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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30.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24

코지가 찾아오다

  

괴산 집에 새로운 식구가 생겼습니다. 식구가 밥을 같이 먹는 존재임을 의미한다면 코지가 식구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집사람 사형제 가족 모임 하던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맛있는 불고기 냄새가 지글지글 피어오르던 순간 코지가 등장한 것이었지요. 코지는 앞발을 45도 기울인 자세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뒤돌아 도망갈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 자세는 어찌나 요염해 보이던지요.


 코지의 경계심이 사라지는데 일 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닭고기를 들고 다가가자 코지는 경계심을 무장해제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닭가슴살을 발라주며 말을 겁니다.

“아가~ 배 고프지? 집이 있는데 놀러 온 거니? 웅웅~ 집이 없다고~ 그래, 맘껏 먹어”
 코지는 원래 이 집이 자기 집인 양 편안하게 만찬을 즐깁니다.


 집사람이 코지를 기다렸던 것은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한 달 전 집사람이 텃밭에서 물뱀을 밟아 버린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뱀을 끔찍하게 무서워합니다. 그런 아내가 뱀을 직접 발로 밟고 소스라치게 놀랬는데 그 뱀을 정원에서 다시 한번 더 마주치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형성된 것이었지요.
 그래서 뱀 퇴치를 위해 살충제도 뿌리고 방울 소리 나는 막대도 들고 다니는 등 각종 처방을 시도했습니다. 물뱀이 먼저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물리더라도 독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건 생각의 세계이고 감정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끔찍합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뱀을 잡는다는 고급 정보를 어디선가 듣고 마을의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을 탐방해 주길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괴산 집을 떠나올 때는 고양이 사료를 마당 벤치 위에 놓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양이 사료가 깨끗하게 비워진 것을 보고 내심 기뻐했습니다. 고양이가 왔다 갔다는 뜻이겠지요. 마을에서 봤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을 어슬렁거리며 지나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녀석이 출현하기를 메시아를 영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지요. 그 순간을 위해 아내는 고양이를 위한 특별식 닭고기도 준비해 놓았고요.
 
 마침내 그 녀석이 등장해 편안하게 식사를 마친 다음 식탁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곤하게 잠들었습니다. 아늑한 그 모습을 보고 코지(cozy)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밤늦게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키던 코지는 다음 날 아침까지 그대로 잠을 잤던 모양입니다. 아침에 우리가 반가운 마음에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건네는데 코지는 하품하며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다시 꿈나라로 빠져듭니다. 오랜만에 닭고기 포식하고 나서 늘어지게 쉬고 싶었나 봅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난 코지는 아침밥을 주는 내게 부비부비 작업을 겁니다.
 주먹만큼 조그만 얼굴로 내 다리를 간질이는데 식구로 받아들여 달라는 신고식이 분명합니다. 내가 식구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목선을 정성껏 쓰다듬어주자 내 발등에서 다시 눈을 감아 버립니다. 노란 털에 검은 줄무늬, 그리고 깜찍한 얼굴은 인간으로 치면 연예인급입니다.
 
 나는 그 사진을 찍어 딸들에게 보내자 귀엽다고 난리입니다.
 우리가 방심한 사이 코지는 우리 침대까지 무단 침입해서 폼을 잡고 누워 있습니다.
 그건 우리 집 댕댕이 푸딩이의 고유권한이기에 코지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코지는 데크에 설치한 식탁 위로 폴짝 뛰어오르기도 하고, 새집이 있는 소나무 줄기를 타고 오르는 등 자신의 날렵함과 유연함을 맘껏 뽐내며 신나게 놉니다.
 점심 외식 후 돌아왔을 때 코지가 가지 않고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데크를 살펴보았습니다. 코지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식탁 밑에 누워 있는 채로 우리를 맞이합니다. 강아지처럼 안기지는 않았지만 초롱한 두 눈을 크게 뜨고 꼬리를 가지런히 흔드는 동작을 통해 반가움을 표시합니다. 


 아내는 서울 집으로 떠나기 전에 코지를 위해 사료가 듬뿍 담긴 접시를 데크 한 쪽에 놓았습니다. 코지는 우리가 사라진 빈자리를 서성이다 사료를 먹기도 할 것이고 그곳에서 잠이 들 것입니다. 그러다 이번 주말에 그 자리서 얌전히 우리를 맞이하겠지요. 
 왜 이제 내려왔냐는 샐쭉한 표정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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