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바꿔야 할 때
오늘 수영 후, 여행을 짐을 싸다 보니 삶이 느슨해진다.
어느덧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3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문득 정말 솔직하게 나는 가난한 피가 온몸에 흐른다는 걸 느꼈다.
실수투성이 남편이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동네에서 성공하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며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절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왜 이사를 다니는지 알지 못했다.
가난한 피가 여전히 흐르는 동생의 말이 생각난다.
<언니, 송충이는 풀잎을 먹고살아야 하잖아. 나는 그냥 이렇게 지금 살던 대로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태어나서 자란 곳에서 20년을 넘게 살고
이사를 가야 할 시점에, 같은 수원에서 동만 바뀌는 것도 주변환경이 바뀌는 게 싫어서 바로 옆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는 좀 높게 이사를 가고자 했지만
나는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 사람이 살던 곳에서 사는 것이 편한 거야. 왜 신영통으로 이사를 가려고 해. 우리 그냥 권선동에서 계속 살자>
그땐 몰랐다.
내 온몸에 가난한 피가 흐른다는 것을
석수동에서 살 때도 2년에 한 번씩 같은 아파트였긴 했지만
자신의 아빠의 코치에 따라 24평에서 34평으로 그리고 ‘시‘를 다르게 하여 안양시에서 광명시로 이사 가는 지연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지금 이대로 좋은데 왜 이사를 가려는 거지?
지연이는 아빠의 코치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기업 이사님)
그리고 2년 후 또다시 송파구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가기에는 이사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바로 거지의 피가 뼛속까지 흘렸던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2년마다 이사를 하며 주변의 운을 바꿨던 것을
이제야 들린다.
지금 사는 집의 전세금을 빼서 투자를 하고 싶다던 남편의 말을
(그때 그 말을 들었다면,….. 거지의 피가 흐르던 나는 잘살고 있는
50평 아파트 전제금을 빼서 바로 앞 20평대 빌라로 이사를 가겠다는 남편의 플랜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동안은 남편이 재테크를 하니까, 나는 아예 신경을 끄고 살았다.
그러니 미국 주식을 사는 것조차 나에게는 큰 벽처럼 느껴진다.
온몸에 흐르는 가난한 자의 피를 바꾸고 싶다.
늦지 않았다.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자.
사회 경제, 그리고 그런 흐름에 눈을 뜨자.
오늘 처음으로 토스증권으로 미국 주식을 1주 샀다.
남편의 말을 들으려고 한다.
주의 깊게 살피고 보고자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어제 같이 달리기를 한 초희는 월세를 살면서 큰돈으로 투자를 한다고 한다.
준희도 왜 집을 사냐면서 그 돈으로 주식(아니면 코인?) 투자를 한다고 한다.
투자의 투자도 모르게, 아이들을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초희의 어머님은 오피스텔을 사고 팔고, 땅을 사고 샆고 하는 모습을 계속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도 그런 모습으로 세상 흐름에 촉각을 세우며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