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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Feb 20. 2024

죽은 엄마는 꿈에 잘 찾아와 주지 않는다

꿈을 뒤져 엄마를 찾는 날들

처음 꿈을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초등학생 때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떴는데 익숙한 내 방이 아닌 생경한 꿈 속에 들어와 있었다.

꿈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고 내 의지로 생각과 행동도 할 수 있었다.

악몽을 꿨을 때도 일단 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하면 깨어나거나 도망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될 때까지 악몽과 귀신을 두려워해서 혼자선 잠을 자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매일 매번은 아니지만 나는 종종 내 꿈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잠으로 도망가는 날이 많았다. 갓난아기도 아닌데 낮잠을 자주 잤다.

눈을 꾹 감고 오늘은 아이돌이 되어 화려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야지, 스포츠카를 타고(잠깐, 고등학생이..?) 백화점에 있는 모든 옷을 사야지, 좋아하는 남자연예인과 연애를 해야지, 전교 1등을 해서 재수 없는 인간들의 콧대를 밟아줘야지, 열심히 되뇌면서 잠이 들면 그런 꿈을 꾸었다.

내가 할 수 있으니 세상 사람 모두가 할 수 있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그런 걸 '루시드 드림 (자각몽)'이라고 부르며 모두가 가진 능력이 아니란 걸 알게 됐을 때쯤 그 능력은 자연스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요즘 사라져 버린 그 능력이 아쉽고 아깝다. 종종 꿈속에서 엄마를 보고서도 엄마인 줄 모르고 스쳐 지나고는 깨어나서 아쉬워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일마저도 잘 없다.

죽은 사람은 꿈에 보이지 않아야 좋은 곳으로 잘 떠났다고들 하는데 과연 그럴까?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이가 나와주지 않아 서운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려 애써 지어낸 말 아닐까?

'비가 오는 날에 결혼하면 잘 산다.' '날이 궂을 때 이사를 하면 복이 들어온다.'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그 달콤하고 가짜 같은 말들처럼.




엄마가 죽고 처음 내 꿈에 나온 건 장례식을 마친 바로 다음날, 3일 동안 강행군으로 치러낸 장례에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들었던 그날이었다.

꿈속의 나는 여전히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있었다. 안에서는 조문객들이 웅성대고 나는 세월에 지쳐버린 노인처럼 축 처진채 장례식장 복도 벤치에 눕듯이 기대앉아 있었다.

문득 기척에 돌아보니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엄마가 옆에 있었다. 엄마가 편히 입던 분홍색 반팔 티셔츠, 언제라도 주방일을 할 수 있게 항상 걸치고 있던 꽃무늬 앞치마, 비구니 같다 놀려댔던 품이 큰 검은색 바지, 내려오는 머리가 거추장스럽다며 야무지게 차고 있던 머리띠.

엄마는 정말이지 엄마의 모습 그대로 내 옆에 앉아있었다. 온 얼굴에 웃음을 띠고 기특해 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꿈속에서 나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반갑고 또 슬퍼서. '꿈속의 나' 역시 '현실의 나'처럼 묻고 싶은 말들이 쏟아지게 많아서. 그런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서. 그래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도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엄마.. 나 잘했어? 우리 잘 해냈어?"

"응. 예쁜 내 새끼. 너무너무 잘했어. 전부 엄마 마음에 쏙 들어."


좋은 일이 있는 듯 싱글벙글 웃는 엄마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다 깨어났다. 현실의 나도 온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엄마를 보니 기뻐서. 엄마가 본인의 장례식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 다행이어서. 졸였던 마음이 놓여서. 그리움과 안도의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그 와중에도 엄마의 칭찬을 받아 기뻤다. 한평생 엄마의 인정과 칭찬을 기대하며 살아왔다. 꿈속의 나조차 그렇다는 사실이 좀 우스웠지만.




그 뒤로도 종종 엄마가 꿈에 나왔지만 그날처럼 선명한 기억은 그 이후로 딱 한 번뿐이다.

엄마가 죽고 두 달쯤 지났을 때 나는 갑자기 번아웃이 닥쳐오는 기분을 느꼈다. 엄마의 병간호, 두 아이 육아, 언제나 쌓여있는 집안일, 거의 혼자 해내야 했던 사후처리, 정리해야 할 엄마의 사업자 일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가 하던 과도한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내게 비로소 쉴 시간이 생겼는데 어쩐지 쉴수록 지치는 느낌을 받았다.


공허했다. 메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이 크게 뚫린 것만 같았다. 자려고 누우면 불안하게 심장이 뛰어서 위스키나 와인을 허겁지겁 마시고 감각이 좀 무뎌져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하루종일 처지고 피곤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엄청난 숙제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을 겨우 등원시키고 멍하게 누워있다 보면 집안일을 전혀 하지 못한 채 하원시간이 바짝 다가와있어 초조한 날들이 자꾸 늘어났다.


할 수 없이 정신과에서 약을 받아먹었다.

뇌파검사를 했더니 내 뇌파가 많이 망가져 있다고 했다. 예민함과 번아웃이 동시에 와서 몸은 한없이 늘어지는데 정신은 날카롭게 예민해서 몸과 마음이 모두 괴로운 상태라고 했다. 내가 '의학적으로' 그렇다는 사실을 의사가 확인해 주니 간사하게도 마음껏 더 늘어져버리고만 싶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약을 먹고 늪 같은 낮잠에 빠졌다.

꿈속의 나는 거실 소파에 기대앉아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보며 무기력하게 술을 먹고 있었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엄마가 들어왔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쯤의 엄마 모습이었다. 잘 꾸밀 줄 모르는 엄마는 그래도 학부모 참여 수업이라든지, 운동회라든지 학교에 와야 할 일이 생기면 하얗게 화장을 했다. 그리고 빨갛게 입술을 칠했다. 새빨간 패딩점퍼를 입고 앞머리에 뽕을 잔뜩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설픈 치장에 웃음이 나지만 그땐 엄마가 멋있어 보였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바쁘게 통화를 하며 급하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아'하고 울면서 어리광을 부리려 하자 엄마는 눈을 흘겼다. 상대방이 들으면 안 된다는 듯 전화기를 손으로 막고 말했다.


"너 조용히 안 해?"


엄마한테 혼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엄마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눈물과 어리광을 멈췄다.

엄마는 방금까지 나한테 정색을 해 놓고선 "아유. 예예 아무래도 그렇죠~~ 네 그렇게 할게요." 웃으면서 통화를 했다.

나는 엄마 옆에 돌처럼 굳어 그대로 멈춰 서있었다. 엄마는 통화를 마치더니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너 똑바로  해?"

"아 뭐를...."

똑바로 하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떠올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엄마가 지금 이쪽 세상(?)에서 얼마나 바쁜 줄 알아? 처리할 일이 산더미야. 엄마가 너까지 신경 써야겠어? 뚝해! 우는 소리 하지 마. 눈물 안 멈춰??"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더니 초등학교 시절 내내 들었던 그 소리를 했다. 우는 소리 하지 말라는 소리.


"엄마 바쁘니까 신경 쓰이게 하지 마. 알겠어?"

"아 알겠어....."


엄마는 다정히 바라봐주지도, 한 번 안아주지도 않고 사람처럼 문으로 들어와 놓고는 죽은 사람답게 갑자기 창문으로 나가려고 했다.

어느새 내 옆에는 내 딸 은유가 서 있었는데 엄마는 이제야 그걸 깨달은 사람처럼 갑작스레 뒤를 돌아보더니 햇살같이 밝은 얼굴로 (나 말고) 내 딸에게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사랑해 우리 강아지."

그리곤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날로 바로 정신을 차리진 못했지만 확실히 그 꿈은 선명한 계기가 되어 나를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게 해 줬다.

내가 그러고 누워있는다고 엄마가 기뻐할 것도 아니고 내가 행복해지는 것도 아닌데 내가 누구 좋자고 이러고 있나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요즘은 꿈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와도 비중 없는 엑스트라처럼 등장한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상당히 웃긴 꿈을 꾸다가 깨어난 어느 날 새벽이었다. 평소처럼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 그 웃긴 꿈을 차근차근 되새겨 봤는데 어느 장면에 엄마가 행인처럼 지나간 것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실수로 지갑을 쓰레기통에 버린 탓에 쓰레기를 샅샅이 뒤져야만 하는 사람처럼 잠에서 깨어나면 강박적으로 꿈을 뒤졌다.

엄마가 나오지 않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깊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꿈에 엄마가 나와서 어떤 계시나 정답을 주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지만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결정인데 좀 도와주지.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거야?'

서운함에 괜히 하늘을 흘겨보기도 했으나 이 또한 엄마의 뜻이겠지.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엄마의 계획이겠지.


별 거 아닌 일로 축 처져있거나 상심하고 있을 땐 엄마의 두 가지 모습이 떠오른다.

내 새끼 이뻐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다 잘했어. 엄마 마음에 쏙 들어." 하던 엄마와 "너 똑바로 해? 눈물 안 그쳐?" 정색을 하던 엄마.

둘 다 실감 나는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가 앞으로도 나한테 정답이나 계시나 혹은 로또번호를 알려줄 것 같진 않다. 그 두 가지 모습으로 엄마는 나한테 해줄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곰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엄마 마음에 쏙 들게' 잘 살아내야지. '눈물 뚝 그치고'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야지. 엄마가 꿈속에서 말해준 대로.

이제 더 이상 꿈을 조종할 수 있는 어린아이는 사라졌지만 소중한 손님을 둘이나 태우고 인생이라는 큰 배를 조종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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