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진단

경험, 사업계획, 신기술, 관계의 자산

by 김경태

기초진단이 한 기업의 기본체력 및 생존능력을 살펴보는 '건강검진'이었다면, 역량진단은 그 기업이 앞으로 방산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를 그려보는 '미래 예측도'에 가깝다. 기업이 가진 기술과 경험, 그리고 네트워크는 단지 현재의 상태를 평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 다시 말해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다.

방산은 단순한 거래의 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생태계이며, 고도로 형식화된 관계망 속에서 움직인다. 이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누구와 어떻게 함께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약속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이다. 역량진단은 단순한 실적 평가를 넘어, 기업이 방산 생태계의 규범과 문법에 얼마나 익숙하며 그 내부 질서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를 통찰하는 과정이다.




1. 경험의 무게: 실패를 견뎌낸 시간의 깊이

방산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방산 사업을 몇 건 수주했는가?"라는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현재의 조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값진 자산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실패'는 방산이라는 낯선 숲에서 길을 잃은 흔적이며, 그 실패를 넘어선 기업은 이제 숲의 지형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체계기업과의 협력, 국기연이나 국과연과의 과제 수행 경험, 국방 R&D 경험, 그리고 군 납품 실적은 모두 이 숲 속을 걸어본 발자국이다. 그 발자국들이 단지 이력서에서 그치지 않고, 기업의 방산 여정에 대한 '지도'로 존재하는지가 역량의 진정한 지표가 된다.


여기서의 진단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국방 R&D 수행경험과 성과
- 국방 비 R&D 수행경험과 성과
- 조달 및 납품 실적


2. 사업계획의 적합성: "꿈이 아니라 설계도인가?"

방산시장은 여러 법규에 따른 절차와 다수 기관과의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구체적인 진입 경로 없이 방산을 바라보는 것은, 망망대해 위를 표류하는 뗏목과 같다. 따라서 방산 진입을 고민하는 기업이라면, 자사의 기술이나 제품을 군의 어느 분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단계별 로드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그 계획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방산 진입에 대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이 진입의지를 보여야 지원 활동도 비로소 시작될 수 있으며, 그 의지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현 가능한 사업추진 전략을 갖추는 것이다.


여기서의 진단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기술의 군 적용 분야 식별
- 단계별 진입 전략 및 계획
- 예상되는 장애물과 극복 방안


3. 신기술: 미래에 필요한 기술인가?

기업이 보유한 기술이 반드시 '신기술'일 필요는 없지만, 최근 국방혁신의 방향은 미래기술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기술이 미래 국방기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기술 수준이 높고 미래성을 갖춘 경우에는 방산 진입을 적극 유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기초진단에서는 기업이 보유한 전체 기술을 대상으로 살펴보았다면, 역량진단에서는 특히 '미래 국방기술'과의 관련성을 주요하게 살펴본다.


여기서의 진단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미래 국방기술에 해당하는가?
- 기술 수준(TRL)은 어느 정도인가?
- 기술의 현황: 소유권, 특허, 인증 등


4. 관계의 자산: 신뢰라는 비가시적 역량

방산은 비교적 정보를 공개 및 공유하지 않는 산업이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환경, 다층적 이해관계자, 군 내부의 정책 변화 등으로 인해 '정보의 비대칭'이 구조화되어 있다. 이때 기업이 가진 '인적 네트워크'는 단순한 인맥의 수준을 넘어서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체계기업, 군부대, 관련 정책 담당자와의 연결은 신뢰를 기반으로 축적되며, 이는 사업의 선정 가능성과 수행 효율성 모두에 영향을 준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아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그 기업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이다. 이러한 관계는 수치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프로젝트 실적, 컨소시엄 이력, 공동 기술개발의 경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역량진단에서 이 항목은 기업의 보이지 않는 저수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물줄기 하나가, 갈증을 해결하는 결정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여기서의 진단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체계기업과의 컨소시엄, 공동 프로젝트 등 경험
- 군부대와의 기술협의 및 소통 경험
- 내외부 방산네트워크 구축 수준




기업의 역량을 진단하는 목적은 우열을 평가하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의 상태를 바탕으로 어떤 경로를 설계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함이다. 진단은 배제를 위한 절차가 아니라, 가능성을 여는 대화의 시작이다. 역량이 부족하다면 그 부족함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를 함께 탐색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방산중소진단방법론이 지향하는 철학이다. 진단을 통해 기업의 그릇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에 맞는 물을 어떻게 담을지를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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