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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교 Oct 08. 2021

책 읽는 삶에 관하여

보통 대학교에 다닐 때를 인생의 황금기라 부르지만, 나에게 그 시절은 중금속기 정도다. 특이하게도 사춘기를 대학생 때 겪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였다면, 대학생이었던 나는 일부러 찾으러 다녀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애였다. 그때의 사진만 봐도, 20대 초반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삶의 무게가 느껴져 얼른 덮거나 증거를 인멸한다. 백종원 선생님 급은 아니지만 지금도 내 외모의 시간은 그 때에 비해 거꾸로 가고 있다. 아마 50대 쯤 되면 그 때의 외모를 회복하지 않을까 싶다.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언제 어떤 경로로 자리 잡았는지 모를 수만 가지 사변적인 질문들이 들어차 있었다. 내 인생에 대한 고민과 후회도 많았지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세상의 문제들도 1인칭 관점으로 옮겨와 고민했다. 사실 대단한 자뻑(?)이었다. 세상의 운영과 그 미래에 관한 중차대한 문제를 누가 나한테 물어본다고. 아무튼 그래서인지 새벽같이 학교에 가서,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밥도 굶을 때가 많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다이어트에는 참 좋았던 것 같다.


하루에도, 나는 왜 이런가 너는 왜 저런가 세상은 왜 그런가 등 수없는 질문들이 문장부호도 없이 떠올랐다 뭉개지기를 반복하는데, 이런 왕성한 지적 탐구의 생활을 멈출 수도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을수록 갈급함이 조금씩 해소되기도 했기에, 당시로서는 전혀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후회가 시작된 것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나서였다.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거나 연애에 미치거나 하는 등의, 그 때에만 허락된 특권들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인생에서 그토록 자유롭고 여유 있는 시간은 다시 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까지 어우러지면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되돌아볼수록, 방황에 대응했던 그때의 내 방식에 대해 보다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후회 또한 사라졌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 삶을 떠받치는 다양한 뼈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 도서관에 틀어박혔던 나에게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다.


책 속에는 나를 다잡아줄 좋은 어른들이 정말 많았다. 그 어른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 뒤에도 나만큼 초라하고 한심한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면, 그들과 더 마음껏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힘겹게 이뤄놓은 사유의 결과와 분투의 과정을 송두리째 뜯어먹었다. 달면 삼키고 써도 삼키고, 그래서 배탈도 많이 나면서, 비로소 나는 늦게 온 사춘기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모든 고민들을 해결하고 나서 스스로 대단한 사유의 체계를 세운 것은 아니지만, 이 날카로운 세상을 버텨내며 살아가는데 의지할 만한 문장들을 무더기로 가져다 마음속에 적립했다.


다양한 어른들의 목소리를 조합하고 나의 생각을 섞으며, 어떠한 상황을 만나도 거기에 맞게 소환해낼 수 있는 나만의 레퍼런스를 구축한 것이다. 지금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정말로 훌륭한 자산이자 안전망이다. 그리고 그 때의 경험으로 인해 독서는 내 인생 습관이 되었다. 지금도 아무리 바빠도, 상당량의 독서를 하고 있다. 바쁘면 잠을 줄이고, 여타 여가활동을 줄인다.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나지만, 책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새해 소원도 20대부터 변함없이 한 가지였다. 더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최근에 ‘필터 버블’이나 ‘에코 체임버’ 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전자는 인터넷의 맞춤형 서비스 때문에 객관적 사고가 어려워지고 왜곡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고, 후자는 소셜 미디어에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이용자들이 자신이 속한 일부 집단의 의견을 세상의 다수 의견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인식 오류의 확산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끊고, 사회를 극단적으로 이분화시키며, 결국은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많다.


이처럼 빅데이터 시스템이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해, 내 기호에 맞는 것만 골라 적절히 오퍼링하는 ‘On the Demand’ 사회일수록, 최소한의 균형감각과 현실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용어들이 설명하는 바와 같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며 살게 될 확률이 크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상일의 여백을,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이나 공상, 음모론으로 채워나갈 수도 있다. 그런 태도로는 자신과 타인을 잘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소름끼치는 오만과 독선에 빠질 수도 있다.


어떤 책이라도 좋다.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든 버거운 문제를 만났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누구든지 책을 읽으라 권하고 싶다. 진부하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 인생의 충만을 향한 정답과 해답은 바로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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