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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Oct 20. 2021

시 외우는 소녀들

우리반은 지각하면 시를 뽑는다.


작은 주머니에 준비된 수많은 시들 중, 

세개를 뽑아서 원하는 시 한 편을 외운다.


단골 지각생은 정해져 있다.


이 친구들이 단골이라, 

윤동주의 '별헤는 밤'도 외우게 했는데,

정말 잘 외웠다.


어제도 지각을 해서 시를 외우라고 했고, 

확인까지 했어야 했는데, 

종례하자마자 출장을 가야했던 터라 

영어샘께 확인을 부탁드렸다.




그런데.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저 칠판.


웃음이 났다.


귀여운 녀석들.

얼마나 외우기 싫었으면.


칠판의 상태를 보아하니,

낙서를 꽤나 하며 놀았던 것 같다.


몇시까지 있었냐고 물으니 6시까지 있었단다.


물론! 

그 시간까지 계속 시를 외우기만 했던 것은 아닐터.


아니나다를까, 신나게 놀기도 했단다.

놀면서, 시 외우면서, 이야기하면서, 낙서하면서.


아이들 모습을 그려보니 자꾸 웃음만 난다.


오늘.

어제 못 외운 시를 외웠다.


막힐 때마다,


잠깐만요!
 저 이거 알아요.


하면서.


따박따박 읊어나가는 입술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눈을 마주치면 쌩긋 웃으며 

눈동자를 굴리며 시를 외우는,

사랑스런 소녀들.


너희들 덕분에

내가 웃는다.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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