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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Mar 22. 2024

엄마가 죽고 고양이도 죽고 모르는 남자도 죽었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나의 자세

2023년 8월 3일 엄마가 죽고 2023년 11월 30일 우리의 고양이 정배가 죽었다. 2023년에 번째 맞이하는 우리 가족의 죽음이었다.

정배를 우리의 고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 모두가 돌아가며 그의 주인(주인? 과연 정배가 그렇게 생각할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 언니가 어떤 커뮤니티에서 파양 위기에 처한 한 고양이 입양글을 보고 그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파양 이유는 순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자신의 형제와 친구들을 깡패처럼 패고 다니며 트러블을 일으켰기 때문. 언니는 파양 이유까지 귀엽지 않냐며 요상한 포인트로 우리를 설득하려 했다.

나와 엄마는 키우는 거라곤 살아있는 개미 한 마리도 달갑지 않았고 동생은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었다. 언니가 혼자 다 케어하다 결혼하면 조용히 데리고 사라진다(?)길래 심드렁하게 그러라 했다. 어차피 언니는 내년에 결혼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무심했던 우리가 그 동그란 얼굴의 신사 같은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아이는 무관심하기에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고 사랑하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사랑스러웠다.

오로지 귀여움만이 자신의 의무이자 책임이란 듯 한껏 귀여움을 뽐냈고 할 일을 다했으니 늘 위풍당당했다.

깡패 출신인 것이 믿기지 않도록 젠틀했다. 너무 귀여워서 가끔 꼭 껴안고 귀찮게 할 때를 제외하곤 우리에게 함부로 주먹을 쓰지 않았다.



엄마가 티브이 앞에 앉아 산처럼 쌓인 마늘을 지루하게 까고 있을 때는 마주 보고 앉아있어 주었다.

"할머니 기다려주는 거야? 참나 살다 별 고양이 응원을 다 받아보네."

별로 웃긴 일도 아닌데 엄마는 한참 웃었다.

동생은 알레르기약을 먹으면서까지 정배 털을 빗어주고 간식을 챙겨줬다. 군대에 가 있을 때는 안부전화를 걸어 자꾸 정배를 바꿔달라 했다. 정배는 진지하게 핸드폰을 정배귀에 대주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곤 했다.

나와 언니로 말하자면 자청하여 김정배의 노예가 되었다. 무릎을 꿇고 정배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그렇게 정배는 우리 가족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언니가 결혼식을 마치고 정배를 데려가려고 하자 우리는 출장이 잦은 둘의 집에 그 귀여운 신사 고양이를 혼자 있게 할 순 없다며 보내주지 않았다. 언니가 원할 때 언제라도 정배를 보러 올 수 있고 정배 관련한 모든 비용을 대는 것으로 양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2018년 엄마의 암 판정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집에 고양이가 있다고 하니 엄마는 앞으로도 면역력이 계속 떨어질 테고 감염에 취약해질 테니 엄마에게는 좋지 않다고 했다. 특히나 항암이 끝나고 할 자가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은 무균실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아주 작은 균에도 엄마가 위험해질 수 있는 수술이었다.

당시 언니도 출장과 교육이 거의 없어졌고 정배와 함께 사는 것을 계속 원해왔으니 정배는 언니 집으로 이사를 갔다.


정배는 매년 건강검진 때마다 이렇게 건강한 유전자의 고양이는 드물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했다. 언니는 노묘들이나 한다는 정밀 건강검진을 정배가 살 때부터 매년 시켰다. 잔병치레도 거의 하지 않았다.

2023년 초에도 이미 한차례 건강검진을 마친 터였다. 그런데 11월 초 정배가 갑자기 밥을 잘 먹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으니 똥도 잘 못 쌌다. 언니는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가 '내 고양이 건강염려증' 환자답게 또다시 건강검진을 시켰다.

그저 확인용이었을 뿐이다.


"정확한 건 CT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폐종양이 의심되네요."


겨우 몇 달 전에 엄마가 암으로 죽었는데 우리 가족에 또 종양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는 원망은 죄 없는 의사 선생님을 향하기엔 적절치 않으니 그저 언니 입안에 머금다 삼켜졌다.


"만약 악성 종양이 맞다고 해도 정배는 노묘라서 수술을 하지는 못할 겁니다."


우리는 이 말이 수술을 해서 건강히 회복할 가능성보다 수술 중 사망하거나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거나 또는 커다란 후유증을 갖는다는 말임을 알고 있다.

순진하게 모른 척하기에는 이미 죽어가는 삶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그저 밥을 좀 안 먹던 이 고양이는 우리가 진실을 알아버리자 이제야 마음 놓고 아프겠다는 듯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그 속도가 인간에 비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엄마의 간병 생활을 해왔기에 앞으로 우리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다면 처음보다는 의연하고 전문적이게 대처할 수 있을 거란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작은 고양이가 죽어가는 속도는 인간과 달랐다. 엄마가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면 우리의 고양이 김정배는 달리기 선수답게 삶을 끝내려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CT 결과 정배는 온몸에 종양이 퍼져있다고 했다. 어깨뼈는 이미 녹았단다. 헛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터 종양이 생겨 어떻게 이렇게 빨리 번져버린 건지 황당하고 황망했다. 왜 그동안 티를 내지 않았는지 아니면 정배가 보낸 작은 신호를 눈치채지 못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정배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바닥에 붙어 누워만 있기 시작했다. 굶어 죽게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병원에서 수액을 맞히고 마약성 진통제 패치를 붙이고 집으로 오는 매일이 반복됐다. 말을 할 수 없는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괴로운지 억지로 먹는 것이 괴로운지 아파서 괴로운지 아니면 그 모두인지 알 수가 없어 우리도 괴로웠다. 처음 진료를 받은 동네 동물병원과 정배 CT를 찍은 큰 동물병원에서 모두 조심스레 안락사를 제안하셨을 정도로 정배의 건강은 악화되어 갔다.


고양이도 섬망이 오는 걸까? 그 깔끔쟁이 고양이 정배가 턱이 물에 젖어 뚝뚝 물을 흘리고 다녔다. 바닥이 흥건히 젖은 화장실에 누워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데려와 털을 말려주기도 했다. 이 상황에 감기까지 걸리면 어쩌려고 얘가 이러나 애간장이 탔다.

허공을 보고 멍하니 있는 걸 보면 너무나 엄마의 마지막 모습과 닮아 있어서 보기가 힘들었다.

정배야. 정말로 할머니한테 가려는 거니?


우리는 이제 죽음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안다.

'천천히 가라고 조르지 않을 테니 아프지 않게 가. 가장 편안하게 가. 정배야.'



정배는 괴로워 보였다. 먹지도 쉬지도 못하는 며칠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무거운 결정을 해야만 했다. 수의사 선생님께서도 그게 맞는 선택이라며 우리의 죄책감을 덜어주려 애쓰셨다. 

우리는 병원 한 방에 모여 수의사 선생님께서 정배를 보내주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네가 우리 고양이어서 정말 행복했다고 쉴 새 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이 기시감..

엄마의 중환자실에서 임종면회를 했을 때와 같았다.

엄마한테 했던 말들과도 똑같았다.

아, 너무 고단했다. 이제 제발 내 곁에서 아무도 안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잘 가. 정배야. 사랑하는 우리 정배. 여전히 아기같은 우리 정배.




겨울이 지나가려는지 어느새 날이 많이 따뜻해졌다. 시간은 흐르고 내 아픔들은 차곡차곡 개어서 마음의 서랍 속에 잘 넣어두었다. 가끔 내가 열지도 않았는데 벌컥 열려버리기도 하지만 그날은 슬픔이 내 통제하에 있는 평온한 하루였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기분 좋게 아침을 사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파트 우리 동 앞에 경찰들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흰 천으로 덮어둔 사람의 형상을 보고야 말았다. 미처 다 가리지 못해 천 밖으로 빠져나온 남자의 손까지.

화단도 아니고 정확히 동 입구에 떨어진 탓에 집으로 들어가려면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에요?" 경찰에게 묻자

"일단 지나가시면 됩니다." 하고 길을 만들어 나를 지나가게 해 주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집으로 달려들어와 거실 끝과 끝을 하염없이 걸었다.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바로 내 눈앞에 죽은 사람이 있었다. 그를 비켜 지나왔다.


한참을 걷다가 멈추자 궁금해졌다.

'이제 없을까?'

우리 집은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의 14층. 나는 무서워서 단 한 번도 복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적이 없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문을 슬며시 열고 나가 두 손을 모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는 아직 그대로 누워있었다.


뭔지 모를 행정적 절차 때문에 바로 옮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도망치듯 뛰어 들어갔다.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인 이 높이에서 대체 어떤 고통이 있었으면 뛰어내릴 수 있던 걸까.

종교도 없으면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위에 손을 모아 잡고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저분이 편안함에 이르게 해 주세요. 이제 모든 걸 내려놓게 해 주세요. 제발요."


다음날, 아침이 오고 어쩐지 유난히 밝다 했더니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얬다. 이 정도면 올겨울 제일 많이 온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폭설이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러 나오니 동 분위기가 영 흉흉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왜 하필 여기서.."

"무서워서 잠이 안 왔다니까"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인사를 하 어제일과 관련해서 저 아기엄마는 뭐 한마디 할 말 없을까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기대에 부응하 입을 열었다.


"눈이 참 많이 왔네요. 헤헤"




나는 모르겠다. 나는 이제 살고 죽는 게 뭔지 정말로 잘 모르겠다. 내가 잘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내가 삶과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거실 창 밖으로 그림 같은 하얀 세상을 한참 둘러보았다. 참 예쁘다.

어제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끝마치기로 하신 사연 모를 그분이 이 눈부시게 빛나는 풍경을 봤다면 혹시 한가닥 희망을 품고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으셨을까. 어제 좀 펑펑 내려주지.

괜한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다 단호하게 생각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연애 한 번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사람이 후회가 없다. 이럴걸, 저럴걸, 있을 때 잘할 걸 후회를 하는 건 언제나 열심히 사랑하지 않은 사람의 몫.


운명이고 나발이고 모르겠고 그냥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꿈꿀 수밖에 없다고.

떠난 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그토록 잘 살아내보고 싶었던 이 세상에서 또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이다.



이 어리석은 중생. 인간들은 왜 이렇게 복잡한거야. 나처럼 살란 말야 ! 젠틀하게 쿨하게 귀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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