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F를 만나면서 재작년의 M도 생각나고, 그 이전의 D도 생각 나는 순간들이 있다.
F는 그동안 못 만나본 새로운 유형의(?) 아이지만 이 아이에게서, 앞에서 말한 두 아이의 모습을 만나는 순간들이 있다.
단둘이 조용히 얘기하면 진지하게 듣고 다 알아듣는 듯 대답도 공손하게 하면서도, 복도나 교실에서 지도할 때면 모르쇠 하거나 아예 장난식으로 웃는다든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춤으로써 혼이 나는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한다.
정색을 하고 쳐다보면 그제야,
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라고 하지만, 그 말투와 행동에선 죄송함도, 다시는 안 그럴 거라는 굳은 의지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시시때때로 욱하는 성질이 올라와 앞뒤 가리지 않고 친구건 선생님에게건 욕을 하는 모습은 M이나 D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어쩌면 D가 중1 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D를 만났을 때 그 아이는 중3이었다.
D의 담임이 된 것을 알게 된 선생님들께서는 내게 ‘D의 역사(?!)’를 말씀해주셨다. 중1때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께 욕을 했던 일이며, 담배며, 폭력 등등. 이런 화려한 이력을 지닌 D가 나와 만났을 당시에는 훨씬 좋아진 상황이라고 하셨다.
어쩌면 D가 점점 나아질 수 있었던 건, 한없이 믿어주고 사랑해주고 품어주었던 1,2학년 때의 선생님들(특히나 담임 선생님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과 한숨과 수고로 내가 그나마 수월하게 D를 만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F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마땅히 징계로 다스려야 할 것 같은 상황도 몇 번이나 있었지만, 마음 저 깊은 곳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어줘야 한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지속되는 지각이며 교칙 위반, 수업에도 늦고, 지도 중에도 반성의 태도는 전혀 없으며 선생님들께도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아이를 참고 참으면서 품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품지 않는 일이 더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친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친절하게 대하며, 어떻게든 품어보리라고 다짐하며 퇴근하던 날.
신호 대기 중인 차 안에서 울었다.
내 힘으로 품을 수 없는 아이를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과 사랑을 부어주시라고 기도했다.
그 순간, 내가 끝까지 품지 못했던 아이, M이 떠올랐다. 학년의 마지막 날까지 나를 힘들게 하며 괴롭혔던 아이.
그럼 선도위원회 올리시든지요!!!
라고 사납고 야멸차게 대들던 M이 너무 괘씸해서 바로 선도위원회를 열었더랬다.
그런데, 마음으로부터 반성하지 않는 아이를 위원회에서 무슨 수로 반성하게 만들 수 있었겠는가.
아프고 상처받았더라도 어른스럽게 품어버렸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때는 그대로 두는 것이 아이에게 지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자존심도 상했고, 못된 아이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교육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진정한 변화는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학교에 반감을 품고 계시던 F의 어머니도 우리 선생님들의 관심에 마음을 여시고, 아이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에 잘못된 모습이 많았다는 걸 깨달아가시는 중인 듯하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F가 되었으리라.
이제부터는 상처는 지우고, 잘못된 행동은 교정해나가야 할 텐데, 그 길이 그리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고 몰아세울 때도 따뜻한 손 내밀어주는 선생님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위에서 보면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F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더라도
넌 괜찮은 아이야.
라며 믿어주고, 또 믿어주는 바보 같은 선생님이.
내가 바로 그 바보 선생님이 되어보고 싶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너무 딱 떨어지고 완벽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바보 선생님’이 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의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F를 바라보며, M에게 못 주었던 사랑을 F에게 줄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부디 연약하고 부족한 내가 이 다짐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늘의 은혜와 사랑이 내게 부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