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치료
들어가면서
많이 긴장했나 보다. 분명 개강 후 그다음 주는 미국 공휴일이라 휴강이었는데 까맣게 잊었다. 미국 4대 공휴일이 아니고서는 직장마다 달력에 빨갛게 표시가 되어 있어도 공휴일이 되고 안되고는 사장님 마음이다. 재택 근무하는 딸도 후일이 아니라 일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날이 공휴일인지도 몰랐다. 그랬으니 매주 월요일 10시 30분 독서 치료 수업이라고 머리에 각인을 시켜놓았던 참이어서 수업을 하는 줄 착각할 만도 했다.
독서 치료 카톡 방에 줌 링크를 올리고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첫 주 수업을 마치고 너무 힘든 수업 내용과 과제 때문에 수업을 모두 취소했나? 불안한 마음에 시계를 자꾸 본다. 그러다 옆의 달력에 눈이 갔다. 빨간색이다. 휴강 날이다. 얼른 카톡방에 멘트를 올렸다.
다음주 이 줌으로 오세요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두 번째 수업
발표자에게 독서 모임을 인도하듯 발표하고 나눔을 한 번 해보라고 청했다. 발표와 참가자들의 나눔을 위한 시간으로 50분을 드렸다. 상담 공부를 처음 하시는 분도 있고 졸업을 앞둔 분도 계셨다. 그래서인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나눈다.
K 님 - 오랫동안 상담을 공부했다. 이번 학기 후 졸업인데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과목을 잘 수강해 주변의 사람들과 독서로 치유를 해 가고 싶다. 아직도 혼란스럽다.
Y 님 - 그 시절 우리는 책을 많이 읽었다. 매체가 발달하기 전이었다. 그 당시 책 모임은 책에 관한 지식을 나누었다. 감정을 나누지는 못했다. 수박 겉핥기식 모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 님 - 처음 발표라 긴장하셨을 텐데 발표를 잘하시고 나눔을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
B 님 - 수업에 참여하기가 부담스럽다. 책도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수업을 계속 들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H - 책을 읽으며 많은 소설을 읽고 내담자들에게 맞는 책을 권해주시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예민한 내용을 다루는 책을 어디까지 아이들에게 읽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J -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M - 앞으로 기대가 된다. 첫 시간 긴장하셨지만 발표를 잘해 주셔서 감사하다. 많은 걸 배우는 좋은 시간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N - 지난주 인도 선교 여행을 다녀왔다. 선교 여행 중 말씀을 읽고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감정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다. 서로에게 감동이 전달되어서 참 좋았다.
독서 치료 (조셉 골드)
저자는 독서는 과연 인간의 시간 즉 과거, 현재,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를 명제를 던진다. 4장의 제목은 책과 함께 디시 만들어가는 과거다. 조셉 골드는 책을 읽음으로 책에 있는 스토리를 읽고 내재화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다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 어떤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과거가 독서를 통해 변화되고 심지어 다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저자는 여러 분야의 책 중 스토리를 가진 소설을 중심으로 이 책을 끌고 나간다. 스토리란 세상을 보는 인간의 마음이며 그 마음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 스토리라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화를 갖고 있다. (p62)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을 겪은 개인은 자신의 기억 속에 저장하고 이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과거라는 시간에 속에 묻혀서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봉인의 장치 속에 넣어 자신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사실이 된다. 이렇게 기억된 과거 사건은 때로는 의식 속에서 때로는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이 된다.
저자는 말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은 변하지 않지만 기억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틀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내가 변했기에 그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는 변하지 않지만 과거 사건을 인식하는 주체가 성장함으로 훨씬 성숙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일이 가장 나를 성숙게 하는 일이 된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관점을 바꿀 목적으로 우리는 과거를 탐구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난을 이유로 학교에서 수치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자기 무의식에 넣어 두고 잊은 채 잘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남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흥분과 분노를 나타낸다. 자신은 자신의 자녀 일로 분노하고 있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 부당한 사건 앞에서 보호받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분노인 것이다.
책을 통한 치유 -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아이들에게 학교나 가정에서 고통당하는 이야기를 읽게 한다면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로를 받는다. 왜냐면 내가 당한 학교나 가정의 학대는 책을 읽음으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 일을 겪은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위로가 없어도 그 자체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일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소설 속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합하면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나의 경험
어린 시절 엄마의 다그침이 때로는 견디기 힘들었다. 난 나를 향해 매번 소리치는 엄마를 향해 속으로 외쳤다. '내 친엄마가 아니야. 언젠가는 나의 상냥하고 친절한 친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 것이다'라는 상상을 하며 그 시절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2학년 때 한문 선생님이 <빙점> 소설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소설의 여주인공 요꼬도 계모의 구박을 견디고 있었다.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르게 너무도 훌륭하게 그 학대를 이겨나갔다. 그 계모는 요꼬를 입양하기 전 딸을 키웠는데 자신의 불륜 현장에 온 딸을 밖으로 내 보냈는데 강가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남편은 딸이 죽은 이유가 아내의 불륜이란 걸 알고 은밀히 복수를 계획한다.
남편은 친딸을 죽인 범인의 딸을 입양해 아내에게 키우게 한다. 입양한 딸을 죽은 딸을 대신해 열심히 키우던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의 계획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 사실은 안 아내도 똑같은 복수를 결심한다. 친딸을 죽인 범인의 딸 요꼬를 지능적으로 학대하기로 결심한다. 보이지 않는 학대 속에 요꼬는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학예회 날 흰 원피스를 입고 오라는 학교의 지시에 계모는 일부러 빨간 원피스를 입혀 보낸다. 하지만 요꼬는 마치 주인공은 빨간 원피스를 입는 것으로 끔 설정된 것처럼 멋지게 학예회를 끝낸다. 그 소설을 읽으며 나만 엄마의 구박을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꼬가 계모의 구박을 이겨내는 모습 그리고 나 아닌 그 누구도 구박을 받고 있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 힘을 내서 살아야 할 소망을 주었다.
그 뒤 미우라 아야꼬가 쓴 모든 글을 읽었다. 세상에 구박을 받는 아이가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를 주던지 나는 소설을 읽으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 소녀가 되었다. 나도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나가면서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소설 속 스토리를 통해 위로받는다. 때로는 내가 겪을 때 힘들어하며 실패한 일을 소설 속 주인공이 멋지게 극복할 때 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그리고 나의 과거도 위로를 받는다. 다른 관점과 해석의 틀을 제공받는다.
스토리는 과거를 다시 바라보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인식 전환의 틀을 충분히 줄 수 있다.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충분히 스토리는 그만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