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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Oct 21. 2021

그시절의 제자, K

 3년 차 신규 시절에 담임했던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전히 아름답게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저는 어릴 적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자란 K라는 학생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결혼식도 갔었구요~ㅎ
휴대폰이 수차례 바뀌었지만 선생님은 제 카톡에서 아직 남아있네요~ㅎ

<중략>

선생님! 제가 힘든 아이들을 돕고 싶은데 그렇게 힘든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지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아서 선생님께 여쭈어봅니다.


아! 이 마음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톡을 받고 가슴이 찡해져서 한동안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저녁을 먹고 K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년만의 통화인가. 거의 16년이 된 것 같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K의 목소리에는 K가 중3이던 그 시절의 목소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K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한참 동안 서로 하하 호호 웃다가, K가 내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저를 가르치셨던 그때
선생님이 몇 살이셨어요?



스물 일곱 살이었지.


               
네???
제가 지금 서른 둘이니깐,
그럼 지금의 제 나이보다
어리셨다는 거네요???



K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응.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성숙하고 따뜻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으셨어요?

     

‘어머나...세상에! 내가???’



저는, 한 번씩 선생님 생각날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분명히, 선생님이 종교가 있는 분이실 거다.
그러니깐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거였을 거다.
하고 말이에요.



왜?
샘이 한 게 뭐가 있다고? ^^;
그땐, 그저 선생님이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진짜, 너희들이 예뻤거든.
열정과 사랑이 가득했던 때였지.



선생님 종교 있으시죠?



응. 교회 다니고 있어.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제가 교회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제 아내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교회 다니는 여자들이 좋은 것 같네요.ㅎㅎㅎ




아내가 교회에 다녀?



네. 그래서 저도 몇 번씩 따라가고
성경도 읽어보고 그래요.



잘 됐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특별한 열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 가도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에,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일하는 걸 좋아했고, 혼자 저녁 먹기 싫었기에 집에서 혼자 저녁 먹는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 내어 짜장면도 시켜 먹고, 순두부찌개도 시켜 먹고, 함께 먹고 또 먹었던 기억이 많을 뿐.


 K는 그 시절 가정의 문제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상처로 가득한 K는 수업 시간에는 그 큰 키를 작게 웅크린 채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방과 후가 되면 그제야 겨우 어깨를 펴곤 했다. 그런 K가 안타까운 마음에 다른 아이들보다 자주 불러내어 함께 밥을 먹곤 했다.

 

밥을 먹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그러다 보니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알게 되니 더 이해하게 되었던 것일까.


아마 그랬던 것이었으리라.


K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S이야기도 나왔다. 



S는 어떻게 지내?


결혼하라고 해도,
남자에게 별로 관심 없다고...
혼자 재미나게 살아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S를 내 자취방에 데리고 와서 함께 잤던 기억이 또 새록새록 떠올랐다.

S뿐인가.


J도 생각나고 B도 생각나고,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이 여럿이다.


'신규였던 그 시절, 나는 아이들과 참 가까이 있었구나.'  

   

마음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것처럼 따뜻해지면서 갑자기 뭉클해졌다.  


   


선생님!
외롭고 힘든 아이들.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일하시느라 여유가 없을 테니
제가 가끔 만나서 밥도 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그런 일을 좀 해 보고 싶어요.



너무 기특하다.
고맙고 말이야.
 무엇보다, 네가 잘 지내고 있어서
너무 좋다!
샘도 한 번 알아볼게.

  
   
제가,
아내와 함께 꼭 선생님 뵈러 갈게요.
 선생님 아들이 군대 갈 때까지
제가 군에 있으면,
선생님 아들 부대에
맛있는 거 사 들고
꼭 찾아갈게요.



그래그래!
듣기만 해도 행복하다 야.

     

통화하는 내내 많이 웃어서,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사는 동안 종종 나를 떠올렸다는 제자가 있어서.


그리고 그 제자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주어서.


무엇보다 그 제자의 기억 속에 있는 내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었다.         


 

K! 

결혼식 날, 그 먼 길을 와서 축하해 주었던 일, 

결혼 선물로 직접 맞춘 대형 퍼즐을 선물해주었던 따뜻하고 예쁜 마음, 

선생님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단다.


행복하게 잘 지내다가, 좋은 날 만나자꾸나.(^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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