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에 놓인 심연 위의 밧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니체이야기_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

by 코끼리거북이

프롤로그


번째까지 쓰고 정도 시간이 흘렀다. 사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쉬운 책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반복해서 읽고, 어떤 문장이 적절할까? 아이들이 단어는 알까? 내가 이해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쉽고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할 있을까? 계속 고민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전문 작가가 아니기에 당연한 한계임을, 지금은 그저 과정임을 머리에 새기며 힘을 내어 글쓰기를 이어간다. 더불어 이런 글쓰기 과정이야말로 나에겐 위버멘쉬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1_짜라투스스라의 서설_4


지난번 이야기에서 짜투가 사람들에게인간은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을 ,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니? 짜투의 이야기엔 관심도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짜투를 무시했지. 짜투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했어. 그래서 말했지.


“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에 놓인 하나의 밧줄이고,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그가 하나의 다리일 뿐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 변하고 몰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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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읽으면서, 쇼펜하우어의 인간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말이 생각났어.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고통과 고난은 우연이 아니라, 삶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어. 사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지.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생각했을까? 쇼펜하우어는 인간과 모든 사물과 우주, 모든 것이 욕망(원함)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아간다고 했어.


우리는 항상 뭔가를 원해. 원하는 채워지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고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느껴. 그런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거나 채워지면 어때? 행복하고 엄청 기쁘지? 그렇다면, 후엔 어떨 같아? 사실 행복감과 기쁨은 오래가지 않아. 금방 시들시들해지고 싫증이 느껴져서 권태(지루함) 빠지게 돼. 그러다가 새로운 욕망을 찾으며 채우고 순간의 행복을 느끼지. 그러다가 권태에 빠지고. 너희들이 장난감을 갖고 때를 생각해 봐. 매번 갖고 놀던 장난감이 지겨워져서, 다이소에 가면 새로운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잖아. 새로운 장난감을 사서 2~3 정도 신나게 놀아. 그러다가 점점 시들시들해지고 장난감을 쳐다보지도 찾지도 않아. 그리고는 다른 장난감을 원하지. 어른들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인간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한 것이야.


쇼펜하우어의 말속에서 파악되는 인간은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기보다는 왔다 갔다, 이랬다 저랬다 본능적인 욕망에 따라 의미 없이 살아가는 느낌이야. 그런데 책의 저자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인간에 대한 생각이 달라. 짜투의 말속에 쇼펜하우어의 인간에 대한 묘사와는 다른 점이 보여. 짜투는 훨씬 주체적이고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어.


짜투는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에 놓인 하나의 밧줄,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라고 말해. 심연(深淵, 깊은 , 연못 ) 바닥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수렁을 말해. 만약에 심연에 떨어졌다면 어떨까?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깊이인데, 거기에서 빠져나올 있을까?


그런 심연 위에 있는 위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끝은 동물 같은 삶이고, 끝은 위버멘쉬의 삶이야. 그리고 아래는 끝을 없는 깊은 수렁이야. 줄을 타고 쪽으로 건너가는 것은 위태위태하고, 건너가는 과정 또한 위태위태하고, 쪽으로 뒤돌아보는 것도 위태위태하고, 무서워서 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도 위태위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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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위에 있는 나를 상상해 봤어. 동물처럼 살고 싶지는 않고, 위버멘쉬의 길은 쉽지 않아 보이고, 자칫 잘못하면 깊은 수렁에 떨어져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 그렇다고 위에 계속 있는 것도 막막하고 답은 아닌 보여. 그래서 위에 있는 나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심연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야. 왜냐하면 심연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고, 계속 막막하고 절망스러운 상태에 있게 되면 어느 순간 빠져나올 있다는 기대와 희망도 사라지고 무기력해지면서 살고 싶은 생각도 사라지게 될 거야. 솔직히 동물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때로는 힘들고 무서워서 뒷걸음치기도 하겠지. 그러나 다시 힘과 용기를 내어 앞으로 전진하며 위에 서있는 위태위태한 나를 극복하고, 삶의 어려운 순간들과 나를 옭아매고 어렵게 하는 생각들을 극복하면서 위버멘쉬의 삶을 걸음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고 싶어.


줄타기 광대가 줄을 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고 긴장되. 그가 떨어질까 봐 걱정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그를 놀라워하면서 기대감으로 계속 보게 되기도 하지. 줄타기 광대는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 참으로 많이 연습하고, 떨어지고, 다치고, 몸도 마음도 아팠을 거야. ‘ 위해서 자유롭게 움직이리라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과 생각과 상황들을 끊임없이 뛰어넘어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을 거야.


우리네 삶은 위태롭고, 쉽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엄중하고 결코 가볍지 않아. 그리고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어. 발전과 성장이 없는 동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도 있고, 앞으로 전진하여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해 가며 성장하는 위버멘쉬의 삶으로 나아갈 수도 있어. 그러나 외줄 타기 인생인 우리에겐 쉬운 길은 아니야. 어쩌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인데, 너희들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싶니?


짜투는 인간의 삶은 하나의 다리일 목적은 아니기에 위대하다고 말했어. 위버멘쉬를 향하고 추구하는 인간의 삶은 건너가야 하는 다리이자 과정이지, 위버멘쉬가 되는 것이 정해진 목적, 완성된 상태는 아니라는 말이야.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변화무쌍하고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하며 움직이고 똑같지 않기 때문이야. 그래서 때로는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지만 때론 뒤로 가서 동물 같은 삶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위버멘쉬는 과정이기에 삶에서 추구하고 원하면서 끊임없이 살아내야 하는 목표인 것이야.


짜투는 그런 변화무쌍 한하고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을 사랑할 있대. 다른 사람과 사회가 원하는 대로 정해진 길을 아무런 자기 생각 없이 살아가는 동물 같은 사람과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 때론 넘어지기도 하지만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위버멘쉬의 삶을 사는 사람. 어떤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되고 마음에 끌려?


이어서 짜투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18 문단으로 말해. 마치 신약성경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8복의 구조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 8복은심령인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이런 구조로 되어있거든.


짜투는 이런 사람들을 사랑한대. 삶이 변화무쌍한 모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동물 같은 삶을 넘는 (몰락) 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하며 위버멘쉬의 삶을 향해 건너가는 자들, 이상 세상의 행복과 하늘의 소망을 말하는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고 그런 가치관들은 이제 필요 없다고 경멸하는 자들, 대지와 위버멘쉬에 대한 인식과 의지를 가지고 위버멘쉬의 삶을 향해 집을 짓고 먹고 일을 하며 사는 자들, 위버멘쉬를 향한 자신의 의지를 사랑하고 의지로 지신의 운명을 만들어내는 자들, 아낌없이 자기를 내주며 누군가가 고마워하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베풀기만 하는 자들, 로또 당첨 같은 행운이나 기적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고 자신이 말을 책임지고 해내는 자들,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심장을 가진 자들, 사람들의 삶에 드리워져 있는 먹구름에서 번갯불 같은 위버멘쉬가 닥칠 것이므로 위버멘쉬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하는 자들 등등.


이런 사람들을 특징을 마디로 표현하면, 결국위버멘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짜투가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주장하고 선언하는자기를 극복하는 , 위버멘쉬의 ’.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다음 시간에 짜투 이야기를 나눠줄게.


에필로그

이번 부분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짜투가 진심으로 인간의 삶을 깊이 생각하고 꿰뚫어 보았음을 깨달았고, 짜투의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을 살짝 맛보았다.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 있는 나와 아이들과 다른 독자들 모두에게 여러 깨달음이 많이 쌓이길 바란다.





<참고 문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사순옥 옮김. 홍신문화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옮김. 책세상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지음. 세창출판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사순옥 옮김. 홍신문화사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박찬국.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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