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이 할퀴고 간 자리에 남는 것
깨져버린 루틴을 다시 복구하고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나한텐 그렇다. 감염병이 식구들을 갈라놓고, 원래 보금자리로부터 다른 곳으로 피신하게 만들었다. 새로 피신하게 된 곳은 내 공간이 아니었으므로 다시 처음부터 정을 붙여나가야 하는 곳이 되었다.
텅 빈 냉장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널브러진 식기도구들, 먼지 쌓인 방. 캐리어를 끌고 와 먼지 쌓인 방에 약간의 먼지를 더 보탠 후,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이제 무얼 먼저 해야 하나 생각했다. 하나도 내 손에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여행을 하러 온 게 아니라 피신을 하러 온 것이기에 새로 지낼 숙소는 피로를 푸는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노동과 작업이 필요한 곳이었다.
이 집과 익숙해지는 데는 3일이 걸렸다. 근처 마트에서 장도 보고, 음식도 요리해서 먹었으며, 집을 청소할 여유까지 생겼다. 나도 감염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 음성임을 확인하고도 끙끙댄 며칠 동안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줄 알았으나 이 집과 익숙해지는 데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역경이 할퀴고 간 자리에는 상처가 남지만 잘 치료하고 회복하면 흉터 없이 말끔히 나을 수도 있다. 자가면역, 스스로가 면역을 길러 자신을 보호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평소보다 더 자주 환기를 시키고, 가공음식을 멀리하고 직접 요리를 해 먹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호흡기가 건조해지지 않게 자기 전 물수건을 적셔두고, 비타민을 챙겨 먹으며 낮에는 햇빛을 보러 나간다.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는 제일 좋은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위험에서 날 보호하려 규칙적인 생활을 시도하고 있고, 전보다는 더 몸상태가 좋아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돌보다 보니 회복력이 생겨 이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더 뚜렷해진 느낌이다. 편안하던 일상이 깨지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처음에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일상을 깨어버리는 외부적인 상황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몸도 마음도 조금 더 강화된 근력을 가지고, 이제는 더 탄력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 도약할 일만 남았다. 그것을 허용할 마음의 여유와 용기가 생겼으니 다시 천천히 하던 일을 이어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