 선수가 되어서 금메달을 따리라 꿈을 꿨던 초등학교 시절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 또한 그렇지만, 필자의 십 대 시절 소위 문학 소년이라 불렸던 수많은 아이들이 그 꿈을 품고 0 문과를 진학했을 땐 입시학원에서 국어 강사를 하거나 보습학원을 차리거나 그도 아니면 문학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직업을 갖는 상상은 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음악학원에서, 태권도장에서, 책상 위에서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한걸음 내디딘 모든 어린 영혼들은 어른이 된 후 생계를 위해 자신이 배운 것이 그 도구로 사용되리라는 상상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연애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끝을 예감하며 시작하는 연애는 없다. 첫날부터 연애는 둘만의 삶을 꿈꾼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아도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꿈을 꾼다.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여기서 살까, 저기서 살까,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이런 것들을 시시콜콜 알아가며 그 꿈은 선명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은 청춘을 닮았다. 청춘이 사랑을 닮았나? 젊은 시절, 꿈의 좌절을 예감하며 꿈을 꾸는 사람은 없다. 특히 필자의 동년배 사람들은 더 그랬다. 대학에만 가면 뭐든 되겠지,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가는 사람에게도 보내는 부모에게도 있었다. 어쩌면 우린 순진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여전히 꿈을 꾸고, 사랑을 믿는 이들 모두는 순진한지도.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뭔가를 하는 것이 뭔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다 작가를 목표로 하지도 않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다 마라토너를 꿈꾸진 않는다. 뭔가를 하면서 거기에 근접할 수도 있지만 그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재의 이유는 충만하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살면서 늘 뭔가를 생성하고 생성함으로 인해 늘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난다.


오랜만에 만나면 묻지 말자. 아직도 시를 쓰냐고, 시를 읽느냐고, 문학을 하냐고, 대학 시절 품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냐고, 이뤘냐고, 우리가 했던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았냐고. 묻지를 말자. 살아 있고, 결혼을 했고 자식까지 굶기지 않고 일상을 꾸려나가는, 그렇게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린 이에게 젊은 시절의 꿈은 어디 갔냐고 묻지 말자. 물어 무엇하겠나.


이 세 명의 시인 또한 어디에선가, 어떤 존재로 삶을 꾸려가 있을 것이다. 유명 시인은 되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배우자로, 부모로,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가끔 만나면 꿈의 행방을 묻는 대신 배우자와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자식이 꾸는 꿈에 대해 물을 것이다. 자신이 그러했듯, 자식 또한 자신의 기대를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이 역시 자신의 부모가 그러했듯 자신도 자식이 꿈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 사는 것을 겸연쩍게 서로 고백하면서 넌지시 자식 자랑을 할 것이다. 쓴 물 같은 실망의 예감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걸 간신히 억누르며 희망이 담긴 미래를 얘기할 것이다.      


보험은 들었느냐, 건강검진은 받았느냐, 누구는 암이라더라, 너도 건강 조심해라, 살을 빼라, 혈압 조심해라와 같은 말을 나누면서 중년의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기다리지 않고 바라지도 않던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담담히 나눌 것이다. 그렇게 살아있는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살아갈 것이다.


1995년 9월 10일에 인쇄를 해서, 15일에 밖에 내놨다. 당연히 이런 시집을 서점에서 샀을 리 없다. 아마 학교 건물 어딘가에서 샀지 않았을까? 인문대학으로 교양 과목을 들으러 가던 길에, 그 로비에서 샀지 싶다. 관건은 불문과에 아는 사람이 있었냐는 건데, 기숙사의 인문대 사람에게 한 권 사달라고 부탁을 받지 않았을까? 내 옆방 방장은 김일묵이라고-태백인가 영월 사람이었다.-영문과 학생이었으니 말이다. 국교과도 몇 명 있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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