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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Feb 16. 2024

지금 당장 엄마에게 물어야 할 질문 네 가지

그 누구도 아닌 꼭 본인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들.

자, 만약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아래 네 가지 질문을 가능한 한 빨리 부모님께 여쭤보라고 다짜고짜 권하겠다.


1. 사망 후 장지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 화장할 것인지 묘를 만들 것인지, 묘를 만든다면 선산이 있는지, 없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 화장을 한다면 그 후 납골당, 수목장, 해양장 중에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2. 연명치료와 장기기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인공호흡기 등을 사용하여 목숨을 연명하는 치료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면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신청할 것인지.

-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길 경우 장기기증을 하고 싶은지.


3. 가족들이 알지 못하는 돈거래가 있는지.

- 돈을 빌렸거나 빌려준 사람이 있는지. 차용증이나 거래내역이 확실히 있는지


4. 내일이 내가 죽는 날이라면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 할 수만 있다면 영상으로 찍어두면 두는 것을 추천. 어색하다면 자필 편지로 남겨두면 좋겠다.




물론 이런 불편할 수 있는 질문들을 특종을 취재하러 온 기자처럼 마이크를 갑자기 들이밀며 할 수는 없다. 특히나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면 아직 본인의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으셨을 수도 있는데 벌써부터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자식에게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끼실 수도 있다. 그럴 땐 나를 팔면 된다. 나는 애초에 그러려고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지인이 있는데 최근 엄마가 돌아가셨고 제대로 준비를 안 해서 장례식을 허둥대며 치르고 엄마한테 묻지 못한 질문들 때문에 후회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시길.


나는 기꺼이 독자분들의 후배가 되고 선배가 되고 친구가 되고 직장동료가 되겠다. 몇 번이고 엄마를 잃은 가여운 사람이 되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엄마 죽음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머저리가 되겠다. 그래서 단 한 명이라도 미래에 다가올 부모님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더 잘 준비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가 되어도 상관없다.


물론 위의 네 가지 질문 말고도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다.

엄마의 첫사랑, 학창 시절, 나를 키우며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시기, 그걸 이겨낸 방법, 외할머니와의 행복했던 추억, 이모들과의 다툼도 속속들이 알고 싶다.

무엇보다 40년에 가까운 긴 세월 엄마는 외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대체 어떻게 견뎌냈는지 그 비법이 가장 궁금하다.


나는 엄마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눴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가 죽고 나서야 내가 아직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걸 사무치게 깨달았다.

이제 다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그러나 그런 질문들이 아쉬움과 궁금함의 영역이라면 내가 적은 네 가지의 질문은 엄마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다.

엄마의 마지막을 최대한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돕고 엄마가 죽고 나서도 금전적으로 손해보지 않게 하며 동시에 엄마 때문에 손해 보고 원망하는 사람도 없게 해주어야 한다.

또한 엄마가 죽고 나서도 우리가 엄마를 찾아갈 만남의 장소를 미리 약속해 놓는 일이다.


수차례 말했듯 우리는 이 질문을 엄마에게 명확히 묻지 못해서 엄마가 살아있을 때 지나가며 한 말들을 모으고 모아 그중에 겹치는 부분이 있으면 사실로 간주하고 여기저기 한 말이 다르면 빈말로 여기며 그렇게 퍼즐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위의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맞추었던 퍼즐은 이러하다.




1. 엄마는 나에게 수목장을 해달라고 했다.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납골당은 답답해서 싫다고 했다. 땅에 묻히는 건 더 싫고 혹여나 땅에 묻는다면 나중에 아빠가 죽어도 엄마랑 같이 묻지는 말아 달라했다. 언니에게도 동생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길래 그게 엄마의 진심이라 믿고 엄마를 수목장 해주었다.

미리 답사를 안 했기 때문에 장례지도사에게 부탁해 상조회사와 연결된 장지전문가를 장례식장으로 불러 팸플릿과 동영상을 보고 골랐다.

수목장, 해양장, 납골당은 미리 방문해서 사전답사를 할 수 있다.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고 자리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지도 볼 수 있다. 물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까 미리 예약을 해두는 건 가족들과 더 상의를 해야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할지는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사진만 보고 고른 곳인데 정말 괜찮을까' 장례식 내내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는데 화장이 끝나고 수목장에 도착하자 우리 가족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여긴 엄마가 무조건 좋아할 곳이야."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닷길을 시원하게 달리다 보면 조용하고 한적한 절 하나가 나타난다.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스무 개 남짓한 계단을 오르면 수천 평의 드넓은 수목장에 수 백 그루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줄을 지어 심어져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린다.


수목장을 하든 묘지를 하든 흙이 되어 순식간에 자연으로 돌아가버리겠지만 나의 영혼이 잠들 곳,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내 가족들이 나를 보러 올 곳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도 큰 행운 아닐까?


엄마 나무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나무에 엄마의 영혼이 감겨있는 듯하다.

엄마도 나무가 되어서 행복하겠지. 우리 엄마는 뿌리가 깊고 튼튼한 나무 같은 사람이니까. 엄마다운 마무리를 한 것 같다.




2. 엄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등록을 해놓았다. 물론 아직까지는 환자가 등록을 해놓아도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해달라고 하면 거절할 수 없는 게 병원의 입장이라고는 들었다. 엄마가 등록을 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중환자실에 실려간 뒤 엄마의 연명치료를 동의하냐고 나에게 연락이 온 걸 보면 실제로 그런 것 같다.

연명치료에 동의하는 가족의 마음을 너무나 이해한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다. 코마상태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난 기적 같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우리 엄마가 그 기적이 되지 말라는 법 있어?' 하는 욕심이 들고야 만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중환자실에 계시다 보면 호흡이 안 될 경우 인공호흡기 기관 삽관을 하게 될 수 있는데 동의하냐고 묻길래 정말로 그게 의미가 있냐고 하니 '일단 인공호흡기를 삽관하게 되면 함부로 제거할 수가 없다, 보호자가 이제 그만 떼 달라고 한다고 뗄 수가 없다, 어머님의 경우 상황이 심각해 어떻게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그 뉘앙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가 그 기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뭘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은 당장 기관을 삽관해야 할 호흡곤란의 상황이 오지도 않았고 이미 그런 연명치료가 무의미할 정도로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한 엄마가 나에게 수차례 인공호흡기 달고 목숨을 연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사자가 생전에 연명치료 절대 싫다고 자연스럽게 생을 마치고 싶다고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구태여 결정할 필요 없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암환자 카페를 보면 기관 삽관뿐 아니라 기관 절제까지 하고도 중환자실에서 잘 회복하고 나온 기적 같은 사람들도 있다. 또한 본인이 강력하게 거절 의사를 비치더라도 의료진의 응급 판단으로 보호자의 동의를 급하게 받고 기관 삽관을 하기도 한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어떤 결정을 할지 혼란스러울 것 같지만 당시 나는 상황의 심각성에 평소 연명치료에 대한 엄마의 생각을 더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은 결정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부모님께서 연명치료 해라 마라 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독자분들이 어떤 길을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엄마 아빠의 한마디가 나침판이 되어줄 수는 있다.


장기기증의 경우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지만 들은 사람이 나뿐이어서 엄마의 의중을 확신할 수 없었고 엄마는 이미 눈이며 장기들이 많이 망가져있어서 아마 쓸 수 있는 장기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장기기증은 내가 세상을 떠나는 동시에 세상에 남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데서 엄청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유가족의 입장에서 절대 쉬운 결정은 아니다. 생전에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보면 좋겠다.




3. 엄마가 지인 몇 명에게 돈을 빌려준 것을 우리도 알고 있었다. 다만 엄마와 너무 가까운 친구사이고 우리에게도 친이모와 다름없게 지내온 사이라 차용증을 쓰지는 않았다.

인터넷뱅킹을 할 줄 모르는 엄마를 대신해 내가 이체를 해줬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자 이모들하고 자리 잡고 앉아 언제 얼마를 빌렸니 그중 얼마를 갚았니 하고 있을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일이 아주 껄끄러워졌다. 일단 언제쯤 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정서상(?) 합당할지 고민이 됐다. 이모들도 그러신 것 같았다. 다행히 먼저 연락을 주셔서 만나러 갈 날을 정했는데 마음이 계속 불편하고 어려웠다. 엄마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데 설마 조카 같은 우리에게 '차용증도 없는데 배 째라' 하시겠어? 하는 마음과 동시에 그렇게 되면 믿었던 사람에게 받을 엄청난 배신감에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지레 겁을 먹었다.


깨끗하게 통장내역을 정리해 가려 출력했는데 이게 웬걸, 엄마와 이모들은 계도 하고 있었고(엄마가 계주였다.) 이자명목으로 돈을 주기도 하고 다 같이 공동구매로 뭘 사기도 했다. 또 간간히 빌린 돈을 다시 타인에게 잠시 빌려주어 타인이 대신 갚기도 하며 거래내역이 엉망진창이었다.


공개적인 글이라 자세하게 쓰기는 어렵지만 다행히 이모들과는 일단 잘 정리가 되었다. 이모들이 먼저 나서서 '엄마와의 정이 있고 하늘이 보고 있는데 얼마나 호위호식하고 살겠다고 그 돈을 안 갚겠냐'며 먼저 우리들의 걱정을 어른답게 잠재워주셨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아 다행이었다 엄마도 나도.


부모님의 채무관계를 미리 확인하고 돈을 빌려주셨는데 차용증을 쓰지 않았다면 꼭 써두시라고 하자.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을 안 해주실지도 모른다. 자식이 부모의 재정상태를 지나치게 간섭할 권리는 없으니 과감히 나를 또 팔아라.

지인의 엄마가 죽고 나서 엄마에게 돈을 빌린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뻥을 쳐라. (이모들 죄송해요.) 액수는 관심이 없고 달라고도 안 할 테니 꼭 차용증 써두라고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증빙을 남겨놓으시라고 당부해 놓으시길 바란다. 나중에 곤란할 일이 사라진다.

또 이모 외삼촌 등등에게 등짝 맞을 일도 없다. '엄마가 아파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니들이 잘 챙겼어야지'하고 만날 때마다 아직까지 등짝을 얻어맞고 있다.


반대로 부모님이 어딘가에서 돈을 빌리셨다면 자식들이 갚아야 한다. 사후에 상속포기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때는 상속받을 유산과 부모님의 부채를 계산하여 상속포기, 한정승인 등의 선택지가 생긴다.

또 상속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당연하게도 엄마가 살아생전 쓴 카드값, 핸드폰비, 연체된 세금과 사대보험료 등도 모두 납부해야 한다.

죽음 뒤에도 숫자는 기어코 남는다.




4. 무엇보다 내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엄마의 마지막말. 그것을 듣지 못한 게 한이 된다.

하고 싶은 말이 무궁무진하게 많겠지만 그중에 엄마가 나에게 제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죽기 전에 말하건대 ~해라. ~는 하지 마라."라는 유언이 있었으면 평생 그게 내 인생의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았을까.

녹화해 두거나 손 편지로 써둔다면 내가 살면서 흔들릴 때, 주저앉고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그걸 붙들고 기어코 일어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살아생전 잔소리 하나하나까지도 유언으로 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자식이 제일이다."부터 "문지방 밟고 서지마라."까지 새겨들어야 할 엄마의 유언이 너무 많이 남아버렸다.


엄마의 정신이 멀쩡할 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며 동영상을 찍어 둘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섬망이 오기 전에는 나의 이런 행동이 엄마를 상처 주거나 겁을 먹게 할까 두려웠고, 섬망이 온 후에는 이런 사소할 수 있는 일도 엄마가 해낼 수 없었다.

그러니 부모님의 정신이 온전하실 때 "엄마 인생 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뭐야? 엄마는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살아보니 인생은 뭐 같아?"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가벼운 대화처럼 한 번 던져보면 어떨까?

갑자기 유언 한마디 해달라고 하면 부모님께서 놀라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시거나 질병이 있으시다면.. 아니 모르겠다, 젊고 건강한 부모님이실지라도 어쩌면 우리가 부모님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생각보다 촉박할지 모를 일이다.

위의 질문을 다 쏟아내고 답을 들었더라도 내일이든 50년 후든 부모님의 죽음은 언제나 황망하고 슬플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나름 준비해 두었다는 생각에 오늘을 더 평온한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죽음이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게 대책 없이 마냥 얻어맞는 기분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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