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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Jun 14. 2024

장수풍뎅이 싸움은 못났고 소싸움은 못된 이유?

2024년 6월 9일 단 하나의 명장면

지난 주말, 여주에 있는 남편 친구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남편이 원하기도 했지만 매주 주말마다 키즈카페, 동물원, 놀이터 등을 전전하는 스케줄이 지겨웠던 참이라 나도 들떴다.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나는 1박 2일 여행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출발이 언제나 예상시간보다 늦어져 허겁지겁 떠났다가 다음 날 아쉬울 때 돌아오게 된다는 것에 우리 둘 다 동의했으므로 늦은 저녁 출발해 첫날에는 근처 민박집에서 자고 다음날 오전 우리끼리의 일정을 보낸 뒤 친구집으로 가는 2박 3일 여정을 선택했다.


민박집은 아담했으나 최근 리모델링을 마쳤는지 깔끔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원룸이라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없어 고민하다가 신발장 앞에 작은 상을 펴고 화장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의존하며 술을 마셨다. 꼭 그렇게까지 마셔야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삑! 당신은 애주가 테스트 불합격입니다. 우리는 꼭 그렇게까지 해서 기어이 술을 마시고 꿀 같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우리가 고른 첫 여행지는 곤충박물관이었다. 곤충이라면 날파리 하나라도 질색을 하는 나지만 내 선입견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진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을 눈으로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입장해 보니 역시나 속이 메스꺼웠다. 다리가 많고 대체로 시커멓고 발발거리며 움직이는 그것들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눈을 반만 뜨고 걸었다.


밀웜과 애벌레 등을 만질 수 있는 체험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 얼른 가자 가자."하고 아이들의 등을 밀었다.

살아있는 미국 바퀴벌레 전시통 쪽으로 아이들이 다가가려 하는 순간이 내 인내심의 절정이었다.

"어머, 저기 매점이 있네. 엄마가 뽀로로 음료수 사줄게!"


아이들에게 단 것을 하나씩 물려주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와 동시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선입견을 깨 주긴 개뿔. 이 정도면 곤충은 징그러운 거라고 가르쳐주러 온 거 아닌가. 아, 뭐라도 재밌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아이들은 매일 만지는 흙에서도, 그저 풍선 하나만 쥐어주어도 스스로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이 뭔가 체험하고 느끼고 재미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는다.


그때 "와!!"하고 옆 전시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저기서 재밌는 거 하나보다!"

 또다시 유난스럽게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곤충박물관이 원래 이렇게 한산한가 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있었다. 오늘의 이벤트는 바로바로 장수풍뎅이 싸움구경 되시겠다.

인파 때문에 정작 싸우고 있는 장수풍뎅이는 보이지 않아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것을 봤다.


부모들은 자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끌려와 집에서 마주쳤다면 다 때려잡았을 곤충들을 수시간째 마주치고 있다는 스트레스를 장수풍뎅이 싸움으로 해소하는 듯했다.

그곳에는 해설자까지 존재했는데 유려한 말솜씨와 장수풍뎅이의 화를 돋우는 스킬이 기가 막혔다.

장수풍뎅이들의 이름은 유명 가수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장엄한 음악과 함께 장수풍뎅이 두 마리가 소개었다.

"16강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이승철 선수와 이승기 선수가 맞붙게 되는데요. 1시 타임 우승자였던 이승기 선수. 이번 경기에서도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자! 경기 시작합니다."

이승기 선수는 영 싸울 기분이 아닌지 이승철 선수를 피해 다른 곳으로 슬금슬금 기어갔다.


"이승기 선수 지금 싸울 마음이 안 드는 것 같은데요. 제가 화를 한 번 돋워 보겠습니다."

해설자는 장수풍뎅이 뿔모양 그림을 붙인 막대기를 들고 이승기 선수를 밀며 자극했다. 이승기 선수는 드디어 열이 받은 듯 경기장으로 돌진했다.


"자! 이승기 선수 드디어 화가 났습니다. 이승철 선수에게 빠르게 달려갑니다.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됐는데요! 던집니다, 던집니다! 한 판 뒤집기 승!!"

"우와아아아아아아!!"


이승기 선수가 이승철 선수를 말 그대로 냅다 집어던졌다. 씨름에서나 볼 법한 속 시원한 한판승이었다.

전시장이 함성과 박수로 가득 찼다. 뜨거운 열기가 달아올랐다. 키가 작아 스크린조차 보지 못해 영문도 모르는 우리 집 아이들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박수를 쳤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웃음을 참으며 '으이구. 인간들 참 못났다 못났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못됐다.'가 아닌 '못났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경멸이 아닌 웃음을 머금고 있는 나에게 의아함이 들었다.

내 이런 태도에는 어느 정도 '자그마한 장수풍뎅이 싸움에 이렇게 열광하다니, 인간이란 참 귀엽기도 하다.'라는 뉘앙스가 분명 담겨있었다.


예전에 TV에서 소싸움, 개싸움 하는 걸 보고 "인간들 진짜 못됐다."하고 눈시울이 붉어졌었는데 왜 장수풍뎅이 싸움은 그저 못난 걸로 치부할 수 있걸까?


장수풍뎅이는 개처럼 귀엽지 않아서? 소처럼 왕방울만 한눈에 눈물이 맺히지 않아서? 눈이 보이지 않으니 그들의 감정을 읽을 수 없어서? 감정을 읽을 수 없으니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그저 장수풍뎅이들끼리 좀 집어던지는 정도로 뭐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지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스스로가 피곤해졌다.


남편 친구네 집에 도착해 술을 곁들인 맛있는 식사를 하는 동안 장수풍뎅이는 깨끗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하루 자고 다음날 돌아올 때는 그런 걸 봤다는 사실조차 망각했다.


집에 도착하자 첫째 딸 은유가 자연관찰책 중 장수풍뎅이를 골라오더니 읽어달라 했다. 곤충박물관에서 본 것 중에 장수풍뎅이가 제일 마음에 든다는 말을 덧붙인다.


"장수풍뎅이는 고 뾰족한 뿔로 힘겨루기를 해요. 머리에 있는 뿔로 상대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려요. 장수풍뎅이는 영양분이 많은 흙 속에 구멍을 파고 알을 낳아요. 애벌레와 번데기 시기를 거쳐 자라요."


읽는 내내 장수풍뎅이의 화를 돋우던 막대기와 화가 나서 달려가던 이승기 장수풍뎅이와 결국 이승철 장수풍뎅이를 집어던졌을 때 "와아!"하고 번지던 함성이 반복재생됐다.

나는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이제 곧 해가 뜰 거예요. 바쁘게 움직이던 장수풍뎅이는 낮에는 그늘진 곳이나 나무 구멍 속에서 쉬어요. 다시 밤이 되면 신나게 숲 속을 돌아다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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