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반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는데, 8반은 재치가 넘쳐나서 늘 웃으면서 수업을 하게 되는 반이다.
수업을 들어갔는데, 애들의 말장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얘들아~ 북한과 남한은 어휘의 차이가 많이 나거든.. 어휘가 뭔지 알지?"
"............."
"어휘의 의미 몰라? 어휘~!"
"어이없다요~~!!"
"ㅡ.ㅡ"
"즐거운 편지를 배울 건데, 너희들 혹시 누군가에게 편지 받아본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있니?"
"선생님께 받은 편지요."
"연애편지요."
잠잠하던 한 녀석 왈,
"스팸 편지요! 엄. 청. 기억에 남아요."
"푸하하 하하하"
아이들이 도무지 정신이 없이 중얼거리길래 ,
"한 마디도 하지 마~!"
순간, 아이들이 "쏴~~~"해지면서 조용해졌다.
근데, 그 침묵을 깨고, 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 왈,
"난 두 마디 해야지.. 킥킥킥."
"으하하하하하~~~~~~!"
요 녀석, 분위기 깨는데 뭐 있다.
그래도 녀석. 미워할 수 없다.. 너무 귀엽다.
"얘들아, 너네도 대충 샘들 성격 파악되었을 거 아냐? 샘은 조금이라도 떠들고 딴짓하면 집중이 안돼. 예민한 거 알잖아~."
잠깐 조용하더니, 한 녀석 왈,
"야... 예민한 선생님 남자 친구가 불쌍해요.."
"남자 친구 없거든(ㅡ.ㅡ)"
"얘들아~ 이 시의 갈래(종류)가 뭐지?"
"집에 갈래요."
"난 교무실 갈래."
"(ㅡ.ㅡ)"
"이 시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 한정서요"
" (혀 짧은 소리로) 손주 오빠.."
" ^^:;;"
수업을 하고 나서, 칠판에 판서를 하려고 하는데, 내가 들고 다니는 분필 통이 없고, 뚜껑만 교탁 위에 놓여있었다.
"어? 얘들아, 샘 분필 못 봤어?"
"(전부 시치미를 떼고) 못 봤어요."
"진짜야? 이상하네.. 야, 그럼 샘이 분필 통의 뚜껑만 들고 왔단 말이야?"
" 몰라요."
" 에이~~ 야.. 빨리 내놔봐."
" 진짜 몰라요...(키득키득)"
문제는, 진짜로 내가 분필 통을 들고 왔는지 안 들고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요즘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지..^^:
" 어? 진짜 이상하네.... 은별아~! 교무실 샘 책상에 한 번 가 봐."
" 네."
잠시 후,
"샘... 진짜 없어요.. 여기 분필 한 개 가져왔어요."
"그럼 대체 어디 간 거야?"
" 야... 빨리 내놔봐."
애들도 키득키득.. 나도 키득키득. 정신을 못 차린다.
분필 통을 찾는 걸 포기하고 필기를 하려는데, 아까 교무실 다녀왔던 은별이 왈,
"샘.. 빨리 수업 마치고 교무실 가보세요, 선생님들 맛있는 거 드세요."
사실, 난 얼른 판서를 해야 했기에, 판서를 열심히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녀석들 왈,
"우와.. 샘 먹을 것 때문에 글씨 빨라지는 것좀 봐."
"으하하하하하하하하."
"(ㅡ.ㅡ^)"
한 시간 내내 애들과 말장난하다가 수업을 제대로 못했다.
녀석들은 저렇게도 즐거울까.
하기야,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으니, 얼마나 힘들고 지루할까.
나의 어리바리함과, 순진(?)한 모습에 잠깐 동안이나마 녀석들이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 또한 녀석들로 인해 실컷 웃었으니.
공부는 잘 안 하고 , 때로는 답답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녀석들은 여전히 나의 희망이고 내 삶의 이유다.
2004.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