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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Jun 28. 2024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의 낯선 하루

2024년 6월 28일 단 하나의 명장면

갑작스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다. 긴장하면 쉽게 배탈이 나고, 배탈이 나는 상황이 올까 봐 긴장을 하기 때문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늘 긴장하고 배탈이 나기를 반복한다.


특히나 내가 배탈이 났을 때 곤란한 상황, 예를 들어 중간에 나갈 수 없는 공연 관람을 하는 경우, 차에 탄 상태로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을 때, 말을 끊을 수 없이 어려운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경우에는 머릿속에 오로지 화장실을 가지 못할 거라는 공포만이 가득 차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대부분의 문화생활과 막히는 시간에 차 타기, 잘 모르는 사람 만나기 등을 거의 포기하고 살아간다. 편한 사람만 만나고 아는 장소에만 가며 고속버스를 탄지는 10년이 훌쩍 넘었다.


정류장 간의 거리가 짧은 시내버스는 자주 탄다. 그리고 내릴 곳이 아닌 곳에서 자주 하차한다. 그때마다 수많은 감정을 마주치게 된다. 이것은 오로지 내가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풍요로움이다.


일단은 개방형 화장실을 찾으려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를 헤매며 절박함을 느낀다. 화장실을 겨우 찾아 급한 볼 일을 해결하고 나면 해방감을 느낀다. 그제야 여기가 어디지? 하고 두리번거리며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는 곧 아주 강력한 낯섦을 느낀다.


그 동네는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어쩌면 같은 동네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나는 그 길을 전혀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본인이 사는 동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대체로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안, 내가 지하철에서 내려 우리 집까지 가는 길, 그 길에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 줄을 서서 먹는 유명한 맛집은 어디인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그 길에서 몇 블록만 벗어나도 어리둥절해지고 말 것이다.

'엥? 우리 동네에 이런 길이 있었어?'


가벼운 호기심으로 동네를 거니는 동안 마음 한편에서 작은 씨앗 같은 감정이 스멀스멀 싹을 틔운다. 황당하게도 그것은 거부감이다. 나는 이 동네에서 거부받고 있다는 우스운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바로 이 동네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규율 같은 것을 내가 어기고 있고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조금 전에 내린 버스정류장으로 터덜터덜 돌아가서 벤치에 앉아있지만 아까 나를 내려주었던 그 노선의 버스가 나를 다시 태워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동네에서는 버스를 세우는 특정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버스가 나를 투명인간처럼 지나치고 말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 그래서 어색하게 손을 뻗어 흔들며 나의 존재를 선명하게 알리려는 노력에 가까운 손짓을 하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거부감이라기보다 거부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울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동네가 나를 이방인 취급할리는 없으니. 생김새도 머리색도,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도 모두 같은 나를.



스물네 살의 나는 호주를 여행 중이었다.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광활한 호주의 이곳저곳을 눈에 담으려는 것이었다. 1년 동안 나는 식당에서 서빙도 했고, 쇼핑몰에서 캐셔를 했고, 선글라스 가게에서 선글라스도 팔았다.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노는 곳에서 놀고 쉬는 곳에서 쉬었다. 1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도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나의 친구들이 길을 걷다가 차를 타고 지나가는 호주인이 던진 햄버거에 얻어맞기도 했지만, 클럽에서 마음에 드는 호주여자에게 말을 걸었다가 탄산수가 얼굴에 뿌려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일을 한 번도 겪지 않았다. 어쩌면 나만큼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나는 과민성대장증후군도, 거부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적당히 자신 있었고 용기 있었다. 여자 혼자 심야버스를 타고 8인용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며 값싸게 여행했으니 좋게 말하면 당차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하기도 했다.


심야버스는 휴게소에서 잠시 멈췄다. 사람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간단히 스낵을 사러 편의점에 갔다. 나는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으나 호주 휴게소 구경을 하려고 굳이 내려서 어슬렁거렸다. 주유기 같은 자판기가 하나 있었는데 Water 어쩌고 라고 쓰여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쩌고'였겠으나 영어에 서툴면서도 쓸데없이 용기만 있던 나는 Water만 보고 충동적으로 돈을 집어넣었다. 마실 물이 좀 나오려나, 물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거지 살펴보며 궁금해하고 있을 무렵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물이 쏟아졌다. 페트병에 든 물이 아닌 물 그 자체가. 나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흐르는 물줄기에 머쓱해진 두 손을 비벼 닦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몇 시간 동안 하염없이 달리던 버스 속에서 지루함에 몸을 비틀고 있었을 많은 호주인 (또는 서양인? 그때도 지금도 구분하지 못한다.)들이 조그만 창 밖으로 나를 구경했다.

나는 도망치듯 Water 어쩌고를 벗어났다. 버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갈 곳 없는 나는 서둘러 버스에 타 밤을 핑계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수치심이 몰려왔다.

여태 내가 적응했다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 이 땅 호주가 순식간에 낯설고 부담스러운 곳으로 변했다. 평범히 매일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외국인 노동자로서 아등바등 하루를 그저 버텨냈던 것뿐 아닐까. 이곳에 대해 좀 알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속했다고 생각했지만 달려도 달려도 바깥 테두리를 뱅뱅 돌고 있었을 뿐 아닐까. 제법 숨이 차니 안쪽을 향해 달린다고 착각했을 뿐.


그 뒤의 나의 여행이 어땠었나. 순조롭다면 순조롭고 초라하다면 초라했던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늑하고 평화로운지 새삼 깨달았다.



나이를 먹으며 겁은 점점 더 많아졌다. 범죄에 대한 공포, 귀신에 대한 공포, 벌레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상실에 대한 공포, 모름에 대한 공포, 모르는 것을 들키는 것에 대한 공포,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공포, 나만 도태되고 있다는 공포, 나만 튀는 행동을 할 것 같은 공포, 실수할 것 같은 공포, 뭐가 대체 어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공포는 새로 생겨났다. 모든 공포가 버무려져 나는 예민해지고 예민함은 장을 뒤틀어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이제 모르는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도전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매일을 맞이한다. 맛집을 하나 찾아가더라도 미리 검색하고 대표 메뉴를 알아보고 주문방법을 파악한다. 나는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두렵다. 언젠가는 또 무식한 용기를 낼 수 있겠지만 아무 용기내지 않는 오늘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늘처럼 모르는 동네에 앉아 나를 태워주지 않을 버스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즐긴다. 낯섦과 소외됨과 속하지 못하는 에 대해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작지만 가치있는 일이다.


지금, 이 낯섦은 나만의 것. 오늘 하루 나만의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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