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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Jul 26. 2024

'안다'는 것이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는 이유

2024년 7월 25일 단 하나의 명장면

다섯 살 딸 은유는 요즘 매미 허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수백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나무 하나하나의 높이가 아파트 5층까지 올라오는,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하신 나무들이다. 그러니 여름이 오면 그 큰 나무마다 얼마나 많은 매미들이 들러붙을지,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될 것이다. 과장 하나도 안 보태서 옆에 있는 사람 목소리가 잘 안 들릴 정도로 매미는 소리를 질러댄다.


난 곤충이라면 초파리 하나라도 싫다. 걔들이라고 내가 좋을 리 없으니 미안하지도 않다. 어렸을 때부터 싫었다. 초등학교 때 돈이 생기면 꼭 과학전집의 곤충편에다가 숨겼다. 설날에 받은 세뱃돈은 '매미'에, 오랜만에 놀러 온 삼촌이 주신 용돈은 '귀뚜라미'에. 두 눈을 흐리게 뜨고, 필요 이상으로 크게 확대되어 찍힌 그들의 애벌레를 보지 않으려 애쓰며, 가장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사진을 찾아내어서, 그곳에 꽁꽁 숨겼다.

사이코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이런 책은 절대 보지 않을 거야. 여기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눈길이 닿지 않고 손길 가지 않는 곳이지. 아무도 내 돈을 훔쳐갈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웃음이 입꼬리 밖으로 자꾸 삐질삐질 새나갔다.


그래서인지 곤충에 관한 지식은 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몰라도 여태 사는 데 아무 지장도 없었다. 집에서 벌레를 마주치면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를 부르짖고 지금은 남편을 드잡는다. 빨리 저 벌레 잡아 죽여줘!!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필연적으로 곤충들을 마주 봐야 한다... 어디 달려있는지도 몰랐던 그 곤충들의 눈을 한 번쯤은 마주쳐야만 한다. 어째서인지 어린이들은 곤충에 관심이 많고 실사가 잔뜩 박힌 자연관찰 책을 쏙쏙 골라서 읽어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전날 술이라도 많이 마셨다면 정말 고역이다. 가뜩이나 미식거리는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고통의 시간 끝에 나는 매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다시 말하지만 알고 싶진 않았다.) 그전에도 대충 매미가 오랫동안 땅 속에 있다가 밖에 나와 한여름에 좀 시끄럽게 울다 짝짓기를 하고 죽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책에 따르면 매미는 짧게는 3년, 길게는 17년까지도 땅 속에서 유충으로 살다가 성충이 되면 나무에 기어올라 탈피를 한 뒤 짝짓기를 하고 한 달쯤 살다 죽는다고 한다.

매미는 사방이 어두컴컴하고 숨 막히는 땅 속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몇 년이나 웅크려 유충으로 사는 걸까? 어떤 마음으로 등을 찢고 나오면서 탈피하고, 얼마나 큰 자유를 느끼며 날아올라 짝을 찾는 소리를 질러대다가, 갑자기 왜 죽어버리는 걸까?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은 오로지 번식..? 10년 넘게 기다려온 것이 고작 몇 번의 짝짓기?

아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후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날 때마다 그래, 울어라 울어, 나 같아도 울고 싶겠다, 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하루는 나무에 붙은 매미 허물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자체가 한 마리의 곤충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곤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호라, 신기하네.

앗, 잠깐 이 나무에 이런 게 붙어 있다면..? 나는 그제야 나를 둘러싼 수백 그루의 나무들을 돌아봤고 나무마다 수십 개의 매미 허물이 붙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방이 매미 허물인 세상에 갇힌 것 같아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아 뛰어 도망쳤다.  


그러나 징그러움도 이기는 것이 모성이던가. 딸아이의 등하원 길마다 나무 하나에 몇 개의 매미 허물이 있는지 찾아 세어보는 것이 우리의 놀이가 되었다. 제발 만지지는 않는 것이 유일한 룰이다.


오늘 아침 두 아이를 등원시키느라 땀범벅이 된 와중에 길에서 은유 같은 반 친구와 그 엄마를 만났다. 피차 바쁜 상황이니 살가운 눈인사만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은유가 또 매미 허물 찾기를 시작했다.


"엄마! 이 나무에는 꺼칠꺼칠 괴물(은유가 부르는 매미 허물의 애칭) 세 개 있어요."

"어, 그러네. 안녕 꺼칠 괴물~"


"왁! 이게 뭐야? 지윤아, 이것 좀 봐! 매미 허물이다. 우와!"

징그러운 걸 발견했을 때 새어 나오는 경멸 한 스푼, 세상에서 처음 보는 물체를 봤을 때 보이는 신기함 한 스푼, 그러나 엄마이고 어른이니 아이에게 어쩐지 자연의 신비함을 알려주어야만 한다는 책임감 한 스푼이 뒤섞인 정체불명 퓨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윤이 엄마가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나무를 봤다가 꺼칠 괴물을 마주친 것이다. 반응을 보아하니 매미 허물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매미 허물과 초면이라니, 그러기도 어려웠을 텐데. 나는 하루에 몇 백개나 마주치는데 말이야. 워킹맘처럼 보이시던데 역시 바쁘시다 보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으시겠지. 생각을 하다가 나 역시 38년을 살며 며칠 전 매미 허물을 처음 봤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렇게나 지천에 깔려있는 매미 허물들을 나와 지윤엄마는 왜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

간단하다. 몰라서 그렇다.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임신을 하면 길에 임산부가 잔뜩 보인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세상에 글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떤 직업을 가지면 한국 어딜 가도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뒷담화를 할 때 목소리를 줄이게 된다.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 허물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부터 매미 소리가 들리면 나무를 살피게 된다. '이 나무에서 매미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최근에 탈피를 한 매미가 있을 텐데. 껍데기가 어디 있으려나.'


38년 동안 모르고 살았지만 나는 이제 매미 허물을 '아는' 인간이 된 것이다. 무언가를 '알고' '인식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복잡한 과정과 우연을 지나 그것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내가 전혀 '모르는'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중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 집 근처에 '낙원의 상실'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멀리서 지나치기만 한데다 어두컴컴해서 무얼 파는 매장인지도 몰랐지만 매간판을 볼 때마다 이 가게의 주인은 누구일지 상상했다.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을 지으신 걸까? 그분의 낙원은 어디였을까? 살면서 언제 그분의 낙원을 상실하고 절망에 빠지셨을까? 그 상실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이름으로 지어 생계를 이어나가시는 한 사람의 삶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세상이 아직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성인이 되어 버스를 타고 가다 신호에 걸려 서서 밖을 내다보는데 '초원의 상실'이라는 가게를 발견했다. 의아함이 가시기도 전에 또 '에덴의 상실'을 발견했다.

그렇다. 그 가게들은 전부 의상실이었던 것이다. 손님이 원하는 옷을 만들어주는 의상실 말이다.

낙원 의상실, 초원 의상실, 에덴 의상실!


옆에 친구만 있었다면 어깨를 때리면서 웃음을 크게 터뜨리고 싶었으나 나는 혼자였으니 웃음을 참으려 이어폰을 급히 귀에 쑤셔 넣을 수밖에 없었다.

승객 여러분, 제가 만약 웃거나 웃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신다면 재밌는 라디오를 듣고 있는 거랍니다.


때때로 내가 무언가를 잘 알게 되었다는 착각이 들 때, 긴 시간 반복했던 '낙원의 상실'에 관한 나의 오해와 망상에 대해 생각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맞다고 생각한 것을 믿고 있던 나와 그 생각이 깨지던 그 통쾌한 순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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