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은 지각하면 시를 뽑는다.
작은 주머니에 준비된 수많은 시들 중,
세개를 뽑아서 원하는 시 한 편을 외운다.
단골 지각생은 정해져 있다.
이 친구들이 단골이라,
윤동주의 '별헤는 밤'도 외우게 했는데,
정말 잘 외웠다.
어제도 지각을 해서 시를 외우라고 했고,
확인까지 했어야 했는데,
종례하자마자 출장을 가야했던 터라
영어샘께 확인을 부탁드렸다.
그런데.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저 칠판.
웃음이 났다.
귀여운 녀석들.
얼마나 외우기 싫었으면.
칠판의 상태를 보아하니,
낙서를 꽤나 하며 놀았던 것 같다.
몇시까지 있었냐고 물으니 6시까지 있었단다.
물론!
그 시간까지 계속 시를 외우기만 했던 것은 아닐터.
아니나다를까, 신나게 놀기도 했단다.
놀면서, 시 외우면서, 이야기하면서, 낙서하면서.
아이들 모습을 그려보니 자꾸 웃음만 난다.
오늘.
어제 못 외운 시를 외웠다.
막힐 때마다,
잠깐만요!
저 이거 알아요.
하면서.
따박따박 읊어나가는 입술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눈을 마주치면 쌩긋 웃으며
눈동자를 굴리며 시를 외우는,
사랑스런 소녀들.
너희들 덕분에
내가 웃는다.
20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