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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교 Oct 08. 2021

연기 님과 혜선 님에게

매일 계속되는 야근에 지쳐서 거의 시체 상태로 살아갈 때의 일이다. 새벽에 졸린 눈을 피 흘리듯 치켜뜨고, (최소한 그 시간에는) 서울에서 부산 거리보다 먼 것이 확실한 침실과 욕실 사이를 헤매고 있자면, 늘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나는 내 한 몸 챙기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부모님은 가정과 직장을 동시에 일궈내셨을까 하는 당연한 생각을, 세상에 그 나이를 먹고야 했다. 그분들은 흡사 슈퍼 히어로가 아니었나, 하는 경이로움까지 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교직에서 정년퇴직하셨다. 남들이 보기에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다 은퇴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신 것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평탄한 인생만은 아니었다. 특히, 그리 넉넉지 않았던 친가와 외가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의 짐까지 외롭게 짊어져야 했던 삶이었다. 하지만 뿌린 만큼 거둔다는 믿음을 가지고, 낙심하는 법 없이 한 번도 편히 쉰 적이 없는 분들이었다. 평생 남을 속이지 않았고, 동료를 존중했고, 제자들을 아꼈고, 자식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렇게 그분들은 누나와 나를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충분히 존중받고 존경받아야 마땅한, 그런 분들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누구든 처음부터 부모로서의 삶이 체질화되어서 태어나지는 않는다. 내가 자식이 처음인 것처럼 부모님은 부모가 처음이었을 텐데도, 그분들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셨다. 하지만 나는 자식이라는 지위가 주는 단물만을 빨아먹어 왔으며, 그만한 책임과 의무는 외면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내 손으로 밥벌이를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세포 하나하나로 깨닫게 된 사실이다. 사회에서 상처받고 깨지고 넘어지고 구르는 경험을 하니, 내 인생이 애틋한 만큼 그분들의 삶도 애틋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 후, 난 그분들을 더욱 이해하고,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거창한 효도의 당위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공감이 빚어낸 변화다. 부모님도 나처럼 평범한 한 사람의 젊은 남자로서, 한 사람의 젊은 여자로서 부모의 삶을 시작하고, 그 후로 인생의 수많은 모순들을 감내하며 버티어 살아내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자위가 뜨끈해지고 콧날이 시큰해진다. 내가 지금까지 자식이라는 지위로 당연히 누리기만 한 것들은, 실상은 엄청나게 특별한 것이었다. 그분들도 사람이기에, 나처럼 피곤하고 짜증스럽고 힘들었을 것이 아닌가.


원래 가정은 이중 잣대의 최전선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평생을 살 부비며 같이 살아온 가족들을 온전히 객관화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성공한다 한들 오래 지속되지도 않아서, 대개는 금방 돌아간다. 만약 객관화에 실패하면, 가족이라는 관계의 관성과 익숙함, 그리고 역할만 남는다. 그래서 밖에서 남들에게는 절대로 못 할 말을, 가족에게는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마음껏 내뱉게 된다. 또한 충분히 이해될 만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도, 세상에 아빠로서, 엄마로서, 자녀로서, 형제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원망하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해 주면 당장 은인으로 모시고 평생을 두고 갚아도 부족하다며 머리를 조아릴 일도, 가족이 해 주면 고마움은커녕 당연한 일로 치부해 버린다.


따라서 나는, 때로 가족을 ‘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름에 바로 ‘님’ 자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아니면 사무적인 관계를 일부러 덧입혀, 회사에서 하듯 ‘대리님’, ‘과장님’, ‘차장님’, ‘팀장님’, ‘부장님’ 정도로 불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취재원이 되어 서로의 인생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해 보는 것이다. 어색할 수 있어도 가끔은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하면, 평소 가족에게 얼마나 못난 태도로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서로 이해하지 못했던 속사정과 상처에 대해서도 한 걸음씩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이기 이전에, 자녀이기 이전에 충분히 한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 그렇게 부모와 형제자매도 개별적인 인격체로 객관화해 나갈 때, 가족 안에 가식적인 역할극을 넘어선 진정한 배려와 관심, 사랑이 피어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천착해야 할 문제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한번 부모님을 연기 님과 혜선 님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나는 그 분들을 한 명의 남자로서, 한 명의 여자로서, 그리고 나와 같은 ‘보통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포기한 그분들의 선택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큼 괴롭고 힘들었을 그분들의 삶의 분투가 빚은 열매를 값없이 받아먹기만 한 내 모습을,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소중한 깨달음과 각성들을 잊지 않고, 계속 유지해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연기 님과 혜선 님이 보고 싶다. 내가 참 좋아하는 분들이다. 두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정말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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