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교 Oct 08.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나의 생각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까지도 껴안고 화해하며, 바꿀 수 없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려는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 말을 자주 하게 되면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뾰족하고 가파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고, 순식간에 마음을 흔들어 버릴 만한 걱정거리도 도처에 쌓여 있다. 당장 나를 덮친 이 문제만 넘으면 인생이 장밋빛으로 물들 것 같지만, 결코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도피하든, 정면으로 맞서든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당면한 문제를 넘으면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한다.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단지, ‘그럼으로 인해서’ 심히 좌절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도 아무 걱정이 없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짧았다. 점점 머리가 커지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상보다 현실의 벽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특히, 스스로 사회의 표면을 딛고 선 후로, 많은 일들이 무시무시한 가시가 되어 몸과 마음을 찔러 왔다. 그 가시의 반은 외부에서 온 것이지만, 나머지 반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모든 불확실성이 제거된, 내가 완벽하게 통제 가능하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삶이 어딘가에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 주위에는 나와 달리, 그렇게 늘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그래서 괴로울 때마다, 머릿속에서 내 인생을 가지고 슬픈 소설을 써나갔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삶의 기본 속성이다. 그것을 없앨 비법 따위는 없다. 나를 제외한 남들은 모두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남들도 나와 똑같이 불행하다.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늘 아팠고, 앞으로도 아플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처로 인해서 인생이 끝난 듯 굴지 않고, 그 상처마저 어떻게든 짊어지고 공생하려 애쓰는 일이다. 이는 쌍꺼풀처럼 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주름살처럼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획득해야 하는 이두박근 같은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천착해야 할 일이다.


이에 이르는 방식은 각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나아가기 위해 자기 객관화를 택했다. 남들이 나에게 하는 말의 조사와 뉘앙스까지 곱씹으며 고민하던 에너지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쓰게 되면서부터 점점 나아질 수 있었다. 관찰자의 시각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니, 생각해 온 것과 조금 달라도 된다는 것이 보이고, 당면한 문제가 인생 전체에 있어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보이고, 백 년도 못 살 가능성이 높으면서 염려나 하고 있는 나의 어리석음 또한 보였다. 그러다 보니,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부터 충실히 살아내려 노력하게 되었다. 결코 해낼 수 없는, 어제와 내일이 시키는 일 대신 오늘 주어진 일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이다.


수만 가지 사유로 절망에 빠진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 글을 나누고 싶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건투를 빈다. 우리가 기획한 삶의 바깥에서 어떤 불가항력 사변이 벌어져도, 묵묵히 포용하기를. 그래서 다시 한 번 살아야겠다는 의지의 몸짓을 계속하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전 10화 연기 님과 혜선 님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