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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Feb 13. 2024

엄마 없는 첫 명절, 뿌리 없는 나무의 초라한 잔가지

나에겐 아직 가족이 많이 필요하다.

<2023.9.30>


막히는 시간을 피해 늦은 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먼 길을 떠났다. 추석을 맞이해 서산 시할머니댁에 가려는 것이다. 남편의 외가와 친가는 모두 한동네라 빈 방이 많은 외가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오후까지 친가에서 추석 당일을 보낸 뒤 저녁에 다시 외가로 모이는 것이 시가 식구들과의 계획이었다.

제사도 없겠다 여행 가는 마음으로 가볍게 길을 나섰다.


밤운전으로 멀리 떠나는 길은 어딜 가든 다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뿌연 밤안개, 서늘하고 개운한 밤공기, 반복되는 누런 가로등 빛, 시원하게 뻥 뚫린 길. 끝없이 멀고 깊은 곳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만 같은 이 아련한 기분을 어릴 때부터 참 좋아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공허할까?




남편은 오늘도 본인의 뿌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 남편은 뿌리론자. 뿌리가 단단하면 가지가 잘못 뻗어나갈 수 없다는 얘기를 연애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다. 본인의 아버지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얼굴도 보지 못한 증조, 고조, 5대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존경하고 그분들의 약력을 줄줄 역사책처럼 외우고 있다.

그 덕에 나도 남편 작은할아버지(첫째 고모, 막내이모, 둘째 큰 아버님 등으로 대체 가능)의 일생에 대해서 5분 정도는 막힘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나도 물론 어머님 아버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시할머님 시할아버님은 또 얼마나 정 많고 따뜻하신 분들이신지 울엄마 살아있을 때는 명절 때마다 직접 농사지은 채소들 박스에 가득 담아 주시며

"엄마가 시골 사람이라 이런 게 그리울겨. 지난번처럼 고맙다고 선물 보내면 나 이제 아무것도 안 해줄 줄 알어." 다정한 으름장을 놓으시곤 했다.

직접 키우신 실한 육쪽마늘이며 늙은 호박만큼 두꺼운 애호박, 못생긴 감자와 고구마, 색이 연한 포도와 배추가 줄줄이 나오는 상자를 열어보며 어린이날 끝없이 과자가 나오는 선물상자를 받아 든 아이처럼 해맑게 좋아하던 엄마가 눈에 선하다.


시댁 어르신들은 모두 지혜롭고 단단한 나무 같은 분들이시다. 내 남편은 그중에서도 가장 튼튼한 가지로 자라났다.

그러니 남편의 뿌리론은 지겹긴 해도 설득력 없지는 않다. 연애할 때는 그런 면을 보고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만든 가족은 얼마나 귀하게 여길까? 가족의 기대에 어긋나거나 실망시킬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구나.

그리고 실제로 역시나 그랬다.


남편은 세상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세상 어디에 떨어져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낼 게 뻔히 보인다.

'전쟁이 나도 아니 세상이 멸망해도 갖은 수를 다 써서 너랑 애들은 살릴 거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는 지킬 수 있어.'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듯 사뭇 심각한 얼굴로 비장한 선언도 종종 한다.

그러니 그의 조상을 보러 가는 이 길, 지루한 밤운전 잠도 쫓을 겸 시작한 뿌리론쯤 한 번 더 들을 수도 있는 건데.

이상하다.. 왜 이렇게 공허할까?




시골에 도착하자 곯아떨어진 애들을 남편과 하나씩 들쳐 안고 서둘러 방에 들어가 눕혔다. 방 안이 먼지냄새로 가득해 잠깐이라도 환기하려 창문을 열자 불을 때우고 있는 마당 아궁이에서 피어난 매운 연기와 싸늘한 시골바람이 동시에 들이쳤다.

둘째의 모세기관지염이 아직 다 낫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아무리 무던하게 육아하는 나라도 심란하긴 했다.


외삼촌님과 막내이모부님이 술을 한 잔 하고 계시길래 남편을 얼른 합류시키고 나는 애들 옆에 몸을 뉘었다. 하루종일 무거운 공허함에 눌려 피곤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모기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그렇듯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군지 깨닫느라 두리번거리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불현듯 무엇보다 나는 빨리 모기를 잡아야 하는 사람이란 걸 자각했다. 첫째 아이는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고 진물이 나도록 긁어대서 흉이 지고 만다.

나는 그런 아기의 엄마다. 현실 파악 끝.


플래시를 켜고 벽 이곳저곳 살피며 모기를 찾는데, 모기인가 싶으면 얼룩이고 모기인가 싶으면 또 다른 얼룩이었다. 얼룩이 왜 이렇게 많나 생각해 보니 이건 모두 지난 몇 십 년간 수 십 명의 사람들이 피 빨아먹은 모기를 내리쳐서 잡아낸 흔적들이었다.

그 모기 살육의 역사 현장 속에서 나는 갑자기 복받쳐 가만히 울었다.


내 남편이 어릴 때 이렇게 누워 곤히 잠을 자고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젊은 모습의 어머님 아버님께서 모기를 잡으려 어둠 속에서 팔을 휘휘 저으셨겠지.

할머님, 할아버님은 이미 연세가 90세에 가까워지셨는데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우리는 여기서 모기를 때려잡을 수 있을까?

훗날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보낼 시간들과 그보다 더 먼 미래, 예를 들면 할머님 할아버님의 죽음으로 이 공간이 소멸되었을 때를 상상하니 나는 벌써 강력한 그리움을 느꼈다.

이곳은 내 남편의 뿌리만이 아니다.

나와 한 몸 같은 내 아이들의 근원이고 뿌리인 것이다.




기어코 모기를 잡아내고 아이들 옆에 다시 누웠다.

매캐한 연기, 서늘한 바람, 풀벌레 우는 소리,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밤. 나는 아이로 돌아가 강원도 외할아버지댁에 누워있는 듯하다.

그때도 이런 바람이 불고 이런 소리가 들렸었지. 먼지묵은 이불을 덮고 흙바닥을 달리고 소름 끼치게 차가운 강물에 무턱대고 뛰어들었지. 친척오빠 자전거 뒤에 앉아 별똥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걸 봤었는데.


내 뿌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차근차근 성실히도 사라졌다. 외할머니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스물세 살에 친할머니는 서른 살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기어코 엄마마저 떠났다.

이제 명절에 놀러 갈 시골도 돌아갈 친정도 나에겐 없다.

그래, 그 사실이 오늘 하루 나를 이렇게 공허하게 만들었다.


나는 항상 엄마를 나무 같다고 했다. 지독히도 단단하고 언제나 한결같은 내 엄마. 그래서 엄마가 죽고 수목장을 해주었다. 한평생 나무 같던 엄마는 나무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

문제는 나다. 엄마라는 뿌리가 없으니 엄마에게서 뻗어 나온 내가 너무 나약하고 볼품없는 잔가지 같았다.

나라는 인간의 시작과 근원인 엄마를 잃어버리자 산들바람에도 휘청거리다 콱하고 부러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정말로 외롭고 공허했다.

이렇게 북적이는 내 남편의 가족들. 단단하고 빈틈없이 엮여있는 이 뿌리들에 바보같이 샘을 낼만큼.




니뿌리 내뿌리 할 것 없이 이제 우리는 아이들로 서로 얽혀있는데 뭘 그리 공허해했을까.

나는 이곳에 좀 더 정을 주기로 한다. 우리 아이들이 이 냄새를 이 소리를 이 온도를 선명히 기억할 수 있게 최소 10년쯤, 욕심을 부리자면 20년쯤 이곳에 오고 싶다.


무엇보다 나도 아직 명절에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나에겐 아직 사랑을 나눌 가족이 많이 필요하다. 그 가족이 사랑이 넘치는 좋은 사람들이라서 감사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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