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호 Mar 26. 2024

엄마 삼우제와 49재 꼭 해야 할까?

삼우제와 49재

평생 살면서 삼우제를 삼오제로 알고 있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삼일동안 장례를 치르고 오일째에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겠거니 내 멋대로 해석하고 살아온 것이다. 인터넷에도 삼우제를 치면 '삼오제가 맞나요? 삼우제가 맞나요?' 하는 글들이 종종 있는 걸 보니 이 단어에 대한 혼돈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올바른 명칭은 삼우제이고 장례를 치른 뒤 초우제와 재우제 두 번의 제사를 마치고 세 번째 지내는 제사라 해서 삼우제다. 초우제는 고인을 땅에 묻고 산에서 돌아온 날 저녁에 지내는 제사이고 재우제는 산에서 돌아온 다음날 식전에 지내는 제사다. 요즘은 고인을 산에 묻는 일 자체도 적어졌고 장례 절차도 간소화돼서 이런 복잡한 제사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삼우제만큼은 초우제, 재우제보다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비록 삼오제라는 틀린 이름으로 자주 불리곤 하지만. (어떡하겠니 삼우제야.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렴.)


누가 주도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도 자연스레 삼우제를 지냈다. 장례식 끝나고 다다음날 지내는 제사아직 엄마 장례를 치르고 난 피로도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이모들이 전이며 나물, 탕국, 과일 등을 모두 준비해 주셔서 우리는 쭐래쭐래 몸만 갔다. 이틀 만에 보는 엄마 나무가 반가워서 꼭 안아주었다. 나무도 팔이 있어 나를 따스히 안아주면 참 좋으련만.


엄마 나무 앞에서 삼우제를 지냈다.

엄마는 한창 날이 뜨겁던 8월 초에 돌아가셨다. 엄마를 나무에 묻는 날에는 수목장 관리소에서 넓은 천막을 쳐주셔서 그늘이 있어 그래도 참을만했는데 삼우제날은 내리쬐는 볕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시커먼 옷 입고 왔더니 더워 죽겠네. 엄마, 날 좋을 때 갔어야지! 이모들은 꼭 오래오래 살다가 봄 아니면 가을에 가. 더울 때 가면 나 불참~~"


우리가 너무 더워 힘들어하면 엄마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할까 봐 시종일관 장난치면서 웃는 얼굴로 제사를 마쳤다. 엄마가 있는 곳은 근처에 맛있는 칼국수집이 많아서 다 같이 칼국수를 먹고 바다 보며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엄마를 보러 오는 게 늘 이렇게 설레는 소풍날 같았으면.




49재는 고인이 임종한 날로부터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까지 중음(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에 낀 세상)에서 머무는 49일 동안 7일마다 총 7번의 제사를 지낸다. 그중 일곱 번째 제사인 49재가 모든 의식을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이 막제를 정성 들여 지내는 것이다.


우리는 49재에 간단히 제사상을 차려 엄마 나무 앞에서 절을 하고 우리끼리 밥 한 끼 먹으려 했다. 엄마가 종종 절에 다니긴 했지만 독실한 불교신자도 아니었고 요즘은 삼우제니 49재니 각종 제사들을 공들여 지내는 추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 49재를 절에서 스님께 맡겨 정성 들여 지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연인즉슨, 2020년에 어부셨던 나의 작은아빠가 배에서 추락해 돌아가셨었다. 그때 엄마친구에게 소개를 받은 절에서 엄마가 49재를 지내드렸다. 엄마친구가 아는 분이 그 절에서 스님을 도와주는 보살이셨던 것이다. 나는 그때 만삭이어서 참석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우리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전해 들은 그 절의 보살님이 엄마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유호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면서. 그걸 듣고도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때 유호 작은아빠 49재를 지내고 나서 유호엄마가 나한테 이랬거든."

'이렇게 정성 들여서 49재 지내 보내드리니 제 마음이 너무 편하네요. 나중에 내가 죽었을 때도 우리 애들이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요.'


우리 엄마 수목장을 모신 절과 이 보살님이 계시는 절은 완전히 다른 절이라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신 말씀 아닐 것이다. 이 이야기의 진의 여부는 알 수 없으니 차치하고라도 일단 들은 이상 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0만 원이 넘는 거금이었지만 우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돈지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엄마를 위해서라면 뭔 지랄이라도 못할 게 없었다.




엄마의 49재.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비가 내렸다.

엄마의 49재 날에는 아침부터 비가 퍼부었다. 한 달 내내 그렇게 찌는 듯이 덥더니 근래 없던 폭우였다.

절에 가는 길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비를 닦아내는 와이퍼가 바삐 움직였다. 아이들은 아늑한 차 안에서 아득한 빗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잠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우나.. 우리 때문에 슬퍼서 우나, 이승을 떠나려니 아쉬워서 우나. 울지마 엄마.




정성 들여 차린 제사상 앞에서 스님과 보살님들이 두 시간 넘게 염불을 외우며 엄마를 극락왕생에 이르게 하려 애를 쓰셨다. 엄마만 불교이고 언니와 형부는 기독교, 그 외 나머지 가족은 무교인 다종교 가족으로서 그런 종교의식에 설득되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엄마가 고통 많던 이 세상을 떠나 편안한 어딘가로, 아름다운 무엇이 되어 그저 행복하고 평안하기만을 바라며 절을 했다.

문이 활짝 열린 법당 밖으로 후드득 비가 퍼붓는 소리, 잔잔히 읊조리는 불경 소리, 일정한 간격에 맞춰 두드리는 목탁 소리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모든 것이 공포스러웠는지 자주 울었다.


아이들은 울다 지쳐 법당 방석을 덮고 잠이 들고 우리는 엄마의 모든 과업을 씻는 관욕이라는 의식을 함께 치르고 병풍 뒤쪽으로 가 엄마가 입고 떠날 옷을 보고 절을 했다. 그 병풍 뒤쪽에는 아마도 제사를 지냈거나 이제 지내야 할 여러 사람들의 영정사진이 미리 걸려있었다.

백발의 노인부터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었다.

살고 죽는 게 이렇게나 두서없다. 엄마뿐 아니라 모두의 평안을 빌며 절했다.


엄마 옷과 영정사진 태우는 중

절에서 이미 엄마가 입고 떠날 옷을 준비해 주지만 우리는 옷 하나를 더 태웠다. 최근에 나와 언니가 마련해 주었던 새 옷. 6월에 나의 둘째와 조카가 돌을 맞이하는데 항암 부작용과 나빠지는 신장으로 퉁퉁 부어버린 엄마가 입을 옷이 없을 것 같아 새로 사준 옷이다. 돌잔치를 코 앞에 두고 엄마가 자주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했고 그대로 퇴원하지 못한 채 병원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주인 없는 새 옷이 되었다.


'엄마. 예쁜 옷 입고 가.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무시 안 해. 저 아줌마 멋쟁이라고 다 놀고 싶어 할걸.'


죽은 사람 앞에 두고 이승 떠나는 날까지 참 세속적인 생각을 한다 싶었지만 엄마가 어느 세상에 있든 초라하지 않길 바랐다. 제일 빛나는 존재이길 바랐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들.

엄마가 예쁜 옷 입고 저 세상으로 가야 한다거나 엄마가 이승에서 과업을 다 털어야 다음 생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난다거나 하는 이런 생각들.

이런 건 다 종교적이거나 관념적인 것들이다. 죽음 이후에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살아 있는 사람들 편하자고 하는 일들이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다.


삼우와 49도 마찬가지다. 이 제사들은 특히나 불교적인 개념이니 불교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꼭 해야 할 필요가 더더욱 없다. 우리는 엄마가 불교신자인 데다가 작은 아빠를 모신 절의 보살님이 하신 말씀이 엄마의 유언 같아 무시할 수 없어서 모두 한 것뿐이다. 그게 우리의 마음을 편히 만들어주는 길이니까.


나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고 한평생 엄마와 제사를 지내왔지만 제사상 올리는 법이라든가 제사 절차 같은 것을 전혀 모른다. 조선 시대에 이 나이 먹고 이런 거 모른다면 흉이었지만 이젠 그렇지도 않다.

앞으로 지낼 엄마 제사는 구색만 대강 갖추고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올려 절을 한 뒤에 술도 마시고 엄마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며 밤새 놀 것이다. 아빠는 뭐 그런 개떡 같은 제사가 있냐고 호통을 치겠지만 이제는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해질 시대가 왔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진심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찾아본 결과 기독교지만 49를 그냥 넘어가기 불편해 음식을 올리고 추모예배 드린 뒤 가족끼리 맛있게 먹었다는 사람, 불교지만 상술인 것 같아서 49 안 했다는 사람, 49 대신 50일, 100일 감사예배 드렸다는 사람, 엄마가 피자랑 회를 좋아서 상에 올리고 엄마 사진 올린 뒤 같이 식사했다는 사람.

백 명의 고인에 백 개의 제사 방법이 있었다.


형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행위이든 잘 다듬어진 형식이 있으면 그걸 해내면서 진정성이 곁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에서 형식이 진심을 이길 수 없다. 형식을 챙기느라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낀다면 그게 옳은 일일까?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엄마의 49이전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덥더니 49 날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그다음 날부터 갑자기 시원한 가을이 시작됐다. 한평생 우리가 힘든 건 다 대신해 주고 좋은 것만 가져다주던 우리 엄마가 떠나면서까지 지긋지긋했던 여름을 가져가고 선선한 가을을 내주고 간다. 엄마답게.


엄마가 돌아가시고 매일 눈물 나게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졌다. 어쩌면 하늘은 언제나 아름다웠는데 내가 이제야 자주 올려다보게 된 걸까?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에 간다는 그 관용적인 표현 때문일까, 틈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독 크고 아름다운 구름을 보면 "엄마 구름이네." 혼잣말도 했다.



이제 엄마는 이승에서의 모든 여행을 마치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갔다. 엄마의 마지막은 몇 걸음 걷기조차 힘들어 늘 땀을 쏟아내던 모습이지만 엄마는 이제 육체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져 어딘가를 훨훨 날고 있을 것이다.


저혈압이 없고 괴사 된 다리도 없고 망가진 폐도 없고 온몸에 번진 종양도 없는 곳. 엄마를 붙잡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몸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멋대로 차린 제사상일 테지만 매년 제사는 지낼 거니까 그래도 한 번씩은 들여다봐주었으면. 엄마가 그렇게나 좋아했지만 몇 년동안이나 먹을 수 없었던 신선한 회랑 막걸리를 잔뜩 올려줄 작정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엄마.




삼우제(三虞祭): 장사를 지낸 후 세 번째 지내는 제사.


49재 (四十九齋): 대승 불교식 장례 의식으로, 고인이 죽은 후 초재부터 1주일(7일)마다 7번씩 지내는 재(齋)를 말한다.


삼우제는 제사 제, 49재는 재계할 재 자를 사용합니다

이전 17화 엄마가 죽고 고양이도 죽고 모르는 남자도 죽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