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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Jun 21. 2024

나태지옥에 갇혀 형벌을 받는 죄수

2022년 11월 3일 단 하나의 명장면

죄수번호 6948번.
전생에 술만 마시고 스마트폰으로 유머짤만 보며 낄낄댄 죄로 나는 지금 나태지옥에 와있다.
이곳에서 나의 형벌은 작은 인간 두 명을 돌보는 일.
두 작은 인간의 수발을 하루종일 들어야 하며 밤이 되어 이들이 잠들 때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수 없다.

오늘아침 내가 대학생일 때 한 달 내내 하루도 안 쉬고 술을 먹었던 과거가 적발되어 새 형벌이 추가되었다.
바로 나와 두 작은 인간에게 며칠 동안 감기를 앓게 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벌이다. 일단 작은 인간 1이 어린이집에 못 가서 두 아이를 동시에 가정보육 해야 한다.

나태지옥 안에서 신이 자비를 베풀어 어린이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주셨다. 작은 인간들은 어느 정도 크면 그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다 오는데 오직 그 시간만이 우리 죄수들이 노동을 멈추고 잠시 쉴 수 있다.
그러나 감기에 걸리면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다. 우리 죄수들은 어린이집의 다른 작은 인간들 건강도 유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감기 때문에 몸이 아프고 피곤하지만 이 작은 인간들은 당최 내가 아플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작은 인간들의 상상력이란 겨우 그 정도이다.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때론 화가 난다. 하지만 화를 내본 적은 없다. 그 이유는 이 작은 인간들이 아직 한국어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화를 내봐야 잘 알아듣지 못하고 겁만 먹을 것이다. 작은 인간들이 겁을 먹으면 추가적인 형벌이 주어진다.
'강력한 재접근기' '방황하는 사춘기' 같은 것들.
그 대가가 가혹하기에 지금은 그저 작은 인간들의 비위를 살살 맞추고 내놓으라는 걸 대령할 뿐이다.

나에게도 동료가 한 명 있다. 우리는 같은 날짜에 같은 곳으로 배정을 받았다. 그는 일주일에 거의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바깥에서 일을 하고 녹초가 되어 집에 온다.
어쩌다 저런 벌을 받게 된 걸까? 저자는 전생에 평생 백수였던 걸까?

우리 둘이 팀을 이루어 두 작은 인간을 잘 키워내는 것이 나태지옥에서의 우리 임무다. 우리는 나름대로 업무를 분담하여 애쓰고 있다.

작은 인간이 한 명이었을 때, 우리는 니가 힘드니 내가 힘드니 하며 힘듦을 겨뤄보기도 했다.
하지만 작은 인간이 둘이 되자 이제 우리는 겨룰 힘조차 없어졌다. 그저 서로를 불쌍히 여겨 하루가 끝나면 서로 토닥여주고 술을 나눠마신다. 술과 음식은 주로 내 동료가 바깥세상에서 사 온다. 그리고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야기해 준다.
난 이곳에서 탈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작은 인간이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얼른 기록을 남겨 비둘기를 통해 동료에게 내 생사를 알리고 살기 위해 뭐라도 주워 먹어야 한다.

이런 작은 인간 2가 뒤척인다!
내 밥이 아직 데워지지도 않았는데..

기다리세요 주인님!!



휴, 작은 인간들이 밤잠에 들었기에 기록을 이어나간다.

이 나태지옥을 견뎌내는 힘이 무엇이냐 하면 황당하게도 작은 인간들의 귀여움뿐이다. 작은 인간들의 귀여움이란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것이다.

나태지옥에서의 중노동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우리 죄수들은 얼마 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소정의 급여라도, 하다못해 달란트라도 좀 달라는 시위였다.
우리 간부는 나태지옥의 신과 한참 상의하여 결론을 내렸다.

중노동을 인정하는 바 일정한 급여와 주 2회 휴식을 주되 시스템의 간소화를 위해 작은 인간들의 귀여움을 없애기로 했다는 것이다.

오동통한 엉덩이와 발그레한 뺨, 허벅지사이사이에 있는 주름과 뽈록 튀어나온 뱃살.
꼬질꼬질한 손가락냄새와 까르르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죄수가 동의하지 못했고 우리는 여전히 나태지옥에서 눈을 뜨면서부터 감을 때까지 고된 하루를 무보수로 보내고 있다.

이만하면 작은 인간들의 귀여움을 상상할 수 있을까?

며칠 전 나태지옥신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대규모 사면이 있었다. 작은 인간들을 양육하는 형벌을 멈추고 다시 미혼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돌아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냐?
작은 인간들이 너무너무너무 지나치게 귀엽기 때문이다.

이 귀여움을 모르면 모를까, 이미 알아버린 죄수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귀여움에 복종하여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걷는다.

내가 지쳐 가끔 멍하니 앉아있으면 작은 인간 1은 "엄마야, 사란해" (이 작은 인간들은 편의상 나를 엄마라는 호칭으로 통일하여 부른다.)하고 나를 안아준다.
그럼 이 나태지옥이 계속돼도 좋으니 작은 인간들이 더 이상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미친 생각마저 가끔 든다.

작은 인간들은 아침 7시부터 눈을 떠서 식탁을 엉망으로 만들며 밥을 먹고, 응가를 하고도 티를 안 내고 놀다가 옷까지 다 묻히고, 뽀로로 사탕을 내놓으라고 바닥에 머리를 찧고, 뒤집어진 채로 되짚지 못해서 침을 흘리며 울어댄다.

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힘들지만 귀여워서 참는다.

큰 귀여움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일지니.




<약 1년 반 전 어느 날. 육아에 지쳤는지 미쳤는지 이런 망상글을 일기장에 적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저때의 내가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지금은 이때보다 육아가 훨씬 수월해졌다. 아이들은 조금 컸으나 여전히 믿을 수 없게 귀엽다.

2022년의 나야, 조금만 버티렴. 좋은 날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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